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_나에게 돌아가는 길
셋째 날 밤에도 어김없이 노트를 펴고 펜을 들었다. 빨간색 펜으로 질문을 적는다.
"오늘도 좋아하는 것을 찾았나요?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요?"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며 하루를 마무리한 지 3일이 되었는데, 어째 좋아하는 것이 늘었다. 스물세 개의 좋아하는 것들을 노트 두 페이지에 걸쳐 적어두니 이것만으로도 든든하다. 내 편이 생긴 기분이다. 맞다. 내가 내 편이 되어주는 기분이라서 기뻤다.
1.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2.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3. 알록달록 건물과 집집마다 걸려있는 바짝 마른빨래와 그림이 그려진 벽을 좋아한다. 예뻐 보인다.
4. 역시나 더운 날도 뜨거운 커피를 좋아한다.
5. 겉바속촉을 좋아한다. 오늘 아침식사도 그랬고 미술관에 먹은 펌킨파이도 그랬다.
6. 물어보고 빨리 해결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안 물어보고 끙끙대 보는 것도 좋다.
7.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대화하는 내가 좋다. 그때 돌려받는 미소도 좋다. 내가 괜찮아 보이는 사람인게 좋다. 괜찮은 사람. 진짜 괜찮은 사람이기!
8. 모자 쓰는 거 좋다. 하나 더 사고 싶다. :-)
9. 행복해 보이는 사람, 애틋하게 눈빛을 주고받는 사람, 풋풋한 커플, 빙수집에 들어오는 노부부, 시골마을에 눈사람을 선사하는 사람이 좋다. 그 마음들이 좋다. 사랑이 일상인 사람들이 좋다.
10. 너무너무 죄송하다고 인사하는 편의점 직원이 좋다. 그렇게까지 사과할 건 아니지만, (굳이 투덜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쿨하게 사과를 냅다 해버리는 게 멋있다. (그냥 손님이 좀 기다린 상황이었다. 차례차례 하면 기다리는 거지 뭐.)
11.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미술관에서 만난 여성들. 그 젊은 용기가 좋다. 용기 있는 자는 젊은이다. 청춘이다.
12. 보조배터리에 스티커를 붙이면서 좋아하는 내가 좋다. 작은 것에 즐거워하는 게 좋다.
13. 열심히 잘 깨닫고 열심히 잘 다짐하는 내가 좋다.
14. 메모 많이 남기는 내가 좋다.
15. 나를 더 좋아하게 되고 있는 게 좋다.
16. 미술작품 보는 거 좋아하나 보다.
17. 바다보다는 초록초록을 더 좋아하나 보다. 초록이 더 생동감이 느껴져서인 것 같다. 바다는 많은 것을 품고 있지만 해변은 파도와 윤슬과 해안선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깊은 바다를 떠올린다면 결과가 다를지도.
18. 새로 산 0.05mm 펜을 쓰는데, 부드럽게 잘 써져서 행복하다.
19. 내 브런치 읽는 사람이 예상보다 꽤 있는 것 같다.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고, 행복회로를 돌리는 시간이 좋다. 돌려라 돌려~
20. 가오슝은 일본 비에이가 떠오르는 곳이다. 한적한 마을. 조용한 곳 좋아하네. 차분한 대만 사람들 좋아하네.
21. 미술관 직원이 어르신이 많은 거 좋더라. 분위기도 안정적이다. 못하게 감시하는 느낌이 아니라 필요한 거 도와줄게 하는 것 같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또 배운다. 배우는 거 많다. 이것도 좋다.
22. 새로 산 휴대폰 거치대가 너무 예쁘다. 보는데 계속 기분 좋다.
23. 첫날에 드럭스토어에서 봤던 립밤을 두 개 샀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 사서 칭찬해주고 싶다. 하나에 오천 원인데, 이 정도는 사자. 열심히 쓰면 되잖아. 나를 위한 선물이다. 선물은 좋지.
오늘도 정말 좋았다. 오늘이 더 좋았던 건 내가 나를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좋아한다는 거 꽤 벅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