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part2-1. 치매 환자의 가족이 쓴 책들
음식 만드는 것을 보면서 '얘가 뭘 만드나?' 추리를 하고 옛날에 엄마가 요리했던 기억도 되살리고 '다음엔 채소를 넣겠구나!' 예측도 하고 또 엄마의 방식과 비교도 하니 상당한 인지활동이 된다. ... 그런데 어느덧 엄마가 부엌일을 도와주시는 동안 나는 옆에 서서 폭풍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 엄마가 설거지하고 부엌 정리를 하는 걸 단순히 부엌일이 아니라 뇌를 변화시키는 좋은 인지활동이며 작업치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돈 주고 해야 하는 인지치료와 작업치료를 무료로, 엄마가 스스로 하시는데 그걸 막을 이유가 없다. 다만 치료가 끝나고 내가 다시 치우면 된다. 엄마가 일차 설거지를 끝내고 나가시면 그때부터 내가 다시 닦거나 씻거나 내 마음대로 한다.
<깜박깜박해도 괜찮아> 101~103p
약은 아버지가 관리하며 매일 엄마에게 한 알씩 먹였다. '엄마가 약을 정량보다 많이 먹거나 잊어버리지는 않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아버지는 책임감으로 늘 엄마의 동향을 살폈는데 엄마는 아버지에게 감시당한다고 느끼는지 짜증을 냈다. 이를테면 "네 아버지는 나를 맨날 쳐다보고 있어" "내가 뭐만 하면 화를 낸다" "나를 그렇게 못 믿는다니" 하며 트집을 잡았다. ... "내가 잘못했다는 소리예요? 기껏 당신 몸 생각해서 샀더니!" 아, 엄마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아무도 악의는 없는데. 정말이지, 곳곳이 지뢰밭이다. ... 가장 괴로운 건 엄마, 본인이다. ... 엄마가 느닷없이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은 내가 건망증이 심해지는데 걱정 안 돼요?" 응? 엄마,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황해하는 나를 무시하며 아버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왜 걱정이 안 돼. 그야 가족이니 걱정되지." "당신은 그런 내가 안 부끄러워요? 짐짝처럼 안 느껴져요?" "그런 적은 없으니 안심하구려." "그래요, 그럼 됐어요." ... '당신은 확실히 잘 잊어버리지만 나는 그걸 부끄럽다고도 짐짝이라고도 생각 안 해, 그러니 안심하구려.' 그런 메시지를 아버지는 자연스레 엄마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이렇게 생각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아내에게 얼마나 의지가 되었을까. 엄마는 정말로 아버지의 말에 힘을 얻으며 안심했던 적이 많았나 보다.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58-63p
카메라를 들고 자세를 취하면 자연스레 '객관적'인 시점을 취하게 된다. 그러면 딸의 시선으로 볼 때는 '비참하다'라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일이 의외로 다르게 다가왔다. '치매 할머니와 귀먹은 할아버지의 맞물리지 않는 어긋난 대화'에는 적당히 우스꽝스러운 맛도 있다. 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점차 '왠지 모르게 이 두 사람 훈훈하다. 좋은 캐릭터구나. 사랑스럽다'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난 것이 희극 왕 채플린의 그 유명한 명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자신이 휘말릴 정도로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괴롭지만 멀리서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면 웃음이 나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 지금 가족을 돌보고 있는 분들에게도 이 '객관적으로 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카메라를 들고 보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기분으로, 간병으로 꽉 막힌 기분은 싹 덜어내고 객관적인 시점으로 바라보면 분명 관점이 크게 바뀐다. ... 간병하는 사람이 스트레스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이러한 시도가 분명 필요하다. ... 치매 가족을 간병하고 있으면 무의식 중에 상황에 매몰돼 버려 감정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치닫기 쉽다. 과거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비참해지는 것이다.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146-147p
그렇게 좋아하던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 당연히 처음에는 충격이었으나 전에 없던 언동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일상이 되었고 점차 엄마의 기행에도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기보다는 정나미가 떨어졌다. 진심으로 상대를 안 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지 모르겠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안에서 엄마가 조금씩 죽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치매에 걸리지 않고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면 나는 슬픔과 결핍으로 견딜 수 없었을 테지만 지금은 엄마의 죽음이 그렇게 두렵지 않다. ... 확실히 말하자면 지금의 엄마는 더 이상 내가 좋아했던 엄마가 아니다. 그래서 마음 어딘가에서, 신이 엄마를 치매에 걸리게 해서 엄마가 세상을 떠나도 내가 많이 슬퍼하지 않도록 '평온하게 체념하는 죽음'을 준비해 줬다고 생각하고 있다. ...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런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 자기혐오로 괴로워하고 있는 분에게는 '당신만 그런 게 아니에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은 불효의 극치라고 스스로에게 욕을 퍼부으면서도 '이건 신의 친절'이라 생각함으로써 분명히 위안을 얻고 있으니까. ... 그리고 결심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엄마를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달은 이상 어떻게든 그 노력을 해야겠다고.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232-234p
그들이 호소하는 내용은 비슷하다. 돌봄이 힘든 것은 환자 때문만은 아니다. 환자를 돌보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더 힘든 것은 다른 가족들의 참견이라는 거다. 어쩌다 독박 케어를 하게 되었는데 다른 형제들이 도와주지는 않으면서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며 마음을 괴롭히고, 거기에 경제적인 문제까지 겹치면 더더욱 힘들어진다. 피를 나눈 가족들도 환자를 직접 돌보는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남의 상황을 모르니 짐작으로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이미 힘든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렇게 힘이 드는데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 있어 보이는 다른 형제들은 왜 거들떠보지도 않을까 속상하고 야속하지만 또 그들의 상황은 그들만이 아는 것이다. ... 일단 지레짐작하고 속단하기 전에 마음을 털어놓고 사정을 서로 들어 보는 것이 최우선이다. 모든 것이 다 '되어 볼'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만 해도 내 마음이 편해진다.
<깜박깜박해도 괜찮아> 230-232p
"나오코 씨, 저는 엄마를 간병하다 떠나보내고서 생각했어요. '간병은 부모가 목숨 걸고 해주는 마지막 육아'라고요." ... 엄마는 지금, 자신의 전부를 걸고서 자식인 내가 인간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마지막 육아를 해주고 있구나. ... 삶은 그런 것이다. 예쁘지만은 않다. 우리 삶을 똑바로 보고 느껴라. 엄마와 아버지는 지금 몸소 내게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 육아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엄마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까지 나는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253-254p
나의 노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시니 감사하다. 엄마와 아버지를 옆에서 보면서 나의 관심사가 유아에서 노년으로 바뀌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이 이젠 아주 구체화되었다. 그렇다고 명쾌한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의 노년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깜박깜박해도 괜찮아> 25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