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헨리(O. Henry)의 소설 ‘마지막 잎새’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아픈 존시에게 마지막 희망을 주었던 담쟁이덩굴이라는 식물을 기억할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담쟁이덩굴 (영명 Boston ivy 학명 Parthenocissus tricuspidata (Siebold & Zucc.) Planch.) 은 한국에 자생하는 종류로 세 개의 뿔 모양 잎을 가지고 있고, 미국담쟁이덩굴 (영명 Five-leaved ivy 학명 Parthenocissus quinquefolia (L.) Planch.) 은 손바닥모양의 겹잎으로 5개의 소엽으로 이루어진 잎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의 담쟁이덩굴이 정확히 어떤 식물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잎을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 놓았길래 마지막까지 잎이 남아있다고 생각했을까 하며, 극적인 소설의 전개에 안타까웠던 기억이다.
부모님 댁은 오래된 주택인데 이사할 때부터 반짝이는 적벽돌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덩굴이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한쪽 벽면을 타고 오르며 지붕 밑까지 뒤덮고 자라나, 녹색으로 반짝거리는 여름 잎은 푸르른 싱그러움으로 집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잎은 타오르는 듯 화사하게 집을 치장해 주는 듯했다.
담쟁이덩굴로 덮인 건물은 자연과 어우러져 숨을 쉬듯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져 단조로운 도시 풍경을 한결 감성적으로 만들어준다.
담쟁이덩굴은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데, 과천에도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벽을 따라 심어놓아 매년 열매를 맺고 가을볕에 물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저히 뿌리를 내릴 공간이 없을 듯 매끈한 벽에도 자그마한 흡반을 뻗어내어 꼭 붙들고 자라는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다.
담쟁이덩굴은 해가 짧아지는 늦가을부터 엽록소가 파괴되어 안토시아닌, 크산토필, 카로틴 등이 품고 있던 색을 드러내며 예쁘게 물들어 간다. 결국 모든 잎을 떨구어내고 소모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여 겨울을 날 준비를 마치게 된다.
반짝반짝하는 초록색 잎도 예쁘지만 붉게 물들어가는 잎도 너무나 매력적이라 한번 꼭 그려보고 싶던 차에 광교호수공원 산책길에 귀여운 담쟁이덩굴 잎과 열매를 만나게 되어 아끼던 양피지 위에 그리기로 결정하였다.
넓은 잎을 떨구고 나면 밑에 숨어있던 열매의 구조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포도과의 식물답게 녹색이던 열매가 가을이 짙어지면서 보라색으로, 다시 검푸른 남색으로 뽀얗게 익어 간다.
양피지 크기에 맞게 구성을 정하고 스케치를 완성했다.
스케치를 펜 선으로 옮기다 보니 잎 크기에 비해 열매가 커진 것 같아서, 열매의 크기를 조금 축소해 수정하고 밑그림을 마무리했다.
양피지에 밑그림을 옮기고 나서 연필 가루를 조심스럽게 털어내고 밝은 색 물감으로 연필 선을 대체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려가며 채색을 진행했다.
양피지 특성상 연필 가루는 한 번 번지고 나면 지우거나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연필의 흔적을 가능한 한 퍼티지우개로 제거해 가며 채색을 진행하였다.
담쟁이덩굴의 열매는 뽀얀 분가루를 발라놓은 듯해서 열매의 밝은 표면을 충분히 남겨가며 색을 올려야 한다.
검푸른 열매를 하나씩 그려나가다 보니 포도알이 생각나, 다음 작품은 알이 더 많이 달린 포도를 계획해 보고 싶어졌다. 빼곡한 포도알을 그릴 생각만 해도 벌써 즐거워진다.
멀리멀리 날아가는 마음을 붙잡아 일단 담쟁이덩굴 열매에 집중해 본다.
열매를 연결하는 가지들의 모양과 방향, 떨어진 자리까지 모두 중요하다. 겹쳐져 보이지 않는 부분도 열매까지의 연결이 자연스러운지, 스케치 단계에서 놓친 부분은 없는지, 채색 단계에서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한다.
열매를 대충 마무리하고 잎 채색 시작. 잎맥의 모양을 그려 가며 색을 부드럽게 올려주었다.
양피지의 특성상 밑색은 물기가 있어도 좋지만, 위에 덧칠하는 색은 마른 붓질로 조심스럽게 올려야 한다.
담쟁이덩굴의 물든 잎은 복합적인 색을 띠고 있어 부분 부분 다른 밑색을 사용하고 잎의 광택을 자연스럽게 남겨가며 색을 더해 채색하였다.
다양한 잎 색과 가늘게 뻗어나가는 잎맥에 집중하는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다.
어둡게 변색된 부분들의 디테일도 추가해 한층 더 사실적으로 잎을 표현했다.
우측의 잎은 또 다른 색감으로 완전히 다른 밑색으로 채색을 진행하였다.
담쟁이덩굴은 열매를 넓은 잎 밑에 숨기고 있어 잎을 떨구기 전에는 매달린 열매를 알아채기 쉽지 않다. 예쁜 가을 잎에 눈길을 주다 보면 열매를 제대로 보기 어렵고, 열매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은 이미 잎을 모두 떨구고 난 후인 경우가 많다.
요즘같이 날씨가 한순간에 변해버리는 계절에는 특히 하루가 짧게 잎들이 색을 잃어가고, 예쁜 단풍의 시기는 너무 짧게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온 삶도 어느 한순간 빼놓을 수 없이 빼곡한 사건과 감정들로 가득한데 정작 내 기억은 단편적이고 뿌옇기만 해서, 그다지 치열하지도 않았던 나의 삶이 뿌옇게 뭉뚱그려져 단순화되어버리는 느낌이다. 그런 다음 순서는 날카롭지도 예리하지도 못한 나의 삶이 후회스러워지는 지경에 이르는데, 누군가 이런 나를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면 왠지 부끄럽고 슬퍼질 것만 같다.
내가 식물 그림을 그리며 사실적이지만 못나지 않게, 그들만의 매력 있는 모습을 예쁘게 그려주고 싶어 하는 이유도 아마 내 삶의 모습도 그리 그려졌으면 하는 속마음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남은 잎새에 자신의 삶의 희망을 걸었던 존시처럼, 나도 내가 그리는 열매 하나 잎 하나에 희망을 거는 내 속마음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면 존시는 우연에 기대는 수동형 존재이고, 존시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명작을 남기는 화가 베어만이 능동형 존재인 셈인데, 나는 아무래도 베어만이 되지는 못할 듯하다.)
다만, 어디에서라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니까, 한계가 있고 부족하더라도 나는 내가 그리는 그림을 내 마음대로 좋아하련다.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작품을 그릴 수 있겠지 기대하며…
최지연 作
담쟁이덩굴 Boston ivy
Parthenocissus tricuspidata (Siebold & Zucc.) Planch.
수채화 Watercolor on vellum
250×300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