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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Aug 19. 2018

생각에 깊이를 더하는 법

생각 vs 사고 vs 사유



생각, 사고, 사유 어떻게 다를까?


'철학하기'는 용기 있게 의심하고 생각하면서, 주체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거야. '철학하기'는 이거야 라고 외우면 안 되고, 우리들의 삶에서 '용기 있게 의심하고 주체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철학하기야. 그러면 '철학하기'를 생각, 사고, 사유의 차이를 통해서 설명해볼게! 아래의 정의는 국어사전에서 검색한 생각, 사고, 사유의 뜻이야. 이것을 읽고 스스로 생각, 사고, 사유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 한번 해봐!



생각

(1) 헤아리고 판단하고 인식하는 것 따위의 정신 작용.

(2) 경험해 보지 못한 사물이나 일을 머릿속으로 그림.

(3) 무엇을 하기로 마음속으로 작정하거나 각오함.

(4) [주로 ‘있다’, ‘없다’ 앞에 쓰여]사리를 분간하고 구별함.

(5) 어떤 것에 대한 의견이나 느낌.

(6) [주로 음식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쓰여]어떤 것에 대한 관심이나 욕구.

(7) 지난 일 따위에 대한 기억.

(8) 마음에 두고 그리워함.



사고(思考)

(1) 무엇을 헤아리고 판단하고 궁리함.

(2) [철학] 개념, 구성, 판단 등을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

(3) [심리] 심상이나 지식을 사용하는 마음의 작용.



사유(思惟)

(1) (기본의미) 생각하고 궁리함.

(2) [철학] 개념, 구성, 판단 등을 하는 인간의 지적 작용.

(3) [불교] 대상(對象)을 분별하는 일.



아마 대부분 학생들은 그 차이를 설명하기 힘들 거야. 우리의 공부가 쓸데없는 잡다한 지식을 무식하게 암기시키거든. 인터넷만 치면 다 나오는 이야기를 왜 그렇게 암기시키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까놓고 이야기해서 어떨 때는 공부가 아니라 학대라고 느껴져! 이해되지 않은 잡지식의 암기력 테스트를 어떻게 공부라고 할 수 있니? 


여하튼 요즘 수능에서 국어 비문학이 어려워진다고 하니 학생들이 이제는 단어를 외우기 시작해! 하지만 단어의 뜻을 외우는 것과 단어의 실질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야. 책을 많이 읽는 것과, 책을 이해하는 것도 별개야. 영어공부를 할 때, 단어를 모두 찾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 마찬가지로 친구와 대화할 때, 한국말이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러니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알고 있다고 해서. 단어의 실질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야. 즉 '생각, 사고, 사유'의 사전적 의미를 알고 있다고 해서, 내가 실제로 '생각, 사고, 사유'를 잘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거야.


학생들에게 종종 수학이 뭐니? 경제가 뭐니? 과학이 뭐니를 물어봐! 초등학교부터 그렇게 오랫동안 수학, 과학 등을 배우는 데 정작 수학, 과학이 뭔지를 모르는 거야. 이해가 아니라 암기를 한 거야.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어른들도 정작 책을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도 많단다. 그래서 물어보면 책에 등장인물이 누구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하지만 그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 책을 읽은 척 하지, 진짜 읽은 건 아닌 거야.



