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보채기

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by 초록테이블

3부. 순도 100%의 사랑



보통 잠들기 전 보채는 건 아이가 아니라 내 쪽이다.

“아들~ 잘 거야? 졸려?”

“엄마, 이제 좀 자자. 먼저 잘게.”


시작은 아이를 잘 재우기 위한 나의 ‘육아 전략’이었다. 아이에게 자라고 자라고 한다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니고, 잔소리하면 서로 기분도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아주 어릴 적부터 침대에 누워 한 사람이 잠들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어떨 때는 내가 말을 하던 중에 그대로 곯아떨어졌고 그러면 아이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은 내가 온갖 화제를 끄집어내고 말로 하는 놀이를 만들어 내는데, 아이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누워서 할 수 있는 놀이는 너무 많다. 단, 눈을 감고 손을 잡고 입만 열어야 한다. 손을 잡는 이유는 꼼지락 거릴 때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첫째, 내가 하고 싶은 말 하기

아이에게 오늘 어린이집에서 어땠냐, 학교에서 친구랑 잘 놀았냐 같은 질문을 많이 하면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 것 같아서 아이가 나중에는 대충 대답한다. 그럴 때 나는 그냥 내 얘기를 한다. ‘회사에서 자기가 하기 싫다고 다른 팀에 일을 막 넘기는 사람이 있는 거야. 어떻게 생각해?’ 이런 질문을 하면 아이는 나름 판사 같은 마음으로 신중하게 대답해 준다.


둘째, 문장 연결해서 이야기 만들기

아이가 호기심을 가질만한 문장을 하나 만든다. ‘옛날에 아기돼지 삼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너무 나빠서 삼 형제는 고민에 빠졌어요.’ 각자 돌아가며 한 문장씩 만드는데, 이야기가 점점 이상하게 진행되는 것이 이 놀이의 묘미이다. 어릴 때는 계속 똥이나 방귀 같은 것들로 이야기가 확장되었는데, 초등학생이 된 후에는 최선을 다해 괴상한 이야기를 만들거나 갑자기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 세계로 주인공들을 보내버리기도 한다. 나중에는 한 문장이 너무 짧다고 자기가 계속 이야기를 만드는 지경에 이르는데, 그렇다고 나도 무조건 양보하지는 않는다. 혼자만 말하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 힘들다. 같이 해야 재밌다.


셋째, 밸런스 게임

처음에는 ‘강아지 vs 고양이’ 같은 것으로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조금 고민이 필요할 법한 질문을 한다. ‘똑똑한데 돈이 한 푼도 없는 나 vs 돈은 많은데 머리가 너무 나쁜 나’ 이런 질문은 아이의 가치관을 슬쩍 알아볼 수 있고, ‘‘매달 100만 원씩 4년간 받기 vs 내일 한 번에 2000만 원 받기’ 같은 질문은 아이의 경제관념에 대해 파악이 가능하다. 아이에게도 게임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줘보지만, 역시 더러운 것들 중에 선택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아들은 다 그런가요? 설마, 딸도 그런가요?


이것뿐만이겠는가. 손바닥에 글자를 쓰며 맞추기 놀이를 하기도 하고, ‘귤이 여섯 개 있는데 사과를 세 개 더 샀으면, 우리 세 명이 각각 몇 개씩 먹어야 할까’ 같은 암산을 하기도 한다. 절대 어렵게 내면 안된다. 자기 전에 굳이 공부시킬 것도 아니고, 기분 좋게 자려면 쉬워야 한다.

짜증이나 잔소리 없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드니 나는 아주 만족스러운데 남편이 보기에는 어이가 없나 보다. 잔소리는 남편으로부터 내가 듣는다.


“여보, 애 잠 좀 재워. 왜 계속 말을 걸어?”

“아냐, 아직 안 잔단 말이야.”

“엄마, 나 졸려. 이제 그만해.”


아이가 그만하라고 이제 좀 자자고 말을 하면 머쓱해지기도 하지만, 더 얘기하자고 붙잡고 보채면 아이는 은근한 우월감이 있는 목소리로 내일 다시 놀자고 한다. 마치 아이의 여동생이 된 기분이 든다.


아이와의 여행에서 만족스러웠던 것 중의 또 하나가 바로 아이를 재우지 않는다고 잔소리하는 남편도 없겠다, 더 편하게 아이와 늦은 밤 노닥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 등교를 하는 것도 아니고, 조식시간만 늦지 않으면 되니 나는 더 편안하게 아이에게 보챌 수 있었다.

오늘 먹은 음식은 맛있었는지, 내일은 뭘 먹을지, 어디에 가면 좋을지, 몸은 괜찮은지, 마사지를 받고 싶은지 같은 여행일정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리고 왜 마사지를 받을 때마다 푹 자고 마는지, 태국망고는 왜 이렇게 맛있는지, 무아이타이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둥 여러 에피소드들을 꺼내놓으면서 잠을 청했다. 이상하게 좋은 것만 떠오르고 좋은 것만 이야기하게 된다. 아이도 나도 좋은 것들로만 여행의 추억을 채우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는 거의 매일 밤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엄마, 우리 오늘 진짜 많이 걸었어. 피곤해. 나 먼저 잘게.”

그러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아이는 먼저 곯아떨어지고 나는 이런저런 소회들을 노트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늦은 밤 끄적거린 것들이 이 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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