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뚜벅이 여행

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by 초록테이블

3부. 순도 100%의 사랑



이미 십 년 동안 걷는 것에 단련이 된 아이는 나의 최고 산책 파트너이다. 치앙마이에서도 님만해민에서 올드타운까지, 올드타운 끝에서 끝까지 당연하게 걸어 다녔다. 습관이란 건 무섭다.

여행지에서 굳이 걷는 이유는 주요 스팟을 찍어서 가는 것보다 별것 없어 보이는 길 위에서 예기치 못한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찾을 수 있는 것은 ‘이야깃거리’이다.


주말이면 예외 없이 집 밖을 나선다. 한강으로, 공원으로, 쇼핑몰로, 박물관과 도서관으로 그리고 동해 바다와 캠핑장으로 많이도 다녔다. 하지만 차는 없다. 필요할 때만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결혼 후 십여 년 동안 차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경제적으로 불필요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이와 더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데, 아이가 남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일이 있었다. 남편은 운전을 하고 있으니 이따가 말하라고 대답을 했고, 나는 그걸 보면서 아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것이다. 운전을 하니 남편은 더 피곤하고 신경이 곤두서있어 아이와 대화도 어려웠다. 그래서 가능하면 기차나 고속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서울에서는 당연히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여행하는 내내 편하게 대화를 나누게 되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게임을 하거나 낮잠을 잘 수도 있다. 덕분에 출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여행을 꽉꽉 채워 즐기게 되었고, 우리 가족은 프로 뚜벅이가 된 것이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은 걷기 좋은 곳이다. 발이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사원이 있고 먹거리와 음료가 있으며, 이름 모를 이국의 꽃들과 나무, 고양이들을 만나게 된다. 식당에서 잠시 엉덩이를 뗀 사이 고양이가 내 자리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앉아있다. 나도 지기 싫다는 자세로 엉덩이를 살살 들이민다. “엄마, 고양이 깔리는 거 아냐?” 아이는 긴장하며 물어보지만, 결국 나의 의지가 이겼다. 나의 엉덩이가 고양이의 몸에 닿기 전에 고양이가 자리를 옮겼다.


뚜벅이 여행을 한 덕분에 점찍어두었던 인기 있다는 식당과 유명한 카페에는 거의 가지 못했다. 길에서 매력적인 장소를 계속 만났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완전 태국이라며 들어간 식당 Larb Khom Lom Choy Restaurant에는 외국인이 우리밖에 없었고, 뭔지도 모르는 음식들을 도전적으로 시켰다. 디저트라고 주문한 음식이 뜨끈하게 나왔을 때, 더운 날씨에 뜨끈한 디저트를 먹으며 많이 웃었다. 한 숟갈 더 먹으라고 서로의 입에 넣어주었다.

우연히 문구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에어컨도 쐴 겸 쭈그려 앉아 한참을 둘러보다가 아이는 생일 풍선을 사서 나왔다. 그 생일 풍선은 한국에서 3개월 동안 마치 매일이 생일인양 걸려있었다. 이벤트 아이템들은 이상하게 볼 때마다 설렌다.

그리고 지도를 보지 않고 낯선 길에서 숙소를 찾는 놀이를 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음식을 먼저 먹어보기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했다. 택시를 타면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아이와 난 발바닥이 쑤시고 저릴 때까지 걸으며, 때로는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걷고 이야기하고 또 걸었다.

덕분에 많은 이야깃거리가 남았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꺼내면 바로 이야기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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