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박덩굴 Oriental bittersweet

by 그린 꽃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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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덩굴을 처음 만난 것은 죽은 벚나무 줄기에 기대어 덩굴진 가지에 매달린 노란 열매였다.

이건 뭐지? 샛노란 껍질 속에 빨갛고 탱글탱글한 열매가 강렬한 대비로 눈길을 끈다.

모야모 앱을 통해 문의해 본 결과 노박덩굴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 작품에 담아볼 요량으로 위치를 기억해 두고 다음 해부터 관찰을 시작하였다.

SE-fcc3f920-76c2-4d48-a55a-7cd4922c1c9f.jpg?type=w1 <2021. 10. 31. 노박덩굴 열매. 과천 양재천>

국가표준식물목록(http://www.nature.go.kr/)에 검색해 보니 노박덩굴을 포함하여 총 4종류가 자생식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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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발견한 식물의 정확한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도감정보를 검색해 보고 모든 정보를 취합해 본다.


개노박덩굴은 열매껍질이 노란색이 아니라 녹색이고 잎 뒷면의 중심 맥에 기둥모양의 돌기가 있다 하여, 일단 제외.


털노박덩굴은 열매가 둥글지 않고 길쭉한 모양이고, 잎자루의 턱잎이 가시로 변형되어 있다 하여, 제외.


해변노박덩굴은 크기가 작고 앙증맞은 잎이 다른 노박덩굴들 잎 모양과 확연히 달라 제외.


결국 내가 발견한 나무는 노박덩굴로 판단하게 되었다.


열심히 검색을 하다 보니 노박덩굴과 유사한 푼지나무도 알게 되고, 덤불노박덩굴(얇은잎노박덩굴) 등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 발견했던 노박덩굴은 일반적으로 길쭉한 타원형에 끝이 뾰족하게 빠지는 잎 모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둥글넓적하고 끝이 뾰족하지 않은 잎을 가져 덤불노박덩굴이 아닌가 추정되었다. 하지만, 표준식물목록에 별도의 식물로 구분되어 있지 않아 별도의 종으로 명명되지 않았거나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름으로 판단하였다. 나중에 혹 다른 이름으로 구분될 수도 있겠지만…


노박덩굴 관찰을 시작하게 되면서 처음 발견한 위치 이외에도 산책길 여러 곳에서 노박덩굴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알고 나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자꾸 발견하게 되는 신기한 마법!) 역시 햇볕도 잘 받고 환경이 좋은 곳에서 자라는 덩굴이 꽃도 많이 피고 열매도 크고 실하게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봄이 되니 새싹도 나오고 꽃도 피어났다. 길가에 덤불 지어 자라나는 노박덩굴은 때때로 도로 쪽으로 새로 뻗은 가지들이 가지치기당해서 무참하게 잘려나가기도 했지만 왕성한 생명력으로 다시 무성하게 잘 자라주었다.

SE-63997cf5-132a-4014-b9a8-154b047b156c.jpg?type=w1 <2022. 4. 17. 새로 돋아난 잎. 과천 양재천>

이른 봄 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잎이 너무나 귀엽다.

SE-5ba207d1-ed86-47a9-b414-0c4d40e68b90.jpg?type=w1 < 2022. 5. 9. 암꽃. 과천 양재천>

노박덩굴은 암수딴그루 또는 잡성주라고 하는데, 역시 열매가 달려있던 나무에서는 암꽃만 피어났다.

세 갈래로 갈라진 암술머리와 길쭉한 암술대를 가진 암꽃은 다섯 개의 꽃잎과 안쪽에 퇴화된 수술 다섯 개를 가지고 있다.

