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농부의 깨달음과 나의 깨달음 13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 책에서 '수행의 방법'이란 장을 읽으며 느낀 것을 쓴다.
앞선 장을 통해 내가 배운 바가 분명하지 않다. 여러 가지 떠오르는 내용 중에 책의 주제에 가까운 내용부터 다룬다. 아래 내용을 이해하는 배경에는 도올 선생의 책과 유튜브에서 배운 바가 결정적이다.
'몸'은 이미 완벽하다. 그러므로 '몸을 이겨먹겠다는 머리'의 비현실적인 꿈을 걷어차는 것이 바로 수행의 방법이다.
회의 시간에 동료가 머리가 아프다는 동료에게 책을 인용하며 '뛰라(유산소 운동을 하라)'는 조언을 했는데, 그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내 기록을 살피다가 <스틸니스>에서 배운 내용도 배경 지식으로 작용했음을 찾아냈다.
흥미로운 이분법이 등장한다.
인간은 '자연自然지능'과 '사고思考지능'이라는 두 종류의 지능에 의존하여 생을 유지하고 있다.
둘은 무슨 차이인가?
'사고지능'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을 언어와 관념의 사용으로 보고 있으니, '사고지능'의 역사가 대력 20만 년이지만, 설형문자를 만들어 사고의 내용을 유기체 외부에 저장할 수 있게 된 3,300년 전부터 '사고지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19년에 <사피엔스>를 읽지 않았다면 무슨 소리인가 이해를 못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래 내용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배경지식은 1년 넘게 <월말김어준> 박문호 박사님 팟캐스트를 따라 들으며 익혔다.
'자연지능'이란 생명체가 환경에 대응하는 능력이다. 그 역사는 지구에 생명체가 나타난 시점으로 보면 약 38억 년이고, 유인원에서 인간이 분리된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600만 년이 된다. <중략> '자연지능'은 실상의 세계에서 자극과 대응이라는 연기緣起의 과정으로 기능하고, '사고지능'은 오감의 신경세포에 파동으로 전달되는 실상계를 관념으로 추상하여 만든, 가상현실의 세계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자연지능에 대한 아래 표현을 보니 '순리'가 떠올라 검색을 해보았다.
유기체 내외부의 전체 요소들이 일정한 순환과 평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자연지능'의 역할이다.
그러다가 내가 빙산을 운행하기란 말로 풀어낸 글과 그림을 찾아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발견한 사실은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기업을 경영하는 나의 삶이 나에게 (교회가 가르쳐줄 수 없던)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시골농부님은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아래 문장을 보며 생각의 한계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
이와 달리 '사고 지능'은 다른 모든 것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나'라는 주관적인 관념체의 사고 능력이며 인간 뇌의 전두엽에서만 작동된다.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만들어 놓고, 현상계의 사건을 상징화한 개념들을 거기에 배열하여 객관의 세계를 구성한다. <중략> '사고지능'이 만들어낸 진보의 결과물들은 실상의 세계 또는 전두엽의 주인과는 큰 상관이 없다.
그런데, 나의 지난 삶(20년)과 직업이라는 유산에 입각하면 소프트웨어 설계가 바로 '사고 지능'을 집약적으로 쓰는 일이란 사실을 배운다. :)
깨달음 소재를 잠시 내려놓고, 직업의 공간으로 넘어가 보자.
'사고지능은 끊임없이 자기 한계를 초월하려고 하며, 그것을 발전 또는 진화라고 한다.
인용한 문장은 내가 <진화하는 혹은 오래 사는 시스템 만들기>라 명명한 욕망과 연관된 표현이다. 다만, 화두만 던졌을 뿐, 책 이름을 인용한 <프로젝트에서 제품으로>라는 프로젝트는 아직 초기라 가시적인 결과가 견해가 부족하다.
그리고 다음에 인용한 문장은 시스템을 유기체로 보는 시각과 연결된 문장이다.
'사고지능'은 오직 집단지성 내에서만 의미가 있다.
소프트웨어 시스템에서 집단 지성을 구축하려면 두 가지 활동이 필수적이다.
피드백 반영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많은 글을 써왔다.
아래 문구들은 나를 다시 깨달음의 주제로 돌아가게 했다. 첫 단락의 제목인 '몸에 순응하라'를 상기시켜준다.
신체적인 역진화를 만들었다. 인간이 관념 세계에 적응하고 자연 세계를 떠나게 된 결과이다. <중략>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생명의 확장이라기보다는 관념의 비약이다. <중략> '사고지능'은 필연적으로 전지전능을 지향한다.
전지전능이란 단어를 보자 바로 <사고의 틀과 대의적 소프트웨어 설계 방안> 편에서 인용한 구글링 결과에 포함된 이데아가 떠올랐다. 사고의 틀이나 패러다임 모두 이상향을 갖는 듯하다.
하지만, 이상향과 이상 실현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
마침 아래 내용을 읽을 즈음 들어서인지 박문호 박사님의 <시간 구속을 벗어난 뇌, 사피엔스 되다> 강의에서 인간은 예측을 할 수 없으면 아예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설명한 부분이 떠올랐다.
'사고지능'의 탄생 동력은 본능적인 공포심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행동은 안 하고 걱정만 하는 패턴도 떠오른다. 예측이 안되는데 행동을 하려면 <주체와 객체 그리고 아기발걸음> 편에서 인용했던 바로 그 '기개'가 필요한 것인가?
다 자란 새끼 새가 둥지에서 뛰어내리지 않으면 날개가 펴지지 않는다. <중략>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둥지 밖으로 과감히 몸을 던졌을 때 비로소 날개는 저절로 펴져 온몸을 허공에 띄운다.
아래 문장을 보니 박문호 박사님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괴롭히는 거의 유일한 생물이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난다.
끝없는 진화를 요구하는 '사고지능'의 비교와 판단이 사라지면, 이미 아무런 문제가 없는 유토피아이다.
이제 자아실현도 버릴 때가 된 것일까?
'사고지능'의 프레임을 따라서 자신의 에너지를 투자하여 부족한 자아를 대한 자아로 진화하려는 노력에 빠진다. 고타마가 말하는 깨달음은, 갈고닦아 발전하여 완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고지능'이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깨치는 순간 지금 이대로 자유라는 것이다. <중략> '사고지능' 프레임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할지언정 속박되지 않도록, 이해하고 습관을 들여 체득되면 된다.
4. 깨달음과 깨달은 사람
10. 주체와 객체 그리고 아기발걸음
11. 홀로서기와 따로 또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