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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Jun 10. 2022

무의식 변화 인식과 자기 언어 개발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2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편에 이어서 계속한다.


언어-심리와 관련된 무의식의 알고리즘의 존재

언어-심리와 관련된 무의식의 알고리즘이란 표현이 독특합니다.

언어-심리와 관련된 무의식의 알고리즘들은 자신의 것이든 타인이나 사회의 것이든 모두 의식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므로 그 원리를 이해한다면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통제하지는 못할지라도 무의식의 구성에 일정한 수준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봉영선생님이 말이 곧 세계라는 듯이 메타버스를 이야기하신 일이 있어 두 개의 가르침이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어제 (제주에서) 비교적 따뜻한 날 바람을 맞으며 빨래를 널고 있는데, 바람에 피부에 스치는 느낌이 사이판을 연상시켜 놀라웠다. 나는 6년도 더 된 느낌을 기억할까? 그리고 그 사이 더 많은 유사 경험을 했을텐데 유독 그때를 기억하는 이유가 무얼까?


나는 아마 언어-심리와 관련된 무의식도 이와 유사한 무엇이 아닐까 짐작한다. 이 글을 메모하듯이 써두고 다시 열어 보는 사이에 최봉영 선생님이 언어로 지각한 상태는 하나의 전자기파 패턴이라는 주장을 하셨다.


무의식의 알고리즘은 개념이지만, 선생님의 주장은 뇌안에 형성된 실체를 말한다.


깨달음은 무의식 변화에 대한 의식화

알듯모를듯한 말이지만, 무의식의 변화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개인의 깨달음이 의미를 갖는 것은 무의식의 변화가 사고 기능에 의식화 되었기 때문인데, 다시 다른 한 생각이 일어나 의식화된 내용을  변절시킨다면 깨달음의 효율성이 상실되고 무의식까지 영향을 주어 퇴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경망 중에서 깨달음을 일으킨 무의식과 의식의 영역이 왜곡된 생각의 영향을 다시 받지 않도록 구조적인 보호 장치를 만든 것이 불퇴전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생각으로 생각의 결계를 치는 것입니다.

나는 아주 단순한 감사목록 쓰기를 할 때 조금이나마 감정 변화를 인식하고 나의 행동을 조절하는 훈련을 시작했는데,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상계에서 불가역적입니다.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 현상계도 사라집니다. 시간과 공간은 오감의 감각기관으로 포착되는 대상이 아니라 의식에 각인된 관념적인 구조물입니다. 시공간 개념은 사고 현상의 하위 구조물이어서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개념들은 시공간 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단위로 읽는 세상>에서 인간은 아직 시간을 어떻게 감지하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던 내용이 떠오른다. 시골농부님에 따르면 시공간 개념은 사고 현상으로 만든 구조물이라고 한다.


자기 언어를 갖는 일

살림살이라는 말은 최봉영선생님께 배웠던 차리다의 한국말 뜻과 한쌍인 듯한 인상을 준다.

깨달으면 새로운 논리와 가치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이전에 알아왔던 체계는 뒤로 밀려나고 변화된 자기의 경계(경험 환경)를 바탕삼아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을 '내 말' 또는 살림살이라고 명칭합니다. 그것이 기존의 모든 가치체계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나와 세계에 대한 핵심 개념들에 적용됩니다. 여기에서 근본이 되는 무아와 연기라는 개념은 위에서 설명한 시공간 개념처럼 '내 말'의 하위 구조물이 되고 나와 세계에 관련된 파생 개념들에 내포됩니다.

살림살이의 결과가 최선생님이 말씀하신 차려진 세상과 일치한다. 최선생님은 차려진 세상이 곧 메타버스라 하셨다.

'내 말'이 만들어지는 근거는 자기의 경계이므로 그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학습이나 외부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Bounded Context 개념도 떠오르고 Ubiquitous Language 개념도 새롭게 해석된다.

'내 말'이 갖추어지면 나와 세계에 대한 대부분의 개념들은 '내 말'로 번역되어 사고하게 됩니다. 미신, 맹신, 왜곡이 범벅된 남의 말을 듣게 되더라도 그것들이 바로 내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내 말'로 번역되어 사고하게 됩니다.

위 문장을 읽을 때는 <성공적 대화를 돕는 그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창작물이 아닌가!


남의 말들은 나의 기억에도 이미 광범위하게 쌓여 있지만 기억에서 호출되는 순간에 '내 말'로 번역이 되므로 혼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알음기분과 성장 마인드셋

내가 2015년 이후에 나아간 길이 어떤 지향점이었음을 깨닫는다. 놀랍다.

'내 말'은 폐쇄적인 논리 구조를 갖고 있거나 이데올로기가 되어 믿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내 말'은 부정의 부정이라는 방향성을 유지하는 변증법의 논리를 채택하므로, 모르는(번역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갖고 수용하는, 개방적이며 지속적인 진화를 지향하는 사고 체계입니다.

모르는 일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수용하는 자세를 최봉영 선생님은 알음기분이라고 표현하셨다.

나는 또한 성장 마인드셋을 따르는 일이 알음기분을 즐기를 일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마피디님 페이스북


내 말로, 내 삶으로 소화하기

마지막으로 아래 내용을 보다가 내 말로 소화하는 과정이 생각났다.

번역된 정보가 내 경계의 일이 아니라면 '내 말'로 쓰지 않으므로 남의 경계나 남의 말로 인한 혼란을 다시 일으키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요즘은 책을 읽어도 바로 써먹고 활용하는데 초점을 둔다는 점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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