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edict Evans라는 a16z 출신의 독립 분석가의 2003년 기술 전망 <The New Gatekeepers>를 보고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합니다.
어릴 때 '돈 놓고 돈 먹기'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경제를 잘 모르는 저는 저자가 주목하는 부분이 아닌 다른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The end of free money 부분은 수혜자도 아니고 최정우 님을 통해 자주 들은 통에 별 감흥이 없던 탓이 큰 듯합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이자율이 과하게 높았던 그래프를 보면, 은행의 인건비 등을 제외하는 이익은 어디에 썼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이후에 과도한 부동산 개발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건설적인 생각이 아니라 접고) 뒤에 다른 그래프를 보니 코로나로 돈이 풀릴 때 미국은 벤처 투자가 급격히 늘어난 점을 주목했습니다.
이자는 자본주의에서 합의된 거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품은 '사라질 수 있다' 혹은 '사라져도 된다'는 의미에서 쓴 표현입니다. 거품을 위험에 투자하는 일은 서구의 역사에서 하나의 패턴인 듯합니다. 저는 <오리진>에서 '물을 부로 바꾸다'라는 멋진 표현과 함께 배운 듯합니다.
기술을 향해 돈을 지르는 일은 위성 발사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에 잘 보이는 듯합니다. 제목에 있는 Optimism이 서구적 진보를 배경으로 한 말 같기도 하고, 테크에 태운 거품이 부로 돌아온다는 믿음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부정적 현상과 긍정적 현상을 요약해서 대비시킵니다.
그리고 순증 하는 컴퓨터 사용자수를 보여주며 'Real trend'라고 강조합니다. 앞서 언급한 위성 발사의 증가와 섞으면 단순히 컴퓨터 사용자가 아니라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용자라고 보아야 할 듯합니다. 위성은 음영 지역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란 기대감을 줍니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지만, 소득 수준이 낮거나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까지 거품을 이용해서 인터넷으로 연결하면 거대한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신대륙 개발과 닮은 면도 있습니다.
인터넷이 이제는 정말 지구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더 강화시켜 주는 그래프가 있습니다.
Gap Minder의 차트로 보니 소득 수준 각각 3, 2에 해당하는 거대 국가 중국과 인도가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을 인구 숫자만큼 차지하는 듯이 보입니다. 한국처럼 레벨 4에 오른 국가들은 트래픽이 늘어날 여지가 적겠죠. 이미 충분히 쓰고 있으니까요.
발표 자료를 보기 전에 제목이 <The New Gatekeepers>이란 점이 눈에 띄었는데요. 오래된 문지기로 백화점을 예로 들며 쇠락으로 들어서는 경향을 그래프로 설명합니다.
중국에서 일할 때 백화점에서 팔리지 않는 물건을 온라인(天猫)에서 파는 일에 관여했기 때문에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올해도 중국 역직구 관련 일로 만났던 유명 시내 면세점이 설이 지나자 폐업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기도 했네요. 면세점은 이제 업태 자체가 존속을 위해 고민할 때인 듯합니다.
신문 광고의 몰락은 더 급격합니다. 한국의 기레기 현상도 이런 경향의 단면이 아닌가 싶네요.
그렇다면 백화점이나 신문 광고를 대체하는 문지기들은 무엇일까요? 유통 혁신의 아이콘인 아마존은 GMV 기준 월마트 수입을 따라잡았다고 합니다. 백화점이 차지하던 자리는 이제 아마존의 몫일까요?
초기에 떠올렸던 '거품'이 기대하는 바를 더해봅니다. '거품' 대신 '자본'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지만, 거품이라 쓰겠습니다. 거품은 아마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투자한 나에게도 무언가 달라고 할 듯합니다. 충분히 나눠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백화점과 아마존을 비교하면 '거품'에게 돌려줄 '공간'이 보입니다.
