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영회 습작 Sep 19. 2022

쪽인 나를 세우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나를 차리는 언어 사용법 2

<미래에 중독된 인간의 두 가지 행동 양식> 편의 계기가 되었던 최봉영 선생님이 연락을 주셨을 때, 하나의 메모를 더 보내주셨다.


최봉영 선생님의 행위자 이론

그날에만 세 번이나 수정하여 보내주신 것인데, 대강의 가닥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나에게 어떤 쓰임새가 될지 바로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 열흘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아주 우연한 계기로 행위자 이론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바로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인 되기>라는 내가 쓴 글을 읽다가 아래 부분을 발견했을 때, 다시 시도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인간이 관념 세계에 적응하고 자연 세계를 떠나게 된 결과이다. <중략>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생명의 확장이라기보다는 관념의 비약이다. <중략> '사고 지능'은 필연적으로 전지전능을 지향한다.


온인 나와 쪽인 나

그 사이에 최봉영 선생님도 이론을 조금 더 발전시켜서 보내주셨다.

내가 이해한 '온인 나'는 시골 농부님의 글에 등장하는 '전지전능 지향'과 연결되는 인상을 받았다. 최봉영 선생님에 따르면 영어의 체계는 개별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온인 나'를 바탕으로 한다. 그에 달리 우리말은 전체의 일부임을 전제로 하는 '쪽인 나'를 바탕으로 한다.


절대를 지향하는 사고방식

무언가 명확하게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의 바탕인 '온인 나'와 사고 지능, 이데아, 전지전능, 기독교 등은 매우 연관이 깊다고 느껴진다.  

이들을 묶어서 임의로 절대를 지향하는 사고방식이란 말을 붙여본다. 시골 농부님이 자연 지능과 사고 지능으로 나눈 이분법에 약간의 여지(혹은 균열)가 있다고 해본다. 사고 지능은 언어로 구성되는데 최봉영 선생님 이론에 근거하면 영어로는 절대를 지향하는 방식을 체계에 갇히지만, 우리말에 바탕을 두면 그렇지 않은 방법으로 사고 지능을 활용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붙인 표현이 바로 절대를 지향하는 사고방식이다.


전체의 일부로 인식하는 사고방식

앞선 절대를 지향하는 사고방식을 명확하게 하려면 그 반대 혹은 여집합을 지칭하는 표현도 필요하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는 '불교적'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나는 불교 경전을 읽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이고 근거가 미약한 편향이다.

하지만, 시골 농부님의 책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을 읽을 때 공감하는 어떤 인식이나 느낌과 매우 유사한 사고방식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인 되기> 썼던 표현들도 유용하게 느껴진다.

몸에 순응하라 (이데아 추구하다가 건강을 잃지 말라)

사고 지능은 본능적 공포심과 붙어있다

자연지능과 빙산을 운행하기 (계획은 개나 주자)


쪽인 나를 세우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위 표현들에 대해 부연하려다가 [1] 먼저 즉흥성이 강한 이 글의 결론을 담아 질문을 던져본다.

쪽인 나를 세우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우리말을 보편적인 쓰임이 아니라 우리말답게 쓰면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쪽인 나'의 인식이 혹시 내가 '시고 농부님께 배우려는 바'와 내가 과학은 배우려는 이유와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을 푸는 일로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의 이름은 <나를 차리는 언어 사용법>이다. 이 글은 <미래에 중독된 인간의 두 가지 행동 양식>의 후속 글인데, 당시 글 말미에서 내가 최봉영 선생님과 교류하는 이유를 '정신을 차리고 현재를 차리다'라는 문장으로 정의한 바 있다. 거기서 연재의 제목을 따온다.


주석

[1] 결론으로 질문을 던지고 연재로 묶으면서, 부연하려던 표현들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룬다.


작가의 이전글 생각의 노예가 아닌 주인 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