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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G G Sep 08. 2023

차마 보내지 못한 글

너는 너무 모르고, 나는 아프다.

5교시 수업시간,

한 아이가 책상 위에 물을 흘렸다. 처음엔 물을 마시다가 물이 조금 쏟아졌는데 그게 아이가 계속해서 물을 붓더니 책상 위는 물로 뒤덮였고, 책상 위를 넘어 바닥으로 뚝뚝 흐르고 있었다.

수업 중에 치울 생각도 없어 보이고, 치우라고 하면 계속 장난을 치며 아이들 시선을 끌게 뻔해 수업 끝내고 치우도록 하려고

"@@, 수업 끝나고 남아."

라고 말했더니 그 아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

"젠장"


"??"

"그거 선생님한테 말한 거니?"

"선생님한테 한 말 아닌데요"


부글부글....

그치 않아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매주 계속되던 추모와 집회, 9.4 공교육 멈춤의 날, 그리고 함께 동참하기를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 오늘까지 심신으로 피곤하던 한 주였다. 게다가 최근에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들의 기사를 접할 때마다 다 내 이야기 같아서 너무 화나고 아프고 속상해서 힘들었었는데 오늘 저런 욕 같지도 않은 말까지 들으니 참. 내 신세 자괴감을 넘어 처참하고 처량하다.


엊그제는 수업시간에 교과서 표지를 찢어 앞뒷장에 같은 반 아이 이름에 ㅂㅅ 등 온갖 욕을 써서 다른 친구와 주고받으며 히히덕대고 좋아라 했던 바로 그 녀석이다.

학부모에게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과 어떻게 지도를 했는지, 상대 아이에 대한 학교폭력으로 커질 수 있는 우려를 함께 글로 전달해서 보냈더니 돌아온 답장은 "저거 우리@@이가 쓴 게 맞나요?" 이거였다.

헐.. 이런 학부모에게 내가 무슨 아이에 대한 지도를 바란단 말인가.


오늘 역시 아이의 행동이 이건 아니다, 도가 지나쳤다, 선 넘었다 싶어서 그 일이 있고 나서 바로 학부모에게 글을 썼다.  (요즘엔 카톡처럼 교사 핸드폰 번호 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민간기업 어플이 있어 그것으로 소통한다.)

@@어머니,  오늘 5교시 영어시간에  @@가 책상 위에 물을 부어서 책상 위뿐 아니라 바닥까지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실수로 쏟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치우려고 하기보다는 더 물을 부으며 장난만 치고 있어서 남아서 치우라고 했더니 큰소리로 저한테  "젠장"이라고 말합니다. 저한테 말한 거냐고 물으니 혼잣말했다고 해요.  @@가  저한테 젠장이라고 말한 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오늘  @@ 남겨 이야기 좀 나누고 집에 보내겠습니다. 그 와중에 @@는 학원에 안 가서 좋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교사이지만 아이들 앞에서 이런 욕을 들으니 매우 충격이 큽니다. 한 사람으로서 매우 당황스럽고  화도 나고 자괴감도 들지만 더 이상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당장 보내고 싶었으나 아이와 이야기를 좀 더 해본 뒤에 보내기로 하고....


수업 후 남은 그 아이와 대화를 했다. 나도 이미 화는 많이 가라앉았고, 그 아이도 쭈뼛쭈뼛해하는 게 뭔가 눈치로 죄송한 마음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우선 아이의 말을 들어보고, 그런 상황에서 선생님인 내가 어떻게 느꼈을지 생각해보게 했다. 아이가 잘 모르기도 했고, 표현을 못하는 것 같아 솔직한 마음을 아이에게 자세히 알려줬다. 선생님은 네 말을 들었을 때 많이 부끄러웠고, 화도 났고, 마음이 아팠다고... 선생님 앞에서 망신을 주면 선생님을 힘을 잃어서 너희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말도 함께...


뭐 네가 나 화나라고 일부로 의도해서 그런 말을 했느냐만은 그 말을 받은 나는 아픈 건 아픈 거다.

아깐 당장 교권보호위원회라도 열어야겠다, 그냥 못 넘어간다며 속으로 으르렁대던 마음이었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아이가 자기 행동에 대한 상대방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에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학부모에게 보내려던 글도 차마 보내지는 못하고, 그날 적는 기록에만 남겨뒀다. 나중에 학부모 상담 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학교 생활이 많이 힘들다. 나의 경우에는 나는 진짜 교사로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 왔는데 아이들이 변하는 게 없어 보일 때 가장 좌절한다.


요즘 들어 힘들다는 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일들로 기운이 많이 빠진다.


주말엔 힘을 내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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