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닮은 사람
솔직히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집에 덜컥 따라가는 일 따위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도를 아십니까?"를 떠올리며 걸음을 재촉했고, 낯선 사람이 베푸는 호의에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런 내가 홀린 듯 처음 만난 그녀를 따라나선 건, 순전히 그녀의 무해한 미소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곳 싱가포르에서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완벽한 타인이다. 나를 아는 사람도, 체면을 따지는 사람도 없다.
그 익명성은 굳게 닫혀 있던 내 안의 빗장을 열게 한다. 길에서 만난 낯선 할머니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아이의 학교 파티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낯선 도시는 그렇게 나를 자꾸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했다.
호커센터를 지나 5분 정도 걷자 대저택들이 즐비한 언덕이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3층 저택에 그녀가 멈춰 섰다. 사람 키의 두 배는 족히 넘는 육중한 대문이 스르르 열리자, 훌륭하게 조경된 정원과 수영장이 드러났다. 차고에 주차 중인 슈퍼카에 주눅이 들던 찰나,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를 재촉하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서 들어와.”
이 나라는 참 묘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사회적 지위 같은 건 묻지도 않고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굳게 닫힌 대저택의 대문을 활짝 열어주기도 하니까.
식당에서 주문받는 종업원이나 편의점 직원들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면 서툰 발음으로 "안녕"을 외치며 눈을 반짝이곤 한다. 그 눈빛에는 그 어떤 경계심도 없었다. 초면이었지만, 그들이 소비한 수백 시간의 한국 콘텐츠 덕분에 이미 오래된 내적 친밀감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잠깐 앉아 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차를 내올게.”
헬퍼(가사 도우미)가 들고 나온 은색 쟁반 위엔 뜻밖에도 샛노란 스틱, 한국 믹스커피가 놓여 있었다.
대저택의 귀한 대접이 믹스커피라니.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헬퍼는 익숙한 듯 커다란 티팟에 스틱을 딱 하나만 넣더니 물을 콸콸 붓기 시작했다.
"Wait! Stop, Stop!"
나도 모르게 다급한 외침이 튀어나오자 헬퍼가 깜짝 놀라 주전자를 멈췄고, 집주인 할머니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물 조절이 생명이거든요."
나는 티팟을 밀어 두고 새 스틱을 찻잔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종이컵 반 잔의 황금 비율로 물을 자작하게 부었다. 티스푼으로 휘휘 젓자 꾸덕한 크림색 거품이 일며 달큼한 향기가 거실을 채웠다.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셔보던 그녀가 감탄했다.
"Oh my god! 원래 이런 맛이었어?"
나는 그녀의 반응에 내심 뿌듯해하며 말했다.
“Too much water makes it bland. (물이 너무 많으면 싱거워져요.)"
내 말에 그녀는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Just like this house. Too much space makes the warmth disappear. (이 집이랑 똑같네. 공간이 너무 넓으니까, 온기가 다 사라져 버려.)"
그녀의 혼잣말 같은 대답을 듣자, 그제야 그녀가 왜 처음 보는 낯선 외국인을 선뜻 초대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녀의 깊은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찻잔을 만지작거리는 그녀의 등 뒤로 흐르는 적막함만큼은 숨길 수 없어 보였다. 처음 대문이 열렸을 때, 수영장과 슈퍼카를 보며 느꼈던 압도적인 부러움은 어느새 묘한 ‘측은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스틱 하나를 큰 티팟에 우려내려 했던 것처럼, 그녀는 너무 넓고 화려한 공간에 홀로 희석되어 밍밍해져 있었던 건 아닐까?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넓은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무릎이 닿을 만큼 가까운 온기였다.
우리 집은 좁다. 하지만 그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살을 부비며 서로의 온도를 나눠 가져야 한다. 웃음소리도, 싸우는 소리도, 사랑한다는 말도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좁은 공간 안에 진하게 고여 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이삿짐 박스들이 쌓여있었다.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우리 집 거실이 꽤 아늑해 보였다. 마치 물 조절에 성공한, 그 맛있는 믹스커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