분명 작년에 열매를 맺었으니, 수꽃도 어디엔가 있겠지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결국 근처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SE-035a6a56-b5c2-4645-a77a-abeeb368cfef.jpg?type=w1 <2022. 5. 19. 수꽃. 청풍호반 비봉산>

수꽃을 발견하지 못해 아쉬워하던 중 이게 웬일, 청풍호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비봉산에서 노박덩굴의 수꽃을 만나니 이것은 운명인가? 관찰하기도 쉽게 계단의 난간을 따라 자라나고 있어 너무나 반가웠다.


길게 발달한 수술대와 통통한 꽃밥을 가진 다섯 개의 수술과 안쪽에 퇴화한 암술을 가진 수꽃을 만나게 된 것은 행운 가득한 우연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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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가지도 작품에 추가해서 넣을 계획으로, 미리 스케치도 해 두고 구조와 크기도 파악해 두었다.


연녹색의 자그마한 잎도 귀여운데, 취산꽃차례로 조롱조롱 달린 꽃은 더 귀엽네? 너무 작아 그리기 어렵겠다 생각했지만 일단 크기를 기록해 가며 스케치해 두었다.

SE-67eab76e-65d9-49a4-a745-c296a39f731e.jpg?type=w1 <2023. 7. 16. 과천 양재천>

여름이 되니 다닥다닥 조그맣게 달려있던 초록 열매들이 동그랗고 통통하게 자라나 싱그럽다.

SE-c034a5d1-93ba-40d0-bcb1-026714fd2bdc.jpg?type=w1 < 2023. 7. 19. 과천 관문체육공원 >

이곳은 노박덩굴이 커다란 주목나무를 타고 오르며 자라나 나무를 온통 뒤덮어 버렸다.


나는 노박덩굴이 관심사이니 부디 잘려나가지 않고 파란 열매가 예쁘게 익을 때까지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주목나무가 좀 괴롭기는 할 것 같다. (공원에서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었는지, 2024년 늦여름, 노박덩굴은 모두 잘려 나가고 지금은 안쓰럽게 휑한 가지의 주목나무만 덜렁 남아있다.)

SE-b0a4e986-b75b-4731-aff2-eaee46314ab4.jpg?type=w1 <2023. 10. 17. 과천 양재천>
SE-d11f3546-fb18-4f35-b9ab-08831c6cbdc0.jpg?type=w1 < 2023. 10. 18. 과천 관문체육공원 >

가을이 되니 잎도 물들어 가고, 노랗게 익은 열매껍질이 하나씩 터지며 새빨간 과육을 드러낸다.

도드라진 붉은 열매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노박덩굴의 영명이 Oriental bittersweet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열매가 달콤 쌉싸름한 맛일까 아니면 인생을 빗댄 어떤 은유일까 생각했었는데, bittersweet가 붉은기가 감도는 오렌지색이라는 영어사전의 해석을 보고 나니 의문이 해소되어 버렸다.


가끔은 직접적인 묘사와 설명보다는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이미지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 bittersweet는 어쩐지 달콤 쌉싸름한 삶을 노박덩굴 열매에 비유하는 편이 더 근사했다고 혼자 생각했다.


이름이야 어찌 되었건, 드디어 내가 그리고 싶던 열매의 시기가 돌아왔으니, 손도 마음도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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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를 자세히 관찰하며 잎과 열매가 달리는 형태와 모양을 스케치해 보고 색도 테스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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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만 기록하고 이해하는 것보다 손으로 한번 그려 보고 구조를 익혀두면 나만의 기록이 되고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노박덩굴 열매는 노란색의 열매껍질이 세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빨간색의 헛종자껍질이 드러나는데 그 안에 밝은 갈색의 종자가 들어있다.


노란색의 열매껍질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떨어져 나가는 편이고, 새들이 이 붉은 열매를 매우 좋아하는 듯, 덩굴줄기에 매달려 열매를 열심히 쪼아대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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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덩굴을 시기별로 내내 관찰하면서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렸던 구도가 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으로 그려낼지 본격적으로 고민하며 밑그림을 스케치했다.


