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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Apr 17. 2022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지난 글에서 인용한 시골농부님의 글을 다시 보자. 내가 이 분을 시골농부라 부르는 이유는 그의 저서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을 인용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신경망의 두 가지 변화

깨달음은 신경망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의 변화입니다. 첫째는 새로운 일처리 무의식(자기 해체 알고리즘)이 신경망에 새로 만들어지고, 둘째는 그렇게 된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생각으로 바르게 해석됩니다. 반복 경험을 통하여 무의식에 새로운 변화가 생기는 것이 전제조건이지만 그것을 화룡점정하는 것은 생각입니다.

신경망에 대해 구글링 해보니 검색 결과 첫 페이지에 '인공신경망'에 데한 설명이 반 이상 보인다. 한발 물러서서 그저 내가 아는 수준으로 신경망을 설명한다.

신경망은 우리가 생각한다고 할 때, 그 행위를 하는 신체기관에 대한 통칭이다

나의 배경지식은 <월말김어준>에 1년 이상 연재 중인 박문호박사님 강의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일부이다. 다시 시골농부님의 깨달음 정의로 돌아가보자. 두 가지 변화는 무엇인가?

첫째는 새로운 일처리 무의식(자기 해체 알고리즘)이 신경망에 새로 만들어지고

시골농부님의 글 중에서 직관적으로 바로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일처리 무의식'과 '자기 해체 알고리즘' 둘을 키워드로 구글링해보면 딱 맞는 내용은 첫 페이지에 나오지 않고, 전체 결과 페이지 숫자도 적다. '자기 해체'라고 검색해서 얻은 결과도 시원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아래 기사가 나의 직관을 조금 벼리는 수준에서 도움을 준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자기 해체로부터>


다시 또 직관에 의해 설명해보자. 놀랍게도 이 부분을 읽을 때 #정원관리 할 때 느끼는 마음을 연상했다. 정원관리 대상이 바로 나 혹은 나의 습관이고, 자기 해체라는 표현이 정원 관리로만은 설명하기 어려운데 이는 순리를 받아들일 때 벌어진다. 다음 표현이 마지 정원관리 결과를 설명하는 듯하다.

둘째는 그렇게 된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생각으로 바르게 해석됩니다.

이는 또한 <진화적 책장정리를 통한 실용독서 구조화> 결과를 말하는 듯도 하다. 다만, 아래 그림이 요약하는 정원관리 결과는 무의식의 일부를 시각화 한 것이다. 여기서 무의식이란 말은 잠재의식과 내가 의식을 통칭한 것으로 거칠게 쓴 말이다.


깨달음은 구원이지만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아래 글을 읽고 내가 붙인 소제목은 <깨달음은 구원이지만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이다.

깨달음은 신체 외부의 초월적인 어떤 무엇에 닿아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신경망이 바뀌어 무의식과 사고 기능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므로 그 신경망이 다시 또 바뀐다면 깨달음의 경계가 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주를 봐주고 공포를 잠재우려고 부적을 파는 행위처럼 인간의 원죄를 말하고 전도와 헌금을 촉진하던 어릴적 내가 본 교회의 모습에 대한 분노를 사그라트리는 행위의 하나다. :)


깨달음은 그저 #빙산의 운행 처럼 나의 인식이 바뀐 상태일 뿐이다. 허걱, 나는 깨달은 적이 있던 듯하다. 다만, 살얼음판 같은 수준이었고, 이내 또 흐트려졌다는 점이 문제다. :)


아래 글을 읽다 보면 나에게 '무슨 수행을 했느냐?' 묻게 된다.

수행을 통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무의식(자기 해체 알고리즘)은 나의 의식과 상관은 있지만 독립적이어서 의식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무의식은 외부의 자극에 의하여 스스로 변형될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새로 만들어진 무의식의 틀(깨달음의 무의식적인 영역)은 의식의 힘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첫 회사 멘토님은 깨달음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는 분이었고, 무려 18년 전에 도반으로 초대하였으나 거부했다. 그런데 그 분이 회사에서 뵐 때마다 해주신 말씀과 그 분의 행동거지 그 자체는 큰 울림이 되어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본을 만들어줬다. 본이란 내가 보고 따라할 수 있는 것으로 밈(meme)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나는 1999년 생긴 분노를 에너지로 열심히 나의 믿음을 직업 세계에서 실현했다. 그게 나의 수행이다. 나에게 겁을 주고,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라 종용했던 선배들과 동기들에 대한 반발심이 10년 넘게 정진하는 연료 역할을 했다. 반대로 의지력이 약한 점이 약점으로 작용했는데, 그걸 #꾸역꾸역 으로 극복한 것이 나의 수행이다. 그리고 1950년대를 여인으로 살아가며 무능한 아버지(나의 외조부)를 만나고 어머니를 빨리 여읜 탓에 책에 대한 갈망을 갖은 나의 어머니가 그걸 물려주셨다. 내 공부의 시작은 유아기 엄마없이 내버려져 있던 시기에 내 주변을 가득 채운 문학동화전집(방판 책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유치원에 가기 전에 글씨를 모두 읽을 줄 알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어머니는 유치원부터 국민학교 다니는 동안 나에게 반드시 일기를 쓰게 하셨는데, 그 힘은 IT컨설팅 회사 초기에 부족한 배경지식을 빨리 익히는데 쓰였다. 2003년 블로그를 처음 만든 후에 나는 매일 6건 정도의 공개된 메모를 수 년간 지속했다. 그게 나의 수행이다.


너무 길어졌네. (다음 글에서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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