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핑계고

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by 초록테이블

2부. 행복은 미루지 않기로 해



“나도 여기 처음 온 거야. 우리 둘 다 똑같아.”

여행지에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니 모든 상황이 마술처럼 바뀌었다. 엄마라고 뭐 대단히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니 상황들은 탁구공을 주고받듯 가벼워졌다. 둘이 보폭을 맞추며 함께 가는 여행이었다. 아무리 아이와 함께 하더라도, 사실 나도 즐거우려고 여행을 하는 것이다. 겨울방학에 아이가 해외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 여행을 온…… 이것은 일종의 핑계다.


아이가 어떻게 생각했으면 좋겠고,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대하게 된다. 그 행동들에는 늘 목적이 있다. 결국 내가 가장 바라는 건 아이가 충분히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솔직하고, 씩씩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먼저인가? 당연히 엄마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러니까 나부터 먼저 챙겨야 한다는 것이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오만가지 상황에 아이를 핑계로 대기 시작한 건 다 이런 이유다.


누구나 어른이라는 이유로 참고 배려하는 것에 점점 익숙해진다. 나도 마찬가지인데 이건 누가 꼭 시켜서는 아닌 것 같다. 마치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에 가까운데 그러다 보니 점점 내가 내 욕구를 무시하고 있었다. 지인 선물로는 몇 만 원짜리 핸드크림도 척척 사주면서, 내가 쓸 오천 원짜리 립밤은 진짜 필요한지 꼼꼼하게 따지고, 괜찮아 보이는 카페를 지나면서 마음이 움직여도 오늘은 그냥 오천 원 아끼자고 굳이 자신을 설득하곤 했다. 내 아이가 나처럼 굴었으면 좋겠나?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답은 분명 No다. 아이가 나 같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지금의 나를 조금 서글프게 했다. 그래서 아이를 핑계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 더 알아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끝내주게 맛있는 음식을 맞닥뜨리면 아이는 곧장 이렇게 말한다. “엄마, 이거 내가 전부 다 먹어도 될까?” 그러면 나의 대답은 “아니! 진짜 맛있으면 나도 한 입은 먹어야겠어.”다. 한 입 맛있게 먹은 다음에는 “진짜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걸 너랑 같이 먹을 수 있어서 진짜 좋다.”라고 보탠다. 나도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 좋다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고 꼭 보여주고 싶다. 엄마도 너랑 똑같다는 걸 잊지 않게 하고 싶다. 절대 그냥 양보란 없다.

아이와 있을 때의 나의 행동을 보면서 남편은 내가 아이처럼 군다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왜 아이에게 양보를 안 하는지 궁금해하고, 먹고 싶으면 하나 더 사 먹으면 될 것을 왜 한 입을 빼앗아먹냐는 거다. 그러면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답했다. “아이한테 생선 살 다 발라주고 여보가 머리만 먹으면, 나중에 우리 아빠는 생선 머리만 좋아한다고 생각할 거야. 나는 내가 살을 좋아한다는 걸 분명하게 알려주고 평생 생선 살 먹고살 거야.” 남편은 내 말이 와닿지 않는 게 분명하다. 남편은 여전히 아이에게 다 양보한다.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으니 그 이후는 본인 몫이다.


아이가 한 살 한 살 자랄 때마다 이상하게 아이에게서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아이가 일곱 살이면 마치 내가 일곱 살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내가 그 나이 때 아쉬웠던 것, 속상했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나의 아쉬움이 아이에게 묻어나지 않기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더불어 나도 일곱 살이 된 것처럼 거리낌 없이 즐겁고 싶은 마음도 함께 든다. 데칼코마니처럼,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날름날름 핥아먹으려고 하면 나도 꼭 같이 그렇게 먹어보고, 아이가 길에서 춤을 주면 나도 같이 추고, 웃기게 걷고 싶어 하면 나도 따라 그렇게 걷는다. 주변에 민폐 끼치는 것만 아니면 다 따라 한다. 아이가 되어버린 마음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더 즐겁고 더 서운하고 더 흥분되고 만다. 조금 거리낌 없어진 나를 보면서 어릴 적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때는 외로웠을지 몰라도 지금은 이렇게 신이 나잖아. 이렇게 말해준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도 아이를 핑계로 내가 크게 나아진 부분도 있다. (현실적으로,라는 말을 쓰는 것은 내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증거인가.) 혼자였으면 쉽게 포기할 것도 아이가 있어서, 아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해내는 거다. 아이 앞에서는 휴대폰으로 놀지 않고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한다던가, 매일 빼먹지 않고 영어공부하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를 핑계 삼아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은 나에게 꽤 효과가 있었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내 속마음과 아이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해져서 힘이 세졌다. 이래서 엄마는 뭐든 다 할 수 있고 강하다고 하는 건가?

이런 모든 행동은 아이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대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일방적으로 배려하고 맞춰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 마음 덕분에, 결국 아이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챙길 수 있게 되었다고 꼭 알려주고 싶다.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거 하고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거 하자고 말하잖아, 그게 엄마에게는 네가 있어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거야. 네가 아니었으면 엄마는 매번 참다가 좋아하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렸을지도 몰라. 못 본 척하고 지냈을지도 모르고.”


아이 덕분에 나를 더 아낄 수 있었고, 아이 덕분에 좀 더 괜찮게 살아보자며 애쓸 수 있었다. 어쩌면 아이와 나는 서로의 마라톤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긴 여정을 함께 가는 동료가 되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각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잘 가자. (물론 남편도 포함이다. 서운해하지 마시길.)




* 내가 좋아한, 나의 치앙마이 순간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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