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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Sep 30. 2022

사고지능의 한계와 자연의 특징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14

오랜만에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 책을 다시 펼쳐 훑어보았다. 밑줄 친 내용만 쭈욱 살펴보는데 과연 내가 다 읽은 내용인지 의문스러웠다. 회의감이 잠시 몰려왔지만 #꾸역꾸역의 가치를 실천하기로 한다.


자연 지능이란 대체 무엇인가?

책 228쪽에 등장하는 아래 문장은 질문을 유발했다.

자연 지능은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법칙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과학적 발견이 자연 지능인가? 지난 글에서 다룬 '자연 지능과 사회 지능'이라는 이분법에 대한 나의 이해를 점검해보아야 할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책에 자연 지능에 대한 부연이 뒤따른다.

사고 행위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으며, 인과에 반응하여 저절로 생멸하는 규칙들이다.

그렇다면 사고 지능이란 무엇인가?

자연지능과 달리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전두엽의 사고능력으로 가능해진 사고지능이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설명이 이어진다.

유전적으로 사고지능의 하드웨어를 갖추고 태어나지만, 유아기의 적절한 시기에 사회(가족)로부터 소프트웨어를 이식받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작동 못한다. 인위적이고 후천적이다. 사고지능을 간단히 표현하면 '생각'이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뒤따르는 질문을 키워드로 구글링을 했더니 작년에 발간된 책 이야기가 첫 페이지에 나온다. 검색 결과 중 하나의 링크를 따라갔더니 인용문이 등장한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의 감각이다. 우리의 생각 감각은 우리를 무한한 가능성들 및 실재성들과 접촉시킨다. 바꿔 말해, 의미장들과 접촉시킨다. 우리는 대단히 높은 해상도로 우주의 심층구조를 숙고할 뿐 아니라 정신의 가장 깊은 곳들, 미술의 역사, 십자 단어 퍼즐, 기타 수많은 것을 숙고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생각 감각은 특별하다.'(책 291쪽)

저자(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인용문을 시골 농부님 이분법과 연결해보자. 저자는 의미장을 가능성과 실재성으로 나눈다. 실재성은 시골 농부님의 자연지능에 대응하겠다. 반면에 가능성은 사고지능의 사용을 뜻한다.

우리 '인간'은 두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진화를 통해 발생한 생물 종으로서의 '인간동물'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이 누구이며 혹은 무엇인지를 그리는 '인간상'이다.

위 내용은 시골 농부님의  '자연 지능과 사회 지능'과 그대로 일대응대응 하는 내용인 듯하다. 다만, 이들의 설명하는 취지는 정반대에 가깝다. 시골 농부님은 깨달음을 말하며, 생각에 끌려 다니지 않는 방법을 알리려고 한다. 반면 저자는 철학자답게 생각의 힘을 기술이 정복할 수 없는 고유 영역으로 강조하고 있다.


사고지능은 전두엽에 존재하는 집단의식

다시 시골 농부님의 책으로 돌아가면 사고지능에 대한 중요한 특징을 설명한다.

사고지능은 오직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가상의 현실 시스템이어서 <중략> 사고지능은 자연에 실존하는 규칙이 아니라, 인간의 전두엽에만 존재한다. 인간 개체의 사고 지능은 집단의식의 모듈로써, 집단의식에서 생산되는 가상현실의 정보들을 '수용-학습-전파'하는 단말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런 기능을 '나'라는 주체적 존재로 설정하게 되어 유아론에 빠진다. 이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고타마의 설명이 무아와 연기이고, 단축하여 표기하면 무아론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만들어내는 문단이다. 먼저, '가상의 현실 시스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기사와 주변인들이 '메타버스'에 대해 의견을 쓰고 말하는 일이 한동안 밀려들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최봉영 선생님은 이미 언어를 쓰고 있는 세상에 이미 가상 현실이 있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신 일이 있다. 내가 자주 인용하는 최봉영 선생님의 그림은 바로 그 '가상의 현실 시스템'을 모델링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바탕을 둔 실상이 존재하는데 '가상 현실'이라고 부르는 점이 불편하거나 어색할 수 있다. 아마도 나 역시 <사피엔스>를 읽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사피엔스를 읽은 후에는 우리가 허구적인 믿음에 의해 종교나 국가와 같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생각을 현실에 구현하며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해의 수준을 무시하면 알기 전과 후의 분기점을 영화 매트릭스의 알약에 비유할 수 있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집단의식의 모듈로 작용하는 인간의 사고 지능

여기서 난해한 부분은 후반부 문장들인데, 다시 추려서 인용해보자. '집단의식의 모듈'은 무슨 말일까?

