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리 May 27. 2024

그냥 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

학창시절을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음악 분야에 있다 보니까 당연하게 처음 전공을 시작할 때부터 피아노가 메인으로 필요한 직업은 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대한 열망이 생겼던 게 대학에 들어가고부터 '그럼 나는 이 전공을 살려서 뭘 할 수 있지?' 같은 고민을 혼자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 같다.


피아노를 그만 두고 나서 편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대학원에 대한 목표가 사그러들지 않았던 이유도 어쩌면 대학원을 가서 새로 하게 될 공부를 해야 다른 직업으로 일을 할 수 있을거라는 이상한 신념? 같은게 자리잡아버린 것 같았다.


그러다가 방황하는 기간이 1년, 2년 이어지면서 내가 정말 관심을 갖고 힘들지언정 포기하지는 않을 만한 일은 무엇이고, 과연 있을까 하는 고민이 계속되니까 대학원을 굳이 가지 않고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다시 깨달았다.


*


편입도 하고 졸업한지도 한참 됐는데 가장 친한 친구들이 피아노 전공할 때의 친구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 전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담당 교수님은 아니었지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다 포함되어 있던 클래스의 교수님께서 친구에게 나의 근황을 물어봤다는 이야기도 스쳐지나가듯이 전해들었다.


"OO이는 뭐하고 지내니? 잘 쳤었는데 너무 아깝다" 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는 '아… 그래도 내가 대학에서 열심히 연습했던 것이 쓸데없는 짓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좋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재수를 했음에도 초반에 그 충격이 있었던 건지 몇 년동안 힘들게 연습하면서 쌓여왔던 게 터져버려서 그만 둘거라고 난리 쳤던 영향이 사라지지 않았었는지 연습실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역때 보다 현저히 떨어진 실력으로 입시를 치뤘고 당연히 처음 들어본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1학년 때 배정된 교수님 실력은 정말 좋았고, 잘 가르치셨으며 입학 전에 학기 위클리를 대비해 연습해 간 곡으로 처음 연주해서 높은 점수를 받았었다. 딱 한 마디를 실수하지 않았으면 A를 받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칭찬을 들었다는 경험이 어쩌면 좋지 않은 학교에 갔음에도 나를 주눅들게 하지 않은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실기시험이나 위클리 차레가 다가오면 학교의 불이 다 꺼지고 달빛만 비출 때까지 연습을 했었고, 새벽에 일어나서 연습하러 갔었다. 연습이 잘 돼서 레슨 때 혼나지 않고 끝나면 괜히 기분이 좋아서 그 날은 수업도 즐거웠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열심히 놀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연습하면서 다녔던 것 같다. 성적이 바닥을 긴 적도 없었고 눈물이 날 만큼 혼이 난 적도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학교 생활을 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나에게 피아노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건 전공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어쩌면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이자 의무였고, 빚을 내서 뒷바라지 해준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었다.


그래도 그만 두기 직전까지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기 보다 재밌었고, 연습한 만큼 내가 투자한 만큼 만족할 만한 결과가 성적으로 나와서 후회없이 미련없이 편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당시의 나에겐 피아노에 대한 재능은 없었을지언정 성실함과 꾸준함이라는 재능은 있었던 것 같다.


유튜브 영상이나 책을 볼 때 이 문장이 자주 눈에 띄는거 보면 지금의 나는 이 재능이 사라진 상태인가보다. 될지 안될지 모르겠으니까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 먹고, 그 핑계로 시도했다가 포기하길 반복하고, 하고 싶다면서 한 달 이상을 꾸준히 이어가지 못한다.


하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누군가 그랬다. "뭘 어떻게 해. 그냥 해.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 생각을 하면 고민을 하게 되고 변명을 떠올리고 머뭇거리게 되고 그러다가 주춤하고 결국엔 포기하게 된다. 이 과정을 나는 퇴사하고 계속 반복해왔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용기도, 위로도, 희망도, 절망도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생각없이 그냥 하는 행동이 필요할 뿐인 것 같다.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나는 뭘 하겠다는 말도 굳이 할 필요 없이 그냥 해야겠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된 것 같다. 하다보면 기회가 오겠지.


사람은 누구나 재능이 있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 대신 그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해보는 게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해봐야한다. 그리고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야 한다. 열심히 꾸준히 성실하게 하다보면 기회가 오지 않아 실망하기보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낼거라고 믿는다.


*


당연히 목표는 필요하겠지만 자잘한 것들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해야지.

이전 26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