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 그러나 계속 해내어 가는

by 탤미

어제 아이들 반찬을 해낼 요량으로 이것저것 만들어봤다. 남편이 떡볶이가 먹고 싶다기에 산 오뎅 중 남은 것이 있어 ‘오뎅볶음’을 하고, 그 외에 ‘브로콜리 계란 샐러드’, ‘두부 브로콜리 무침’ 등을 만들어 먹였다. 오랜만에 부단히 조리해 저녁에 먹이고,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오늘 홀로 점심을 먹으려고 꺼내서 맛을 보니, 아불싸, 오뎅볶음이 너무 짰다. 따뜻할 때는 그럭저럭 맛있었던 것 같았는데, 차가워진 음식을 먹으니 그 짠맛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네 살 난 딸과 열여섯 달 된 아들에게는 너무 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간장을 덜 쓴다고 했고, 심지어 물도 여러 번 타서 볶았는데도 짠맛이 여운으로 남을 만큼 아이들이 먹기에는 간이 셌다.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참, 별것 아닌 일로 고민하고 있네.”라고.


어쩌면 이런 고민은 주부의 숙명인가 싶기도 하다. 오늘은 무엇을 먹일까. 날이 더운데 어떤 옷을 입힐까. 그래도 실내에 있으면 에어컨 바람에 조금 춥지는 않을까. 발목 양말을 신겼는데 불편하지는 않을까. 조그마한 불편함도 남겨주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 나는 어느샌가 그런 마음속 물음에 함몰되어 살아가게 되었다. 지지부진하고도 큰 의미 없는 일에 열정을 쏟아내는 엄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때 김창옥 씨의 강연을 곧잘 듣곤 했었다.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지루하고 재미없고 따분한 것을 성실하게, 꾸준히 지속해가는 것이다.”
그때는 그 말이 나의 삶의 다른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가족을 향해, 즉 아이를 향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이해가 된다.

그렇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기에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목매어 걱정하고, 배려하고, 생각하고, 고민한다. 나의 모든 사랑의 표현은 아이들을 향한 지속적인 보살핌으로 실현된다. 그래서 나에게 사랑은 보살핌이다. 그리고 보살핌을 받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사랑은 참 이기적이었다. 이성에게 보살핌을 받는 것으로 사랑을 강요했고, 그것을 원했다. 나를 배려해주길, 나를 위해 시간과 물질을 써주길. 그리고 그런 보상이 이루어졌을 때, “아! 그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겉핥기식 사랑이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에만 몰두하고, 정작 내가 그를 위해 희생하는 사랑은 알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살아가고, 아이를 낳으면서 알게 된 건 “온전한 사랑은 지루함의 연속을 참아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 지루함은 이타성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나의 사랑은 피곤함과 죽을 것 같은 곤비함에도, 책임져야 하고 보살펴야 할 대상 앞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절규의 소리다. 머리에 돌덩이가 얹혀진 것처럼 무거운 날에도 내가 보살펴야 할 대상을 먼저 생각하는 것. 입힐 것과 먹을 것, 보낼 시간을 고민하는 일을 매일 해나가는 것이 사랑임을 이제서야 아주 조금 알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내가 가엾고 서글프다. 과거 예쁘기만 하고 무지몽매했던 사랑을 하던 철없는 내가 부럽고 그리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 나에게 기분 좋은 미소를 띄우고 싶다.
조금 더 성숙해진 내가 괜찮다고. 고단함이 있는 지루한 사랑을 해내어 가는 내가 기특하다고.
그래서 나에게 현재의 사랑은,


“지루함을 계속해 해내어 가는 바지런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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