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낡은 터미널에서부터 한참을 걸어왔다. 괜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발끝에 남은 고집이 아직 식지 않았다. 수진은 목이 타들어 가는 걸 견디다 못해 편의점 문을 밀었다. 에어컨 바람이 가볍게 뺨을 스쳤다. 언제나 그렇듯 물 코너로 향해 생수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계산대로 다가가자 카운터에 앉아 있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상복. 단정하게 묶인 검은 머리,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는 어깨. 편의점 유니폼 대신 상복이라니 마치 다른 세계에 잘못 들어온 것 같았다.
손에 든 생수병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왜 하필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저 여자가 상복 차림으로 계산대를 지키고 있는지 의아했다. 정확히는 입안에 씹히는 모래알처럼, 사라지지 않고 계속 불편했다. 여자의 얼굴에는 분명 울음이 흘렀던 물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위로,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스스로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각오가 느껴졌다.
그 순간, 편의점 문이 거칠게 열렸다. 두꺼운 유리를 감싸고 있는 철제 문틀이 덜컥 울리는 소리가 좁은 공간을 채웠다. 두 사람이 들어왔다. 그들 역시 상복 차림이었다. 얼굴은 울다 지쳐 부은 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숨소리는 매섭게 흔들렸다.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고함을 질렀다.
“자식들이 갔는데… 미친 거 아니에요? 도대체 왜 가게 문을 열고 있는 거예요?”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억눌렀던 분노가 한순간에 터져 나온 듯, 말들은 거칠게 공중을 내리꽂았다.
“사람들이 다 장례식장에 모였는데, 여긴 뭐예요? 계산대에 앉아서 뭐하는 거예요? 제정신이에요?!”
“정신 좀 차려요! 울든가, 같이 가든가 해야지! 이렇게 버티고 앉아 있으면 그 애들이 뭘 보고 가겠어요!”
말이 이어질 때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 편의점 특유의 인공적인 밝은 조명이 오히려 장면을 더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냉장고 안에서 ‘칙’ 하고 콤프레서가 켜지는 소리까지, 잔인할 만큼 일상적이었다.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눈가엔 이미 울음이 맺혀 있었지만, 얼굴은 차분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편의점은요 문을 닫을 순 없어요. 부탁해 놨으니 곧 사람 올 거예요. 그때까지만… 내가 버티면 돼요. 그리고 나서... 그 애가 먼저 가고 나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하나라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야죠. 지금은 내가 여기를... 여기를...”
손가락이 계산대 위를 천천히 긁었다. 매대 위에 놓인 과자봉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빛은 맑고 공허했다. 마치 모든 힘을 다 쏟아내고 남은 껍데기 같았다. 말을 하는 건지 소리를 내는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 긴장감에 수진은 계속 카운터로 눈을 흘깃 거렸다.
“난 늘 여기 앉아 있었어요. 계산해야 했고. 오늘도 다르지 않아요. 지금도 당장은, 달라지면 안 돼요.”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금이 가 있었다. 그 금 안쪽에서 아직 제대로 울지 못한 울음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은 말없이 서 있었다. 울분이 식지도 않았는데, 더 이상 퍼부을 말이 없어진 듯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들의 숨소리가, 매장 안의 냉장고 소음과 얽혀 이상하게 진동했다.
수진은 생수병을 내려놓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손에 닿는 차가운 플라스틱 표면이 점점 미지근해졌다. 그 순간, 그녀는 아주 선명하게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무너져야 할 자리에, 껍데기처럼 붙어 앉아 있는 한 사람. 그 자리에 흐르는 이상한 침묵과, 숨 막히는 고독이 느껴졌다.
수진의 몸이 굳어졌다. 아주머니의 눈빛이며 표정, 무표정 속의 단단함이 곧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불안하기보다 익숙했다. 그럴수록 마음이 더 흔들렸다. 낯선 이곳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이 이제는 단순한 외지인의 방문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빠르게 계산을 끝내고 수진은 편의점을 나왔다.
수진은 숙소 방 안에 몸을 던지듯 들어왔다. 작은 창문이 달린 낯선 방, 오래 묵은 냄새가 벽지에 밴 채 가라앉아 있었다. 여행객들을 위해 꾸며 놓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값싼 가구와 희미한 전등 불빛은 오히려 이곳이 잠시 머무는 장소임을 더 강조했다.
짐을 풀며도, 씻을까 말까 고민하며도, 마음은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침대에 누웠지만 눈꺼풀은 무겁지 않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왜 여기까지 와 있는지 새삼스럽게 자문했다. 명확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은 곧바로 공허함이 되어 방 안에 번졌다.
커튼 틈으로 흘러든 가로등 불빛이 바닥에 울퉁불퉁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마치 불안의 형태가 눈앞에 드러난 듯했다. 그 그림자는 수진의 마음을 은근히 건드렸다. '쉬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스스로를 눕혀 두고 있었지만, 정작 마음속은 잠시도 가라앉지 않았다.
창문을 조금 열자 짠내가 들이닥쳤다. 바다 냄새 같기도 하고, 녹슨 철의 기운 같기도 한 공기였다.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냄새가, 수진을 멀리 다른 장면으로 데려갔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보았던 낡은 간판들, 기울어진 가로수, 공터에 쌓인 그물망 자루들. 단조로운 풍경들이 다시 머릿속에 이어졌다. 그 기억들은 특별하지 않았으나, 되새길수록 이상하게도 지금의 정적을 더 두텁게 만들었다.
