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는 누구신지? 네???
조금 일찍 도착해 몇 사람 없는 기차에 앉아 가면서 들을 플레이리스트를 세팅하고 떠나려면 얼마나 남았는지 시간을 확인한다.
순간, 묘한 기운에 앞으로 바라보니 한 할머니가 마치 산과 산사이에 걸려있는 외줄다리라도 건너시는 듯 불안한 몸짓으로 정말 조심히 걸어오신다. 온몸에서 '불안함'이 넘쳐흐르고 있다.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10시 방향쯤에 멈춰 서시더니 살짝 안절부절못하시는 듯하다.
상황이 어찌 될지 몰라 음악을 끈 채 할머니에게 집중한다.
그 자리의 창가석에는 이미 한 분이 앉아계셨는데 불안하게 서 있는 할머니에게
"몇 번인데요? 맞아요. 앉으세요." 라며 선뜻 말을 건네신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이제는 조금 안심해도 되는 듯 그러나 조심스레 자리에 앉으신다.
나도 덩달아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어디까지 가요?" 아주머니가 할머니께 묻는다.
"순천까지 가요." 할머니가 대답한다.
"순천 어디 사셔요?"로 시작해서 두 분의 대화가 이어지고 할머니는 대략 친척 결혼식에 왔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시고 아주머니는 동생이 그곳에 살아서 가는 길이라는 걸 나도 어영부영 알게 된다.
그렇게 몇 차례의 대화가 오가자 할머니는 퍽 안심이 되시는 듯 좀 전의 불안감은 대체적으로 사그라들었다.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며 '저런 대화는 이제 거의 마지막 세대실지도 모르겠고 앞으로는 가능할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맞다. 생각해 보면 어르신들은 처음 만나도 쉽게 행선지나 사는 곳. 시간만 가능하다면 일가친척의 스토리까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대화들을 나누시곤 하지. 참 신기했는데 이제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나부터도 요즘 같은 때에 낯선 이에게 그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을 먼저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두리뭉실하게 답을 하겠지. 그것도 꼭 필요하다면. 그렇지 않다며 자리를 피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저 아주머니가 계셔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으로 음악 재생버튼을 다시 누르고 눈을 감으려는데 누군가 내 뒤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아 눈을 뜬다.
아니다 다를까 어떤 아저씨 한분이 할머니에게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신다. 아마도 친척분인 듯.
다시 또 상황을 지켜보는데 아마도 할머니가 좌석을 잘 못 찾으신 듯하다. 좌석은 맞는데 기차칸이 틀린 모양이었다.
좌석에서 일어나는 할머니 눈빛에 또다시 불안감과 원망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에구구. 이를 어쩌나.
보고 있는 내가 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제 기차가 떠나려는 시간이 가까워진 것인지 많은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살짝씩 보이는 할머니와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며 그곳에도 저런 아주머니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낯선 사람을 우선 경계하는 나를 보며 언제 이렇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다.
내 옆 좌석에도 누군가가 앉고 투명박스라도 있는 듯 각자의범위 내에서만 기민하게 움직이며 기차가 움직이기를 기다린다.
기차가 드디어 가기 시작한다.
나는 할머니가 조금은 마음 편안하게 댁까지 가시길 바라며 다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