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Trust Your Gut> 읽고 행동 변화 만들기 3
지난 글에 이어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 (원제: Don't Trust Your Gut)>의 2장 '아이를 잘 키우는 비결:'동네'가 중요하다'를 읽으며 감명을 받은 부분을 인용하고 생각을 덧붙입니다. 먼저 육아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데이터와 통계에 따른 '잘'의 정의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긴 합니다. 하지만, 육아에 대한 제 생각을 공유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가급적 책 내용의 범주 안에서 의견을 기록합니다.
결론적으로 사후에 곱씹어 보면 당연한 듯도 하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놀라웠다.
부모가 하는 모든 결정에 따르는 효과의 총합은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 다시 말해 부모들은 그들이 해야 하는 결정을 두고 필요 이상으로 속을 태우고 있다. <중략> 대개의 경우 아이가 양육되는 가정의 환경이 그 아이가 나중에 무엇이 되는지에 끼치는 영향은 놀라울 만큼 미미하다는 것이다. <중략> 새도트는 한 아이의 장래 소득에 본성이 끼치는 영향이 양육의 영향보다 2.5배 정도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에밀리 오스터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도 있다.
모유수유는 아동 발달의 여러 측면에 유의미한 장기적 효과가 없었다.
TV는 아이의 시험 성적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스와 같이 인지능력을 많이 사용하는 게임을 가르친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아이들이 똑똑해지지는 않는다.
이 책의 전개는 다수의 연구 결과가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세심하게 진행된 다른 연구들을 살펴보면, 부모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놀라울 만큼 아이들에게 영향이 작았다. 간단히 말하면 부모들이 하는 결정의 대부분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으며, 육아산업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만큼 중요하지도 않다.
과거에 나는 명리학을 조금 배운 일이 있는데, 명리학(사주)에 따르면 부모는 자식을 극복하려는 경향을 띄기도 한다. 당시에 사주 자체를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자연의 순환 이치를 고려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라 여겼다. 더불어 육아를 해 보면 아이들의 놀라운 관찰력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내 생각에는 아이들은 보고 배운다. 부모가 제한하거나 유도한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데이터가 증명한 것이 아이들의 이러한 부모에 대한 주체성과 독립 욕구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로 부모가 아이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려면 자기 행동과 삶으로만 가능할 듯하다. '부모에 대한'을 강조한 이유는 책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책에서 인용한 캐플린의 표현을 빌면 다음과 같다.
만약 당신의 아이가 전혀 다른 가정에서 자랐거나 당신이 전혀 다른 부모였다고 해도 아이는 거의 똑같이 자랐을 것이다. 당신은 옆집의 '슈퍼 엄마'와 '슈퍼 아빠'라는 기준을 따라가느라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그냥 당신에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방식으로 당신의 아이를 키워도 된다. 걱정은 그만해도 된다. 아이들은 제법 잘 자랄 테니까.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책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일화가 나오지만, 나는 또 명리학에서 배운 내용이 떠올랐다. 명리학은 사주 풀이에 쓰이는 이론이다. 사주를 해석하는 방법이 '육친법'과 '십신법'으로 나뉜다. 이유를 따져 보면 조선 사회까지만 해도 가족 단위의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에 사회생활 풀이를 강조한 '십신법'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가 된 이후에는 '육친법'은 도리어 부모, 형제, 자매 이외에는 효용 가치를 잃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는 풀이법이 '십신법'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다시 명리학 지식을 떠올리면서 아프리카 속담은 인간 본성을 다룬 문장으로 보였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마을 구성원들을 아이들이 자라면서 주변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찾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에게 투영해 보면, 나는 중학교 1학년 선생님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스무 살 이후 각성(?)한 다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끼쳤다. 어떤 면에서 나는 사회에 진출한 후에도 아이처럼 배운 부분이 상당하게 있었던 듯도 하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아래 사진은 The Opportunity Atlas에 데이터로 만들어진 기회의 지도 첫 페이지를 찍은 이미지다.
우리나라는 데이터가 없어서 아쉽다.
부모가 해야 하는 수천 가지의 까다로운 결정 중 단 하나가 다른 것들보다 훨씬 중요하다.
나에게는 이 장의 하이라이트가 이 부분이었다. 내 인생의 머니볼로 활용해도 될 변수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아이의 성공 확률을 높여주는 동네를 예측하는 세 가지 변수다.
주민들 중 대졸 이상인 사람들의 비율
양친이 있는 가정의 비율
인구조사 응답을 제출한 사람들의 비율
분석(해석) 내용을 보자.
이 세 가지 특징 모두 그 동네에 사는 성인들과 관련이 있다.
출신 학교와 관련이 있지 않다. 그리고 이들 세 변수에 대해 저자는 학력은 똑똑하고 유능함, 양친은 안정적 가정생활, 인구조사 응답은 시민사회의 활발한 참여를 전제로 했다. 나는 미국이 아니라 내 주변 환경에서 이 세 가지 변수에 아이를 많이 노출하는 가상의 동네를 만들 구상을 할 것이다.
저자의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성인들이 그 아이들의 삶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중략> 좋은 성인 모델은 좋은 학교나 경제적 번영보다 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부모가 아닌 성인 역할 모델이 중요한 이유다.
아이들이 자기 부모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반항하고 부모가 했던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려고 한다. 만약 당신이 고학력자에 모범 시민이라면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과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반면 아이들은 동네의 다른 어른들과 맺는 관계는 그보다 훨씬 덜 복잡하다. 길 건너편에 사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느낄 일이 없다. 아이들은 동네의 다른 어른들을 존경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
성역할의 대한 연구 결과도 육아 경험상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여자아이들이 성인 여성 발명가들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경우 발명가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여자아이들이 성인 남성 발명가들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경우에는 발명가가 될 확률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놀랍도록 흥미로워 반전마저 느껴지는 저자의 결론이다.
부모로서 당신이 하는 결정들은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옳다고 느껴지는 결정을 하면서 삶을 계속 살아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딱 한 가지는 예외적인 고민이다.
당신의 아이를 어떤 사람들에게 노출시킬 것인가?
2. AI 시대의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