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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과 태영 Oct 20. 2020

기억을 기록하며

토론을 시작하는 발제자료를 제출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언제 자기의 세계관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경험을 하는지 궁금하다. 혹은 언제 현재 자신의 관점을 형성한 계기가 있었는지, 그 시점을 기억하는지도 궁금하다. 그 몇 번의 경험들이 우리 삶을 다르게 만들 가능성을 선물하다고 생각하고, 그 가능성들이 모여 사회도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으로서도 사회로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박탈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배움의 기능이라고도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체화당은 내게 아주 소중한 배움의 자리였다. 나는 여기서 사회를 보는 여러 가지 관점을 형성했다. 체화당에서 만난 이들과 나누었던 몇 번의 대화는 지금도 뭔가 헷갈리는 순간에 기억에서 꺼내 활용하는 사유의 재료가 된다. 그 뿐 아니다. 가끔 분에 넘치게도 청년 세대의 사회적 참여에 대한 이야기를 요청 받아 하게 되는 순간에 늘 결론처럼 언급하는 포인트가 있는데 바로 ‘좋은 기억의 원형’을 만들라는 것이다. 특히, 동료로서 민주적인 협력의 경험이 적은 이들에게 공동 작업이라 함은 언제나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억의 원형이 있으면 좋다는 의미로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어떤 관계와 작업의 경험이 원형이 된다고 할 때는 그 기억의 서사가 나름 기승전결, 희노애락과 같은 복합성을 띄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매우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풀어내본 경험, 고통스럽게 엉킨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일단락 된 경험 같은 것이 쌓일 때 우리는 협력의 자기 서사를 갖게 되고, 그 자기서사가 축적되고 업데이트되며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오만하게 ‘기억의 원형’ 운운할 수 있었던 건, 내게 체화당이란 공간이 선물처럼 존재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 체화당에서 관계의 쓴맛도, 조직하는 것의 어려움도, 사업화하는 것의 한계도 조금씩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운이 좋은 것은 지금 이렇게 체화당이라는 장소를 정리하는 순간에 체화당에 내어줄 마음의 자리가 남아있어 부족하게나마 기억을 기록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체화당 같은 장소 운영을 하게 된다고 해도 더 경영적으로 튼튼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차피 못하는 것을 돈을 벌겠다고 무리해서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더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중심으로 장소를 운영해보는 것이 안 해본 일이니까 그렇게 체화당의 기억으로부터 연장된 다른 실험을 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기록을 접하게 되는 이들도 비슷한 온도로 글을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기록은 마을카페 잘하는 법에 대한 솔루션이나 메뉴얼이 아니다. 우리의 시간들을 꼼꼼히 훑고,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 준 좋은 질문을 잘 정리해 공유하고자 했다. 그게 완성된 비즈니스 모델의 힌트는 당연히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소를 통해 개인과 사회가 성장하기를 바라며 이 어려운 작업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질문이 있고, 그 질문이 체화당의 기억으로부터 이어질 수 있다면 체화당은 결국 끝나지 않은 실험이 될 것이라는 욕심을 부려본다. 


  이 기록이 체화당을 거쳐 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기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체화당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이 이 장소를 거쳐 간 이들의 공동의 일감이었던 만큼 그 정리도 이 기억을 공동으로 소유한 이들이 함께 참여한 것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모두가 만족할 만큼의 토론을 진행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시점에 기록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기억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 책을 공동으로 작업한 김지연의 노력 덕분이다. 그 현실과 노력을 함께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토론은 열려있고, 이제 체화당 바깥에서 시작될 토론의 발제 자료로 생각해주시면 어떨까 싶다. 


이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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