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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허물인생 26화

허물인생(26)

함량미달

by 강도르


모태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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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막을 내려가고 있는 대학 생활 내도록 나에게는 꼭 따라다니는 말이 있었다.

동아리 사람들에게는 회장님, 학군단 사람들에게는 정작이라며 불렸지만, 친구들에게는 모태솔로라며 조롱을 당하곤 했다.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여자들이 내게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내가 관심이 있는 여자가 나에게 관심이 없었을 뿐인 불행이 인생 내도록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눈이 높아서 그렇다며, 누군가는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그거야 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였을 뿐이다.


보통은 대부분이 이성에게 호감이 생기려면 외모적인 취향이 맞으면 곧바로 그 호감에 즉각적인 반응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타인이 아니니 어찌 함부로 얘기할 것도 아니지만 어쨌건 나는 이 본능적인 행동을 상당히 거부를 많이 했다 굉장히 의식적으로.

조금 쉽게 이야기하면 이성이 좋아지려면 이유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외모 외적으로 무언가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고 생각을 했고 그것이 가치관처럼 굳어져 버렸다.

사실 외모가 이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면 이 사람이 싫어지는 이유가 뻔하기 때문에 굉장히 경계해야 할 행동이라 생각했던 것도 한몫했다.

그래서인지 본능적으로 외모가 끌리는 사람은 살아오면서 많았겠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게 사람을 좋아할 이유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을 열어야 할 이유가 없었고, 그 이유가 없으니 그런 본능적인 끌림은 오래가지도 않고 사그라들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이성 교제를 해본 적이 없었고, 여성에 대한 호기심과 경계심이 이상하게 우상화가 되어 약간의 실망할 이유가 생겨도 마음이 식어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이거야 물론 내 자기 합리화식 변명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내 가치관은 존중받을 필요도 없었고, 여성들이 이런 내 가치관에 관심을 가질 만큼 나에게 큰 매력은 없었다는 내게만 불편한 진실이 결국 나를 모태솔로로 만들었다.



그건 니생각이고

지금도 종종 생각하곤 한다.

한창 젊은 나이에 이성 문제로 큰 굴곡이 없었던 것에 대해 나는 운이 많이 좋았다고 생각을 한다.

감정의 파도를 감내할 자신이 없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기대었다가 부서지는 순간 일어서지 못할 거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젊을 때 여자를 많이 만나봐야지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아직도 공감은 못하겠다.

사람의 만남은 언제나 상처를 동반한다.

그리고 만남의 끝이 좋지 않을수록 자존감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타고나게 멋진 외모를 가지지 않은 남성이었기에 이성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만큼 노력을 해야 했지만 그걸 불특정 다수의 여성에게 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선 꼴불견이었다.

내 삶의 무게를 채우는 일이 중요했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마음에 들고자 나를 가꾸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말투를 바꿔라
옷을 이쁘게 입어라
머리는 단정하게



수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이건 뭐 지금 생각해 보니, 여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었네, 결국 편향적인 사고와 안일한 마음이 가져온 대참사가 아니었나 싶네



Accidentally in Love


그런 모태솔로의 결정체인 나에게 관심이 가는 여자가 생겼을 때는 어땠을까?


그 사건이 있었던 것도 2011년이었다.


그 여자아이는 같은 동아리 여자 후배였다.


인상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새하얀 피부에 귀여운 얼굴에 무척 인사성이 바른 사람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2010년이었다.


종종 동아리를 오가며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학군단 생활로 동아리 활동에 소홀했던 터라 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교를 오가며 만날 때는 반드시 인사를 했으며 인사성이 밝아서 기억에 남는 여자아이였다.


친하게 지내게 된 계기는 동아리 회장이 되었을 때였다.


겨울이라 그런지 하얀 얼굴이 빨개져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옷차림이 수수해서 볼 때마다 부담이 없었고,

부끄러움이 많은 탓이었는지 인사말의 끝은 또렷하지 않고 항상 끝이 흐려지는 식이었다.


동아리 집부로 활동을 같이 하게 되면서 말을 주고받는 일이 많아졌던 것도 있지만 말이 없는 수줍은 성격치고는 행동력이 있었던 것 같다.


딱히 관심은 없었던 것 같은데 밝은 인사성 때문에 꼭 한 번씩은 눈길이 더 갔었고, 앞머리를 덮고 있었던 탓이었나 묘하게 눈빛이 초롱초롱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눈길이 한 번씩 더 가던 것이 어느새인가 학교를 다닐 때면 그 아이와 만나지 않을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고 같이 다니는 친구들은 뭘 그리 눈동자를 굴려대냐고 벌써부터 학군단 후배들 잡아 족칠 생각이냐며 나무라곤 했다.


개강을 하고 나서 새로운 일들이 많았던 탓이었는지 마음속에 충만감이 생겨났고 괜히 봄기운에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집으로 가면 그때 당시로 치면 오늘날의 인스타그램 같은 네이트 온이라는 메신저에 로그인을 하곤 그 아이가 접속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딱히 접속했다고 무언 갈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곧잘 접속해 있던 것을 보게 되었고 멍하니 화면을 보면서 노래를 듣고 있다 보니 갑작스럽게 그 아이로부터 쪽지가 하나 도착했었다.


오빠 안녕하세요?

순간 튀어나온 쪽지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친구 놈들의 술 마시러 가자는 시답잖은 쪽지와는 다르게 간단하고도 간결한 쪽지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딱히 뭔가 이야기할 거리는 없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던 것 같다.


주고받는 내용도 워낙에 시시콜콜한 내용들이었지만 귀신에 홀린 듯이 쪽지를 주고받곤 했다.


이상하게 먼저 연락을 하거나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가끔씩 자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아이와 대화하는 게 기다려지기도 하고 더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 마음도 드는 게


아... 이거 나 얘한테 관심 있는 건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이 의식이 되자 사람이 바보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때의 내 모습에서 뭘 보았을지 모르겠지만


준비되지 않은 모태솔로에게 남성으로서의 매력은 없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자신감 반, 체념 반이었던가 그런 느낌으로 연애를 상상하곤 했던 것 같다.


나의 감정 변화는 쉽게 밖으로 새어나갔고,

친구들은 이런 변화를 쉽게 잡아내었다.


가벼운 술자리에서 친구 아무개가 꺼낸 말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지만 이상하게 숨겨지지가 않았다.

같은 동아리에 집부활동 그리고 학군단 생활, 결정적으로 다음 해에는 군대를 가야 하니까 나는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그건 내 이성의 생각이었을 뿐이고 내 감정은 이미 그 여자아이와 결혼식까지 올리기 직전이었던 모양이다.


친구들의 지나친 추궁 덕분에 나는 내가 그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자각해 버렸다.

그 뒤로부터였을까 머릿속이 온통 꽃밭인 데다가 그 여자아이와 어떻게든 좋은 사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의 이런 변화는 편향적 사고를 가속시켰다.

그 아이가 나를 살갑게 대하는 것과,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는 것을 나에 대한 호감이라고 착각을 하였다.

별것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꼈다.

마음이 커질 만큼 커져버린 나는 그해 3월 14일 사탕을 쫄랭쫄랭 사 들고 가서 결국에는 이 마음의 폭주의 결과물을 마주하고 한밤중에 허탈한 마음으로 학교 한가운데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이야기야 흔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이야기가 되고 나니 이처럼 비극일 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함량 미달 모태솔로의 비참한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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