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수학 3
지난 <구(球)와 체(體), 면(面) 의미를 찾아보기> 편에서 위키백과의 구(球) 설명이 마음에 들어 인용한 바 있다.
한 점과의 거리가 같은, 3차원 공간 위의 점들로 이루어진
그리고 아내 덕분에 집에 늘 있는 실을 잘라서 아이에게 주고 허공에 빙빙 돌리게 한 후에 설명을 해주면 아이가 개념을 몸으로 익힐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여 시도해 본 일이 있다. 그랬더니 허공에서 실로 구(球)를 묘사하는 일보다 평면에서 원을 그려보는 일에 확실히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앞선 두 편에서 혼자 구글링 하며 조사를 할 때 나는 왜 굳이 '구체면선점일까?'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랬는데 아이와 다시 책을 읽으면서 대체로 덩어리가 큰 개념에서 작은 개념(면적이 없는 점으로)으로 묶은 듯했다. 마침 아내가 방과 후 학습에서 아이들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고 영상을 보여주는 장면을 이야기 했다. 아이들 눈높이로 가르치는 일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구체면선점에 대해서도 우리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 관점이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 주변을 돌아보니 집에는 다양한 원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아까 사용한 실이 있었다. 아이에게 팝잇의 가운데 선을 놓고 쭉 돌리면 원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아빠가 8살 형과만 시간을 보내니까 6살 동생이 아빠를 호출했다. '2000', '1996' 등을 말하며 동전에 쓰여 있는 연도를 맞출 수 있다는 점을 자랑했다.
그러는 가운데 단위에 대한 이해가 내가 아는 방식이 아닌 나름의 패턴으로 습득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2006년은 못 읽어서 알려줬더니 2008년은 바로 읽어냈다. 배우는 사람 중심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선(線)과 점(點)의 의미를 찾아보기> 편에서 아이에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두 가지를 시도했다. 그런데 아이가 관심을 갖기를 거부했습니다. 주도권 혹은 관심사를 아이에게 맞추지 않고, 가르치려는 내용을 고집하면 더 이상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정서적으로 하나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내 고집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이죠. '구체면선점' 대신에 배우는 사람 중심으로 학습을 바꾸려면 가르치는 사람이 먼저 스스로를 비워야 했습니다. 다소 막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인 되기> 편에서 인용한 그림이 떠오릅니다.
내가 주도하려고만 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표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모순적인 느낌을 받지만, 저는 결국 아이의 선택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개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죠.
아이가 놀던 클레이를 이용해서 점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했죠. 아이는 저의 시도에 대응을 했지만 수차례 장난을 치다가 결국 아빠와 적절한 지점에서 만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점이 순서를 표현하는데 유용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선이 우리말로 줄이란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묘사를 발견했습니다. 아이와 만나는 지점에서 친구들과 줄을 선 모습을 착안할 때였죠. 처음에 아이는 친구들 이름을 붙이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독 크기가 큰 덩어리를 하나 만들어 장난을 치려고 했습니다.
점은 크기가 없다는 말을 했지만 아이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택한 방법은 순서에 집중하게 하는 일이죠.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덩어리 하나를 점으로 부르고, 아이가 같은 반 아이들로 인식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가 만나는 지점은 순서를 가진 점이 늘어선 줄입니다.
덩어리로 장난을 치려는 아이가 마음을 내려놓고 숫자와 줄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한 줄로 반 아이를 다 표현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때 앞서 왜 두 줄로 했는지 제가 묻습니다. 선생님이 두 줄로 세운 일을 기억하는구나 싶어서 두 줄로 세우면 숫자를 헤아리기 쉽다는 말을 하고 구구단 2단을 확인시켜줍니다.
아이가 효용성을 느꼈는지 두 줄로 클래이로 만든 점을 나열합니다. 이때는 덩어리 크기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가르치려 했지만 사실 제가 여러 가지로 배운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