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 Jun 14. 2024

질문이 많은 아이

1. 심리상담을 해오면서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질문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즐기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입니다. 작게는 "오늘 하루 상담실에 오신 분들을 어떻게 대했고 최선을 다했나?"입니다. 이런 질문들을 하는 이유는 마음을 다하는 것은 내 능력과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평소 인간관계에서는 “저 인간은 대체 왜 저 모양일까?”할 때 많지만.     


2.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땐 더욱 질문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새롭거나 궁금한 것들을 보면 늘 물음표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궁금한 것들이 생기면 나름대로의 답을 찾을 때까지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참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참기 어려운 궁금증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질문하면 귀찮아하거나 피곤해했고, 난 늘 귀찮은 존재가 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날 이해해 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 속상했습니다.

     

3.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지만) 5학년 때 일이었습니다. 수학 시간이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칠판에 문제를 풀어 주셨습니다. 내가 푼 것과 비교하며 들었는데 답은 선생님이 알려주신 것과 동일한데 과정은 너무 달랐습니다. 궁금함에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푼 것과 선생님이 풀어 주신 게 전혀 다른데 답은 같아요. 왜 그런 걸까요?" 내 질문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그날 선생님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무슨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소리 지르시며 꽤나 긴 시간 동안 저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당황스러웠고 얼어붙어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질문 한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친구들 앞에서 너무나 수치스러웠습니다.


4. 중, 고등학교 때도 많은 질문들을 하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때 선생님처럼 나에게 화를 내는 분은 없으셨지만 대체로 시큰둥하시거나 귀찮아하셨습니다. 전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건 상대를 귀찮게 하거나 나를 싫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질문들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대학, 대학원에서도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며 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나를 잘 지켜왔던 저는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하면서 어렵게 왔는데 본전은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업 시간에 수도 없이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한 질문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면 그 설명에 대해 또 질문을 하고, 설명해 주시면 또 질문을 했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궁금한 게 많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났던 분들과 다르게 교수님께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질문에 답을 해주시고 나서 웃으시며 "선생님은 참 집요하시네요, 상담하는 분들은 이런 면이 필요해요."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반응에 놀랐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반응해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게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참 오래 걸린 것 같았습니다.

 

5. 저는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애써왔습니다. 누군가 도와주었더라면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원망도 있었지만 어느새 혼자 고민하고, 혼자 답을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답해주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던 점은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지만 답답하기도, 좌절스럽기도, 짜증이 나기도, 외롭기도 했습니다.

                   

6. 부모가 되어 알았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참 피곤한 존재였을 수 있겠다는 걸. 아들이 누굴 닮았는지 궁금하거나 의문이 생기면 집요하게 묻곤 합니다.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받을 땐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궁금증에 호기심을 갖고 귀담아듣고 얘기해 준다는 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나는 화나 짜증은 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면서 질문하는 아들에게 되물었습니다. "너는 그게 왜, 언제부터 궁금해졌니?" 잠시 생각하더니 이런저런 얘기를 합니다. 듣다 보니 꼭 내가 답을 할 필요는 없구나 하는 생각도, 이런 대화가 재미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어릴 때 누군가와 해보고 싶었던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덕에(?) 아들이 궁금해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 같아 제법 괜찮은 아빠가 된 것 같아 으쓱하기도, 최악의 아빠는 피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전 02화 불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