백화점은 지역 시장에 갇혀 있지만 위성이 잘 작동한다면 전 세계 소득 수준 향상과 비례하여 아마존의 시장은 커진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최대 50억 명이 주문할 수 있는 시장으로 말이죠.
a16z 출신답게 소프트웨어가 광고를 먹는다고 표현하는군요. :)
네이버에 걸려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필요로 하는 이유도 여기 있을까요?
광고 수입에 대한 이야기인데, 글로벌 Top10에 알리바바나 아마존 같은 커머스 공룡들이 있습니다. 백화점은 광고주였는데, 알리바바나 아마존은 광고 채널이 되었네요. 기술이 바꾼 세상이 훤히 보이는 그래프입니다.
어쩌다 보니 부전공[1]이 된 리테일 도식들이 관심을 끕니다. 백화점이 입점 수수료 수입을 얻었다면, 새로운 문지기인 아마존(혹은 알리바바)은 광고 수입을 추가합니다. 신문 광고를 대체해서 말이죠.
그런데 신문 광고의 동인과 아마존 광고를 하는 이유는 조금 다른 듯합니다. 인터넷이 가능하게 하는 거대한 품목(SKUs) 혹은 이를 취급하는 방식을 말하는 롱테일이 상품을 고객에게 도달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도달 비용으로 광고를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인용한 Jeff Bezos의 말은 제 주장을 뒷받침해 줍니다.
리테일 테크가 부전공인 터라 아래 그림은 저자가 보여주려는 메시지에서 조금 벗어나 해석하게 됩니다.
먼저 저희 회사인 베터코드가 만든 중국 역직구 서비스 요우마를 하면서 겪은 경험을 두 축에 대입해 보게 됩니다. 먼저 물류 쪽에서는 중국 해관이 제공하는 통관 API 등의 인프라 위에 구축된 것이고, 고객 발견(Discovery) 영역을 보면 위챗이라는 중국의 국민앱 위에서 관계망이 있기에 가능한 서비스 모델이었습니다. 인터넷상에 이미 구축된 산업 인프라가 Enabler로 작용한 것이죠.
저희가 하는 시도를 보편적 시각에서 보면 크로스보더 커머스인데,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공룡들이 차지하거나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는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한동안 D2C라는 용어와 함께 주목을 받았던 Nike의 사례에 이은 다음 도식은 흥미로운 자극이 되었습니다.
무재고에 수렴하도록 개인화가 지역화가 가능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능력 그리고 소비자가 익숙한 다양한 채널에서 어필할 수 있는 역량을 응집시키는 형태가 아니라면 브랜드는 그저 상품 공급상으로 전락하기 쉬운 형국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인용한 그림은 위와 같은 고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합니다. (감이 잡히지 않지만, 흥미를 지닌 독자가 있다면 <디커플링> 책을 권합니다.)
Shein? 중국을 떠나 있는 사이에 빠르게 성장한 현상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internet-native란 신조어를 붙이면서 'New channels + new tech = new SKUs'라고 설명합니다.
new SKUs는 무슨 말인가 싶은 표현인데 부연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홈쇼핑 업계에서 '채널 재핑'이라고 부르는 표현이 보입니다. Cable unlocked channel slots라는 문구에 들어 있는데요. 순차적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홈쇼핑을 보게 되는데, Unlocked 즉 그 효력이 사라져 가는 것이죠.
비슷한 변화로 스트리밍 때문에 시간대별 편성(time slots) 같은 효과도 효력이 없습니다. 검색이나 추천, 광고 같은 방식이 상품 대면(discovery)을 대신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67쪽에는 전통적인 문지기와 새롭게 자리를 차지한 문지기를 대응시켜 두고 있습니다.
정말 급격하기도 하고 과하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모두가 ChatGPT에 대해 말하는 나날들의 배경을 아래 도식이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미래는 비교적 긴 시간을 노력한 자들이 바꾼다는 교훈을 보여줍니다.
[1] 저는 소프트웨어 개발/설계 전문가로 IT 컨설팅을 20년 정도 했는데, 2011년 이후는 리테일 혹은 커머스 관련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일(O2O, Digital Transformation)과 커머스 지원 SaaS 개발 등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