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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장] 바람소리는 빗소리를 닮은 듯?

아홉째 날. 가을에 퐁당

by 그린제이

동네 친구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

바람에 은행나무 잎들이 일제히 공중제비를 시전 하더니 근사한 춤사위를 보여준다.

아. 가을이 지나가는 길이구나 싶다.


커피를 마시며 이러저러한 이야기 끝에 아까 은행잎들의 아름다웠던 춤사위를 이야기한다.

나무가 많은 곳으로 산책은 어때? 동네친구도 오케이다.


카페를 나와 어디로 갈까 하다가 4.19 민주묘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걸어서 20분 정도거리다.

묘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 전에 419 카페거리 맞은편 쪽으로 산책길을 본 기억이 났다.

방향을 틀어 산책길을 찾기로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북적였다.

방향감각으로만 찾다 보니 처음 가보는 동네길에 들어서기도 했지만 그것도 나름 재밌었다.

모르는 길 가는 걸 즐거워하는 편이다.

드디어 나무들 가득한 북한산 둘레길 발견. 조금 올라가니 이정표가 여러 개 붙은 갈림길이 나왔다.


'백련사'라고 쓰인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현 위치에서 2.8Km. 숲이라 조금 빨리 어두워지려나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가다가 내려오기로 하고 걷기 시작했다. 낙엽이 가득해서 걸으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비 오면 꽤나 미끄러울 듯했다.

여기저기 나무들에게 간섭을 하며 올라왔더니 어느새 백련사에 다다랐다.


아! '백련사'

보물을 발견한 순간.

정말 작은 암자인데 그 소박함이 아름답고 아름답다.

마당에서 보이는 산자락이며 나무들이며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머리는 비워지고 마음은 채워질 것 같다. 또 와야지 다짐한다.

비가 내리는 날,

눈이 내리는 날,

사계절 내려앉는 풍경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 분명하다.

그 풍경을 마주할 생각에 설렌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서 주변을 보는데 부는 바람에 풍경소리가 울린다.

나뭇잎들 사이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를 듣는데 빗소리랑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묘하게 닮았다.


집에 도착할 무렵 해도 저너머 집으로 돌아간다.

시계를 보니 18,000보를 걸었다.

발바닥은 좀 아프지만 '백련사'를 만난 것이 진짜 기쁘고 신난다.


(알고 보니 그쪽이 단풍맛집이었다. 재밌었던 풍경하나는 카페거리의 카페 사람들이 대부분 맞은편 쪽으로 일제히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길만 건너면 풍경 속으로 퐁당 들어갈 수 있으니 다들 그러셨기를 :))


눈을 감고 들어보세요. 묘하게 빗소리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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