인간 개체의 사고 지능은 집단의식의 모듈로써, 집단의식에서 생산되는 가상현실의 정보들을 '수용-학습-전파'하는 단말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런 기능을 '나'라는 주체적 존재로 설정하게 되어 유아론에 빠진다. 이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고타마의 설명이 무아와 연기이고, 단축하여 표기하면 무아론이다.

나는 종종 자기 생각이 없는 듯이 행동하고, 평소 하던 말과 배치되는 행동을 지각없이 하는 모습을 보며 '좀비'에 비유한 일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매우 잦은데, 20년 전에 보았던 매트릭스에서 이해가 되지 않던 신비한 내용이 바로 이런 현상을 비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그리고 성경 모세이야기에서 이집트 노예 생활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들, 친한 동생이 <뿌리> 책에서 읽고 전해준 노예 해방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계속 속으면서도 부패한 정당을 찍어줘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개별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집단의식의 모듈로 실행된 결과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가능한 일이고, 개인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입각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하면 납득하기 힘든 결과다.


명백하게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거의 매일 만나는 사회의 부조리를 떠올리면 '집단의식의 모듈'이란 말을 대충 체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아와 무아의 완전한 이분법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다. 생각의 오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나는 그저 연기의 일부일 뿐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다. 현재 시점에서 나는 그저 나란 정의는 나를 둘러싼 관계망을 포함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나를 명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만 받아들일 수 있다. 연기의 일부라도 내 의지라는 것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항상성과 균형을 추구합니다

여기에 이르자 내가 분명한 목적 없이 탐색해오던 지식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 혹은 패턴이 보인다. 패턴의 흔적 중에서 최근에 뚜렷한 목적 없이 메모해 둔 글을 떠올랐다.

자연은 항상성과 균형을 추구합니다

<호흡의 기술> 198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치과 의사인 시어도어 벨포 박사의 발언이다. 나에게 이 문장은 (책의 주제를 넘어서) 두 가지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하나는 도올 선생의 유튜브 노자 강의를 들으며 배운 내용으로 문구로 요약하면 '몸을 이용해 조화와 균형을 찾아라'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직업적으로 '유기체인 시스템을 성장 혹은 진화시키는 법'과 관련한 고민이다.


지난 기록을 다시 꺼내보니 내가 이전 회사를 그만두며 사실상 직업 생활을 리셋하고, 다시 이어가는 여정에서 중요하게 가치는 지속 가능성이다. 내가 이룬 성과가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 그리고 내 머릿속을 벗어나 결과물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삶에도 받아들여지는 것을 기대한다. 조금 공부를 했던 노자에서 얼핏 느낀 '동적 평형 상태'인 도(道) 같은 것이다.


'동적 평형'을 위해서는 사전 계획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인식과 균형 잡기를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최근의 삶은 전보다 균형과 관계에 대해 깊이 인식한다.


지난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연재

1. 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2. 무의식 변화 인식과 자기 언어 개발

3. 아주 간단한 깨달음 수행법과 믿음

4. 깨달음과 깨달은 사람

5. 깨달음은 무엇이고,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6. 생각에 끌려가지 말고, 생각을 다스리기

7. 동정일여 그리고 몇 주간의 배움

8. 문제삼을 일과 사라지게 둘 해프닝

9. 사고의 틀과 대의적 소프트웨어 설계 방안

10. 주체와 객체 그리고 아기발걸음

11. 홀로서기와 따로 또 같이

12. 깨달음을 전하는 일은 이웃사랑 실천

13.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인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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