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3
지난 글에 이어서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 34쪽부터 시작하는 <2초 동안 생각을 멈추기>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기록한다.
'입자조차도 파동일수 있다'는 혼란스러운 사실을 현대과학이 알아냈다. 무아의 개념은 이와 어딘가 닮아 있다. <월말김어준>에서 꾸준히 박문호박사님 강의를 들은 덕분에 아래 문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것들에 의존해서 존재하는 사물이란 자성이 없이 외부의 영향에 의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연기의 한 과정이므로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아다.
그리고 최봉영선생님이 말씀하신 '쪽인 나'도 떠오른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 땅바닥이 둥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뒤이어 위 문장을 볼 때는 마침 어제 읽은 인생책 <대체 뭐가 문제야>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작은 세상에 무언자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순간 그것은 가장 큰 자국을 가져온다. 그 자극은 짧은 기간동안만 존재하며 그 사이 우리에게 특별한 위협이나 기회로 다가오지 못하면, 그냥 환경의 일부나 배경이 된다. 결국 완전히 상쇄되는 것이다.
해보니 명상보다 쉽게 할 수 있는 실천법을 소개한다.
생각을 끊어서, 생각할 때와 생각이 없을 때는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 내용을 들을 때는 최근에 본 유튜브 영상이 떠올랐다.
자꾸 그 생각으로만 되돌아가게 될 경우에는 다른 생각을 일부러 끌어들인다.
찾아보니 지나영 교수님 신사임당 강의였다. 약 8분경을 보면 분홍코끼리 비유가 나오는데, 특정 생각을 안하려고 하면 더 생각이 나니 아예 다른 생각을 하라고 한다.
이런 습관의 실천이 거듭되면, 자기 경험과 이해가 쌓이면서 생각의 허구를 저절로 명백하게 알게 된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앞서 소개한 지나영 교수님의 강의에 등장하는 관계도가 떠올랐다.
느낌과 행동과 행동의 상호작용 가운데 내 믿음이 바뀐다. 물론, 역으로 믿음에 의해 느낌과 사고와 행동이 영향을 받기도 한다.
나는 교회다니는 사람중에 일부가 사람들을 '믿는 사람'과 '안믿는 사람'으로 나누는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는다. 행동 배경에는 늘 믿음이 있는데, 자신들 진영의 믿음만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일은 원시 부족과 같은 수준의 행동 양식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름의 믿음이 있다고 믿으며, 나는 믿음을 잘 발전시켜서 자아실현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