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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Dec 21. 2021

아키타입, 그것은 설명이 필요없어야 한다

소비자 공학 연구 No. 4

지난 글에 이어 <사물의 언어>란 책을 가급적(?) 소비자 공학 연구의 관점에서 읽고 쓴다.

어디까지나 가급적이다. :)

2장인지 2부인지는 너무나 매력적인 내용이라 (내가 독자로서) 객관성을 잃은 듯했다.


원형, 공책을 사용하는 데는 사용 안내서가 필요 없다

너무나 멋진 말이다. 디자인이 무언지 정확히 모르면서도 체득한 경험속에서 추정하면, 나는 선천적인 다자이너 같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이런 문구에 푹 빠져서 한동안 시처럼 음미하는 나를 보면서, 다시 한번 나는 천상 디자이너라는 생각(혹은 편향)을 강화한다. (정작 나는 시는 음미하지 않을 뿐더러 최근에는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책에는 매력적인 원형(Archetype)으로 사물로 구현된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물의 사진들이 있다. 나는 정말이지 한참을 그런 뻔한(?) 물건을 감상하고, 또 감상했다. 삽화로 쓰려고 구글 이미지 검색을 했는데 기대와 달리 책에 나온 이미지는 없다. 반면에 원형을 구축하고 싶은 욕망이 드러나는 방법론과 스케치 흔적이 많이 보인다. 그렇구나! 나와 동족(?)들이 세상에 많구나. 계속 쳐다보면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얼른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 나온다.


원형의 정의로 돌아가서, 사용하는 데 설명이 필요없다는 말은 얼마나 멋진가? 자주 쓰지 않지만 토스의 UX를 보면 이런 감탄을 할 때가 있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앵글포이즈)
구조적 솔직담백함의 선구자로고 할 만큼 척 보기만 해도 사용법을 알 수 있는 직관성을 지니고 있다. 앵글포이즈는 기능적인 물건이지만 사용자에게 정서적인 관계도 약속한다. 책상이나 제도판에 놓여 있는 이 조명 스탠드는 집중과 창조적 노력을 나타내는 명백한 신호다.


정서적 관계와 신호

백문이불여일견이란 말처럼 수많은 말보다 사물을 보자마자 알 수 있게 되는 힘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사물의 언어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직관성을 넘어 우리와 관계를 설정한다. 이제야 왜 많은 사람들이 맥북에 매료되고 선호하는 차량 브랜드가 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사물이 신호를 보내고, 거기서 정서적 관계를 형성한다

물론, 그런 관계를 형성하거나 적극적인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


정서적 관계는 비단 구입에 따른 단순 사용에 그치지 않는다.

이 모든 물건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방을 사용하는 방식뿐 아니라 집 전체를 사용하는 방식까지 결정짓는다. 우리가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과 먹는 방식, 앉는 방식,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까지 형성하는 것이다.

그 사물이 없을 때부터 존재했던 삶의 공간에 침투하여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그에 반응하는 사람은 다르게 행동하고 삶의 방식이 바뀐다. 그래서 브랜드를 꿈꾸는 소비재 기업들이 라이프스타일이란 단어를 '돈'처럼 추구하는구나 깨닫는다.


하나의 범주가 되어버린 물건

앵글포이즈는 그것들과 꼭 마찬가지로 현대화에 대한 충동을 구현한다. 또한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원형이 된 제품의 한 예다. 앵글포이즈는 거의 구상되자마자 단지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범주가 되어버린 물건의 첫 사례로 자리 잡는데, 그로부터 25년 뒤 미니도 그랬다.

우리시대 가장 범용적인 사례는 스마트폰의 원형인 아이폰이 아닌가 싶다.

원형으로서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 물건의 기능이 무엇이며, 사용자가 그것을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 어떤 제품에 방대한 사용 설명서가 따라온다면 그 물건은 결코 원형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해도 좋다.

속이 시원한 문장이다. 바로 개발자 출신이지만 스스로가 보아도 개떡같은 소프트웨어를 20년 넘게 경험하면서 느낀 답답함의 원천을 알게 된 듯하다.

소프트웨어란 물건으로서의 응집력(cohesion)을 잃고 정신없이 만들기만한 혹은 그렇게 만들도록 닥닦한 무지한 관리자와 고객이 만들어낸 허접함


앞으로 우리가 만든 서비스는 설명같은건 붙이지 말자고 미친 소리를 해봐야겠다. :)

앵글포이즈가 나오기 전에, 한 손의 손가락으로 누르는 힘만으로 끌어올리거나 아래로 낮출 수 있는 램프가 꼭 필요하다고 누가 생각해봤을까. 그러나 일단 그것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생겨나자, 그 각 부분이 조화를 이루며 작동되는 방식에서 필연성이 느껴졌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데도 이전에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물건이 없었던 것이다.


구성요소의 재배치가 주는 혁신

와우...

티치오의 가장 놀라운 점은 전선을 대부분 제거했다는 것이다. 어수선하게 엉키는 부분 없이 램프와 전원을 연결해주는 전선 하나만 남겨두었다. 티치오는 그 받침대에 들어 있는 변압기를 사용한다. 이것은 티치오가 움직임에도 끄덕없이 버티고 서 있도록 무게를 확보해줄 뿐 아니라 페인트를 칠한 알루미늄 암 부분이 전기를 안전하게 흘려보낼 수 있을 만큼 전류를 낮춰준다.

쓰기를 위해 이 내용을 두 번째 읽었더니 책에서 제시하는 맥락을 넘어서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말하는 리팩토링도 코드 최적화가 아니라 디자인 맥락에서 보면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레카~ 최적화 차원에서 시작했을지라도 결과적으로 재배치하며 코드에 다른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자인 혁신이 가능할 수 있다. (일단 해본 것은 아니니.. 흥분을 가라 앉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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