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_나에게 돌아가는 길
일요일 아침, 빗소리가 나를 깨운다. 갑자기 공항 가는 길이 난감해진다. 난 긴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을 건데, 슬리퍼에 반바지는 너무 추워서 입을 수가 없는데 어쩌지? 젖은 신발을 신고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막막해서 끙끙대고 있는데 남편이 쏘카를 빌려서 데려다주겠단다.
"난 괜찮아. 너무 번거로울 텐데?"
"날씨가 이런데 당연히 데려다줘야지. 맘에 없는 소리는 하지도 말고."
편안하게 차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한다. 대만 날씨 어플을 켜서 살핀다. 가오슝의 날씨는 맑음. 기온은 평균 30도 정도 되는 것 같다. 30도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걸어 다니기 좋은 정도라면 참 좋겠다.
김포공항이라서 그런지 국제선 구역은 한산한 편이다. 멀리 떠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남편과 아이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고 눈물이 차오르는 척 연기를 한다. Bye- 난 이제 간다. 혼자 간다.
면세점 앞에서 챙겨 온 롯데상품권을 꺼낸다. 시어머님이 생일이라고 주신 선물이다. 꼭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어서 수개월을 꿍쳐둔 것이다. 눈치 볼 사람도 챙겨야 할 사람도 없으니 편하게 설렁설렁 매장 사이사이를 걷는다. 조말론 앞에 섰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선물 포장을 해줄 수 있는지 묻는다. 좋아 보인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있으니 나는 조금 더 편하게 이것저것 향을 맡아본다. 평소에 우디 한 향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좀 다른 향을 사용해보고 싶었다. 직원이 파우더리 한 향이라며 미모사 앤 카다멈을 추천해 줬다.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30ml를 샀다. 원래 가격을 잘 몰라서 저렴하게 잘 산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부터 시작해서 여행 내내 열심히 뿌리면서 이 기분을 만끽하려 한다.
비행기를 타면 잠이 쏟아진다. 몸이 무거워지고 특히 손과 발이 붓는 느낌이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모든 짐을 가방에 넣어 발치에 둔다. 작은 비행기라 그런지 머리 받치는 부분이 휘어지지 않는다. 자다가 옆사람에게 부딪히지는 않을까 긴장하면서 잠이 든다. 다행히 머리를 앞으로 푹 숙이고 잔 것 같다.
손이 저리고 눈이 따가워서 깼다. 안약 통을 여는데 뽕 소리가 난다. 챙겨 온 괄사를 주무르고, 기름종이도 한 장 꺼내 콧잔등을 닦는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건조해서 그런지 내가 좀 더 나이 들어 보인다. 특히 목은 주름이 도드라진다. 살을 빼서 그런가. 살을 좀 더 어릴 때 뺐어야 했나. 아니, 지금이라도 빼서 다행이지.
창밖을 보니 바다에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 그 부분만 바다 색이 짙어 섬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다에 떠있는 작은 배를 보았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찾기 힘든 이 장면에, 아기의 새끼손톱 보다 작은 배가 떠있는 모습이 묘하게 아름답다. 사진을 찍고, 너무 작아서 나중에 사진 속에서 찾지 못할까 봐 확대해서 캡처도 해둔다.
아, 눈이 계속 따갑다. 다시 눈을 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