이리저리 열매와 잎 구성을 넣어보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밑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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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부 우측은 암꽃과 수꽃을 넣어주려고 공간을 비워두었는데, 남은 공간에 적합하게 배치하느라 위쪽의 가지 방향도 바꾸고 전체적으로 여백과 균형을 맞춰가며 밑그림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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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부터 채색에 들어갔다. 작은 꽃이 귀엽지만 세필로 그리기에도 너무 작아 쉽지 않다.


채색을 하다 보니 수꽃과 암꽃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려면 확대된 일부를 보여주어야 하나 고민스럽기도 했는데, 자연스러운 현재의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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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녹색의 잎몸과 잎맥, 완만한 거치들을 세밀하게 표현해 가며 하나하나 채색해 나갔다.


암꽃은 도드라진 암술머리의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수꽃은 다섯 개의 수술과 통통한 꽃밥이 잘 표현되도록 주의하며 그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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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덩굴의 매력 포인트는 역시 열매. 수줍게 작고 여린 꽃에 비해 열매는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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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거리는 덩굴줄기 뒤로 배경이 되는 가을잎의 색을 조심스럽게 잡아본다.


노박덩굴의 가을잎은 잎맥 주변의 녹색기운을 잃지 않고 밝은 노란색으로 변해 간다. 너무 가볍지 않고도 물결치듯 구불거리는 잎의 느낌을 살려가며 채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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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은 하나하나 조금씩 다른 색감과 톤으로 채색하고, 뒷면의 색감과 돌출된 잎맥도 음영을 만들어가며 채색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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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히 열매와 잎을 하나씩 채색하다 보니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어 간다.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노박덩굴의 모습은 노랗게 변해가는 잎이 떨어지기 전, 그리고 노란 열매껍질이 막 벌어져가는 단계의 모습이었다.


이보다 시기가 앞서면 잎 색이 아직 너무 파랗고 열매는 채 벌어지지 않아 노랗기만 하고, 또 조금만 늦어지면 열매는 모두 벌어져 빨간 속살을 드러내겠지만 잎은 모두 떨어져 버려서 갈색의 덩굴줄기에 열매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 시기는 매우 짧다.


보타니컬아트의 매력 중 하나가 이런 순간의 아름다움을 그림에 마음껏 담아낼 수 있다는 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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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잎은 각 잎의 색 변화가 다채롭고 색도 재미있어 채색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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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버린 노박덩굴을 옆에 두고 참조해 가며 덩굴줄기의 모양과 질감을 표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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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벌레 먹고 구멍 난 디테일과 갈색으로 마른 부분도 잎에 자연스럽게 넣어 그려 주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채색은 멈출 수 없지. 마음이 즐거우니 속도도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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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덩굴 작품을 실제로 완성한 것은 녹음이 짙어진 6월 초였는데, 따뜻하고 푸르른 바깥세상에도 한창 가을잎과 열매를 그려내느라 집중하며 봄을 건너왔다.


사진갤러리를 돌이켜보니 당시 캐모마일 작품을 위한 스케치와 메꽃 그림을 위한 색차트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고, 짧았지만 천문대 별 보기 여행과 즐거운 추억이 가득한 때였다.


작품이 끝나도 아쉬움은 늘 남지만, 작품을 하면서 남은 기억과 추억에 얽힌 모든 감정들은 마음 한구석에 고스란히 남게 되는 것 같다.


동네 어귀에서 노박덩굴을 발견했다며 나보다 더 반색하여 기뻐하던 은정작가님의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나를 응원하고 소소한 기쁨을 나누는 소중한 동료가 옆에 있음에 감사하다.


몰랐던 곳에서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모든 노박덩굴들을 반가움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내 모습을 상상하며,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입가에도 즐거운 미소가 떠오르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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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연 作

노박덩굴 Oriental bittersweet

Celastrus orbiculatus Thunb.

수채화 Watercolor on paper

364×51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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