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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린 Sep 07. 2023

대학만 가면 끝이라면서요

‘해방이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학교만 가면 고생 끝이야”라고 어른들은 말하곤 했다. 그 자유의 순간을 위해 나는 모든 고통을 억누르고 책상 위로 고개를 떨궜었다. 이제 성공적으로 입시를 마쳤으니, 나는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딸이 E대학교 국제학부 다닌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는 당장의 해방에 들떠 있었다. 머리도 염색하고, 귀에 피어싱도 했다. 대학교에는 재수강이라는 좋은 제도도 있었다. ‘성적이 망하면 다음에 들으면 되겠지’하며 수업을 빠지고 친구들이랑 놀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자유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앞으로 뭘 할 거냐고 물어봤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로스쿨을 갈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모님 뿐만 아니라 온 친척들의 기대를 업고 E대학에 입학하며, 나에겐 다시 법조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가해졌다. 하지만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막상 글쓰기에만 집중하자니 뚜렷한 성취가 없을 것 같아 도전하지 못했다. 나는 나의 꿈과 남의 꿈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대학교 생활도 행복하기만 하지 않았다. 나는 국제학부의 열등생이었다. 동기들은 대부분 해외 고등학교 혹은 외국어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교과 과정 중 하나가 영어였던 나와는 다르게, 교육과정 내내 영어를 사용해 온 아이들이었다. 전공 수업에서 학생들은 발표를 적극적으로 해야 했고, 영어로 말해야 했다. 과제나 시험도 영어 에세이를 써야 하는 게 기본이었다. 모두 내게 낯선 일이었다. 다른 학과 수업이나 교양 과목에서는 잘한다고 인정받는 내가, 전공 수업에서만 열등생인 게 싫었다. 학과에 정을 붙일 수 없었다.


나는 반수 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국어국문학과를 가겠다고 말이다. A대학교 국제학부를 아예 놓아버리고 재수하기엔 무서우니 반수. 그 당시에는 만약 반수를 한다면 SKY 대학교에 가야 인정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E대학교 국제학부가 내게 과분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학년만 올라갔다.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방향성을 잃었다. 졸업은 점점 늦어졌다. 그 사이 동년배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입시 성공의 유효기간은 다한 지 오래였다. 나는 다시 뒤처지고 있었다. 그걸 만회할 만큼의 큰 성취가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수많은 가능성을 찾아다녔다. 언론고시, CPA, 행정고시… 그런데 어느 선택지도 전념해서 도전하지 못했다. 실패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이 로스쿨 입시였다. 하지만 나는 법학적성시험 체질이 아니었다. ‘리트신수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도는 그 시험은 아이큐 테스트와 비슷했다. 공부를 해도 오르지 않는 점수를 보며 나의 지능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런 성취도 없이 2018년 여름에 졸업했다. 1년 전업으로 로스쿨 입시에 도전했다. 운 좋게 한 지방 로스쿨 1차 면접에 합격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화를 냈다. 엄마는 전화 너머로 나에게 “내가 어디 창피해서 말도 못 했어!”라고 소리쳤다. 그 로스쿨이 상위권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펑펑 울었다. 면접은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최종 탈락했다. 남들보다 한참 늦어지고, 방향도 잡지 못한 26세. 로스쿨 입시에 다시 도전할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충분히 똑똑하지 못한 나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인생이 망한 것 같았다.


* 참고로 지금의 저는 모교에 대한 공격을 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정도로 모교를 사랑합니다. 이제 갓 대학교를 입학해서 뭘 모르던 그 당시 입장에 입각하여 서술한 내용임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리트신수설: “리트 점수는 공부해도 크게 오르지 않고 천부적 재능이 결정한다”는 뜻의 속어.


[표지 사진 출처] UnsplashNathan Dumlao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ewGMqs2tm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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