짠 바람이 커튼을 흔들 때, 수진은 갑작스레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는 순간, 망설임이 있었지만 결국 번호를 눌렀다. 벨소리가 이어졌다. 낯설지 않은 이름이 그 작은 화면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을 거라는건 이미 알고 있었다.
수진은 눈을 감았다. 잠들려는 건 아니었다. 눈을 뜨지 않고 버티면서,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가늠해 보려는 것이었다. 왜 이곳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오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때의 공기, 그때의 바람, 그때의 냄새가 궁금했다. 시간은 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날 이후, 마음 한 구석에 늘 따라다느던 불쾌한 냄새. 하수구에서 나는 것같은 그 냄새가 다시 코끝에 스며들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땀구멍에서 나는 냄새일수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기어이 이곳에 오게 되었다. 이유를 말하자면 길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와야만 했다. 어떤 의무도, 약속도 아니었지만 이미 정해져 있었던 일과 다르지 않았다. 같은 길, 같은 바람, 같은 하늘 아래 서 있었다. 심지어 몸이 기억하던 감정까지 그대로였다.
그날의 부재와 오늘의 도착이 겹쳐졌다. 그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버겁고, 숨을 막았다. 수진은 그때는 오지 않았고, 지금은 와 있다는 사실까지도 싫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왜 이렇게 늦게 찾아온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이름 하나가, 아직 말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편의점에서 상복입은 주인을 떠올렸다. 어쩌면 내일로 미뤄둔 일을 오늘 할 수도 있을지도 몰랐다.
준호는 컵을 들어 물을 마시려 했다. 손에 힘을 주는 순간, 팔과 손목이 떨렸고, 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물이 잔 안에서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쿡쿡 찔렸다. 숨을 고르려 창문을 바라봤다. 바람이 커튼을 살짝 흔들었다. 그 작은 움직임조차 신경을 건드렸다.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음악, 계단에서 들려오는 걸음 소리까지, 모든 것이 싫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소리였다. 오늘따라 시비를 터는 것 같았다. 신경 전체가 촉수처럼 세워져 있는 느낌. 준호는 어떤 일에도 참지 못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머릿속에서는 이서의 얼굴과 목소리가 반복됐다. 웃음, 말투, 사소한 습관까지. 상상하는 이미지와 몸의 긴장이 엇갈렸다. 가슴이 뛰고, 손끝이 떨리고,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움찔거렸다. 소파에 등을 붙인 채 다리를 꼬았다가 풀고, 팔을 늘어뜨렸다가 올렸다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긴장을 풀어보려 했다. 그러나 풀리지 않았다.
다리를 앞으로 내밀어 발바닥으로 바닥을 눌렀다. 힘을 줄 때마다 아주 가느다란 떨림이 다리뼈를 타고 올라왔다. 그 떨림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여기 앉아 있다는 사실과 맞물려 있었다.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화는 이상한 방식으로 고여 있었다. 사라지지도, 뚜렷한 표적을 찾지 못했다.
원래라면 이런 상황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작은 소리, 가벼운 움직임, 스쳐 지나가는 냄새까지도 온몸을 긁고 지나갔다. 그 자극들은 서로 얽혀, 뿌리째 뒤흔드는 불안을 만들었다. 소파에 몸을 기대자 쿠션의 눌림마저 거슬렸다.
창밖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숨을 길게 들이마셔도 심장은 제멋대로 속도를 바꿨다. 마음 한쪽에서는 이서와 나눴던 기억들이, 다른 쪽에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억울함이 뒤엉켜 끊임없이 회전했다. 눈을 감으면 아주 작은 소리에도 몸이 튀어 올랐다.
고통스럽게도 밤은 끝날 기미가 없었다. 경계와 긴장이 번갈아 들이치며, 어느 한 순간도 풀리지 않았다. 이제는 누군가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던 것들이 오늘은 전부 거슬렸다. 시계의 초침, 창문 틈새로 넘어오는 냄새, 소파 쿠션이 허리를 받치는 압력까지. 하나하나가 신경을 건드렸다. 그게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이서의 얼굴이 짧게 스쳤다. 떠올리고 싶어서 떠올린 게 아니라, 기계가 전원을 켜듯 자동으로 켜진 화면 같았다. 거기엔 대단한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웃는 모습, 혹은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모습. 하지만 그 이미지 뒤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이 뿌연 먼지처럼 따라붙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누구 잘못인지조차 분명치 않았다.
숨을 길게 들이마셨지만, 심장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 불규칙한 박동이 오히려 또 다른 자극처럼 느껴졌다. 그는 소파 위에서 몸을 옮기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밤은 깊었지만, 마음은 전혀 고요해질 기미가 없었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유리컵 같은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깊은 새벽인데도 전화가 울렸다. 준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화면을 확인하지 않은 채 엎어 두었다. 지금은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는 멈추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쌓여갔다. 발신자는 이서였다.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손끝이 화면을 향해 다가갔다가 다시 떨어졌다. 마음은 아니었지만 이미 헤어져버린 상황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간이 필요했다. 함께한 시간이 있었으니까. 때론 거리가 필요했다.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오롯이 홀로 버텨내야하는 시간이었다. 준호는 한동안 이서라는 이름을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모두 지워버렸다.
잠이 오지 않았다. 톡이라도 확인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화기를 잡는 손과 마음은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몸은 이성의 결정을 따르게 억눌렀다. 그때 지혜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내일 함께 가기로 했던 자리였다. 준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었다.
“지혜야… 미안. 나 내일은 못 갈 것 같아.”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서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워버린 톡의 내용이 떠오르고, 전화를 걸까 말까 하는 생각이 끝없이 반복됐다. 그러나 준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꺼져버린 화면만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충분히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