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3부. 순도 100%의 사랑
지금도 모바일 게임을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쿠키런킹덤이라는 게임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접속한 지 2년은 된 것 같다. 나름의 사연은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게임을 내 휴대폰에 설치했다는 데 있다. 맞다. 나는 아이가 게임을 재미있고 효율적으로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접속해서 아이템을 받아주고 기본 미션들을 수행해 준다.
누가 나에게 평소 게임을 즐기냐 묻는다면 대답은 No다. 나는 게임에서 즐거움을 찾기 힘든 부류의 사람이고 지금까지 며칠이상 해본 게임은 애니팡 류의 게임뿐이었다.
아이 때문에 시작된 게임 인생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은 포켓몬GO였고 단순히 아이와 산책을 많이 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포켓몬GO 덕분에 산책은 정말 많이 했고 아이의 걷기 능력은 확실히 향상되었다. 같이 레이드배틀을 하러 나가고, 비어있는 체육관에 포켓몬을 넣으러 동네를 돌아다녔다. 관악산 꼭대기에서도 경북 영주의 선비마을에서도 일본 유후인에서도 포켓몬들과 함께였다. 때로는 아이의 친구들을 모아 같이 레이드배틀을 하러 가기도 했다. (함께 힘을 합치면 배틀을 더 잘할 수 있다.) 아이의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나의 레벨과 포켓몬 보유상황을 확인하게 되었고, 각자의 부모님에게 소문을 내는 바람에 ‘게임 잘하는 엄마’, ‘게임 같이 하는 엄마’로 포지셔닝되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나는 박서련 작가의 책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을 막 읽은 후였는데, 게임을 못한다는 이유로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는 아이를 위해 엄마가 아이 대신 게임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추천 도서이니, 결말은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아이를 대신해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아이보다 레벨이 높고 더 좋은 포켓몬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묘하게 즐겁지만은 않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냥 즐겁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건 아이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렇다고 엄마가 게임을 같이 하는 게 싫은 것은 아니었으니 대놓고 샘을 내기도 애매했다. 돌이켜보면 둘 다 진지했던 것 같다.
포켓몬GO 이후 남편은 아이와 게임을 같이 하고 싶다는 본인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닌텐도를 마련했고 우리 가정의 본격적인 게임 역사가 시작되었다. 마인크래프트에서 같이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었고, 어떤 날은 아이가 시키는 대로 내내 나무만 베기도 했다. 마리오 시리즈와 별의 커비를 지나 닌텐도로 춤도 추고 운동도 한 다음, 모바일게임인 쿠키런킹덤까지 왔다.
막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게임’ 얘기를 가장 많이 한다고 했다. 코로나19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책상에는 투명 아크릴판이 설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보니, 내가 기대한 친구들과 땀을 흘리며 뛰어노는 일상은 없었다. 너는 휴대폰이 있냐, 집에 게임기가 있냐, 이 게임해봤냐 같은 이야기를 주로 나누면서 아이는 새로운 게임에 대한 정보를 계속 물어왔다.
모바일게임을 저학년 어린이 휴대폰에 설치해 주는 것은 애초에 고민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기에, 특정 게임이 너무 궁금하다고 하면 내 휴대폰에 우선 설치해서 플레이해 보고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퀄리티가 떨어지거나 아이에게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게임은 삭제하고, 괜찮다 싶은 게임은 내 휴대폰에 남았다. 번거롭고 귀찮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게임이 내 휴대폰에 설치되어 있는 장단점은 분명히 있다.
장점 1. 습관적 휴대폰 사용 방지 및 자연스러운 게임시간 조절
휴대폰을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 지구인의 문제일 텐데, 적어도 게임이 내 휴대폰에 있으니 아이는 하교 후에 학교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게임을 하거나 학원 계단에 앉아 게임을 하는 일은 없다. 집에 돌아온 후 할 일을 마친 다음에 나에게 휴대폰을 요구한다. 게임을 하기 위해 그날의 공부와 숙제를 하는 집중력과 속도가 빨라졌다.
장점 2. 게임 수다로 꽃 피우기가 가능하다
초등학생에게 게임이란, 그저 취미생활 수준이 아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학교-학원-집을 반복하는 아이들에게는 친구들과 소통할만한 이야깃거리가 부족하다. 게임, 유튜브, 넷플릭스를 제외하면 화제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래서 굳이 아이에게서 게임을 빼앗고 싶지 않은 것이고, 좋아하는 것을 더 폭넓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이와 매일 게임 이야기를 하고, 어떤 날은 하나의 주제로 두 시간 넘게 쉬지 않고 수다를 떨기도 하는데 보통 이런 내용들이다. 캐릭터(누가 강한지, 어떤 캐릭터가 추가되면 좋을지), 게임 내 세계관(이번 시즌은 나태와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는 둥), 게임 회사에 취직하는 방법(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해야 하는지와 인터뷰 방법 등), 공략법과 레벨업(게임은 일단 잘하는 게 중요하니까), 아이템과 뽑기 확률(0.003% 확률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숫자인가), 현질의 가치(1만 원에 저 아이템을 얻는 것은 가치가 있는가), 오프라인 이벤트(팝업의 콘셉트와 굿즈의 종류), 게임 IP(쿠키런도 나중에 영화가 될 수 있을까) 등등
게임은 계속 업데이트를 하고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기 때문에 이야깃거리는 끝이 없다. 물론 아이의 지적 수준도 계속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점점 고차원적인 질문과 대화가 생성된다. 주제만 게임이지 거의 경제와 사회 전반을 훑는 것 같다. 최근에는 ‘게임 산업에서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어린이가 게임을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내용을 나에게 가져와서 의견을 개진한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장점 3. 내가 휴대폰을 놓는 시간이 생긴다
아이에게 휴대폰을 넘기는 순간, 일단 나 스스로 답답해지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책이나 노트를 펼치게 된다. 아이가 휴대폰을 하는 동안 내가 책 읽는 것을 보여주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게임 종료 후 책을 펼치기를 유도할 수도 있다. 카페 데이트하기에도 딱 좋다.
여행은 휴식이고, 여행에서 카페는 빼놓을 수 없으니 나에게 책이 꼭 필요하 듯 아이에게는 게임이 필수다. 아이도 자기가 원하는 방식의 휴식을 취하고 싶은 건 당연하기에 게임을 말리지 않는다. 아이는 평소 내가 그러하듯 분위기와 맛을 고려해 취향에 맞는 카페를 찾았다. 리뷰도 보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면서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카페를 추천한다. 쾌적한 카페에 앉아서 중간중간 차가운 음료를 쪽쪽 빨며 게임을 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아, 이게 너의 힐링이구나 싶다.
“아들, 우리 오늘은 가볍게 나가서 오전에 사원 둘러보고 점심 먹고 잠깐 들어오자.”
“응. 그러면 들어와서 게임기랑 책이랑 챙겨서 카페 가자. 엄마, 게임 같이 할까?”
“같이 게임하고 같이 책 읽을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