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by 그리고

약속이 없는 날, 날씨가 좋으면 이불 빨래를 한다.

오늘은 아이 이불이 당첨이다.

우리 집 이불 중 가장 헤지고 낡은 이불이 찢어질까 봐 세탁기에서 가장 유연하고 조심스러운 코스를 선택했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바싹 구워진 이불을 걷을 때면, 습관처럼 이불에 코끝을 파묻는다.

따끈하고 바스락거리는 이불속에는 섬유유연제로는 흉내 낼 수 없는 달큼한 향이 배어 있다.

한나절 내내 뛰어다니며 달아오른 아이의 정수리에서 나던 바람 냄새, 고사리 같은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할 때 풍기던 달짝지근한 사탕 냄새.

따뜻함에도 향이 있다면 분명 이런 냄새가 나지 않을까?

갓 세탁이 끝난 이불에는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아이와 함께한 시간의 흔적이 숨어 있다.


아이를 낳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세상에 갓 나온 생명은 자신의 작은 몸짓에도 소스라치게 놀란다는 것을.

잠결에 흠칫하며 허공을 젓는 아이의 가슴 위로 이 이불을 가만히 덮어주던 밤들을 기억한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이불의 무게감에 안도하며 금세 깊은 잠으로 빠져들곤 했다.

잠잘 때뿐 아니라 낯선 여행지에서도, 불안할 때도, 언제나 그 이불을 꼭 끌어안아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그 이불은 아이의 세상에 하나뿐인 ‘애착 이불’이 되었다.


아이가 말문이 트이면서 그 이불은 ‘꼬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쿨쿨’ 잘 자게 해주는 이불이라는 뜻이었지만, 서툰 발음 탓에 ‘꼬꼬’가 되었다.

꼬꼬는 아이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했다.

아이의 키가 자라는 동안, 꼬꼬는 모서리가 해지고 색이 바래 본래의 형체를 잃어갔다.


몇 달 전, 낡아버린 꼬꼬가 안쓰러워 똑같은 브랜드의 새 이불을 사준 적이 있다.

뽀얗고 보드라운 새 이불을 보며 아이가 환호할 거라 믿었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는 새 이불을 밀쳐내며 서럽게 울었다.

자신을 안심시켜 주던 그 특유의 냄새, 손끝으로 만지작거릴 때 느껴지는 오돌토돌한 보풀의 감촉, 즉 ‘꼬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다.


결국 쓰레기통으로 향할 뻔했던 헌 이불을 다시 찾아주었을 때야 아이는 눈물 젖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시간이 흐르며 꼬꼬는 더 낡고 작아졌지만, 아이는 여전히 꼬꼬와 함께 잠이 든다.

익숙한 냄새, 손끝에 닿는 낡은 감촉이 아이에게 여전히 포근한 위로가 되어준다.


잘 마른 이불을 곱게 개어 아이의 침대 위에 올려두고, 오늘의 두 번째 커피를 내렸다.

오래된 머그컵의 지워지지 않는 커피 얼룩이 눈에 띈다. 수많은 아침을 기억하고 있는 시간의 흔적이다.

낡은 머그컵에는 새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한 다정이 있다.

수많은 아침을 나와 함께 깨어나, 나의 피로를 묵묵히 받아내며 생긴 얼룩들이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럽다.


어쩌면 사랑이란 아이처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낡은 이불의 해진 촉감 속에 제 세상을 평온히 정박시키듯, 진정한 사랑 또한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부드럽게 마모된 뒤에야 그 정수를 드러낸다.

빛바랜 색과 닳아진 모서리는 서로가 함께 보낸 다정한 시간의 훈장이다.


새것의 빳빳함보다 오래된 것의 유연함을 사랑하고, 완벽함보다 손때 묻은 편안함을 더 깊이 신뢰하는 마음.

그렇게 낡아가는 것들이 건네는 무언의 다정을 온전히 품어내는 법을 아이에게서 배운다.

나 또한 아이처럼, 내 곁에서 함께 낡아가는 모든 존재의 서늘한 품을 기꺼이, 그리고 깊이 사랑하고 싶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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