   피튜니아는 하는 짓이 어수룩해서 맹추라고 놀림을 받는 암 거위야. 어느 이른 아침에, 이 맹추 피튜니아가 목장을 산책하고 있었어. 피튜니아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딱정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클로버 이파리를 물어 듣기도 하고 풀 이파리에 맺힌 이슬방울을 쪼기도 했지....
   그런데, 갑자기, 풀밭에 웬 낯선 물건이 눈에 띈 거야. 저게 뭘까?
   피튜니아는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서, 요리조리 냄새를 맡아보았어.
   “거위의 직감으로 보건대, 이건 먹을 것은 아니야. 하지만 본 적이 있는 물건 같은데....”
   “옳아. 주인집 아들 빌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 옆구리에 끼고 오는 것을 보았어. 이건 책이야. 그래 맞아. 책이야!”
   “이제 생각난다. 바로 며칠 전에 펌킨 씨가 빌에게 책은 아주 소중한 것이랬지. 펌킨 씨가 그랬잖아. 책을 지니고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롭다고.”
   “책을 지니고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롭다.” 피튜니아는 이 말을 곱씹어 보았어. 그리고 한참 동안 끙끙거리며 머리를 쥐어짜 냈지. 마침내 피튜니아는 이렇게 말했어. “좋아,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애지중지하면 나도 지혜로워질 수 있을 거야. 그럼 이담부턴 아무도 나를 맹추라고 부르지 못하겠지.”
   피튜니아는 책을 집어 들고 그 자리를 떠났어.
   피튜니아는 책을 깔고 잠들기도 했고 책을 부리에 물고 헤엄을 치기도 했어. 게다가, 자기가 정말로 지혜로운 줄 알고 교만해지기까지 했는데,
   교만해지고
   더 교만해지고
   그러고도 더 교만해져서
   목을 잔뜩 늘여 빼고 다녔지.
   피튜니아가 달라진 것을 처음으로 눈치챈 동물은 목장의 대장인 수탉이었어. 수탉은 이렇게 말했어. “피튜니아는 이제 맹추가 아닌 것 같아. 책을 지니고 다니잖아. 정말로 똑똑해졌나 봐.” 다른 동물들도 피튜니아가 지혜로워졌다고 믿게 되었지. 동물들은 피튜니아에게 조언을 구했고, 피튜니아는 기꺼이 도와주었어. 부탁받지 않은 것까지도.
   피튜니아는 더욱더 교만해져서 목을 훨씬 더 길게 늘여 빼고 다녔지.
   로버가 목장의 대장인 수탉에게 하는 얘기를 들었어. “난 대장의 볏이 왜 그렇게 빨간지 궁금해요. 외양간 색깔처럼 빨갛잖아요.”
   대장이 말했어. “내 피 때문이야. 내 피 색깔이 빨갛잖아.”
   클로버가 말했지. “말도 안돼요. 내 몸에도 피가 흐르고 있어요. 하지만 난 빨갛지 않잖아요. 그 볏을 외양간을 칠하는 빨간 페인트 통 속에 빠트렸기 때문에 그렇게 빨개진 거라고요.”
   피튜니아가 끼어들었어. “둘 다 정말 바보로군요. 대장, 주인아저씨가 수탉과 암탉을 구별하려고 대장한테 볏을 붙여 놓은 거예요. 알을 낳는 게 누구고 알을 못 낳는 게 누군지 알아볼 수 있게요. 아마 플라스틱 볏일 걸요.” 대장은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꼬끼오하고 울 때에 볏이 떨어져 버릴까 봐 다시는 자랑스럽게 볏을 흔들어 대지 못했단다.
   가엾은 수탉은 슬픔에 빠지고 말았어.  
   
                                                                      -중략-

   피튜니아가 할 일은 또 있었지.
   아기 고양이 코튼이 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가 없었어. 코튼은 야옹야옹 울고 있고, 코튼의 친구들이 피튜니아를 찾아왔어.
   피튜니아가 말했지. “기꺼이 도와줄게. 나한테 방법이 있어. 아무도 코튼에게 닿을 만큼 키가 크지 않으니까 모두 힘을 합해야 해. 암소 위에 당나귀가 올라서고, 당나귀 위에 돼지가 올라서고, 그렇게 계속해서 올라서면 되잖아. 간단해.”
   당나귀는 암소 위에,
   돼지는 당나귀 위에,
   염소는 돼지 위에,
   양은 염소 위에,
   아기 돼지는 양 위에,
   칠면조는 아기 돼지 위에,
   오리는 칠면조 위에,
   암탉은 오리 위에 올라섰는데......
   갑자기 암소가 소리쳤어.
   “그만! 내 다리가 휘청거려.”
   암소는 풀썩 주저앉아 버렸어.......  
   당나귀와 다른 동물들도 그만 와르르 무너져 내렸지.
   코튼도 어찌나 겁에 질렸던지 그만 나무에서 떨어지고 말았어.
   모두들 쿵하고 부딪고 야단이 났단다.
   피튜니아가 말했어. “봐, 내려왔잖아.”
   가엾은 아기 고양이는 멍이 들고 말았어.  
   피튜니아가 할 일은 또 있었어지. 피튜니아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교만해져서 목을 한껏 더 높이 쑥 뽑고 다녔어.
   피튜니아는 목장을 거닐다가 동물 친구들이 웬 상자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어.
   친구들이 소리쳤어. “아, 똑똑한 피튜니아구나. 길 옆 도랑에서 이 상자를 발견했어. 아무래도 먹을 거 같아. 뭐라고 적혀 있는지 읽어 줄래?”    
   피튜니아가 말했지. “기꺼이 도와줄게. 응, 어디 보자..... 음, 사탕. 사탕이라고 적혀 있어. 맞아, 사탕이야. 이건 먹어도 되는 거야. 그럼, 당연히 먹을 수 있는 거야. "
   순식간에 입 일곱 개가 탐욕스럽게 달려들어 그 상자를 찢고 사탕을 낚아채어 갔는데.....
   쾅!!!!
   동물들 꼴 좀 봐!
   불에 그을린 동물이 있네.
   상처를 입은 동물도 있고.
   스트로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신음하고 있었어.
   노이지도 여전히 끙끙거리고 있었고.
   이다도 여전히 병아리들을 걱정하고 있었지.
   대장도 여전히 근심에 잠겨 있었고.
   목장 앞마당에는 골칫거리 투성이었어. 이게 모두 다 피튜니아 때문이지.    
피튜니아는 갑자기 책을 흘끗 보았어. 폭죽에 날려 책장이 펼쳐져 있었어. 그 전에는 책을 펼쳐 본 적이 없었지. 피튜니아는 그 책에 자기가 전혀 읽을 수 없는 말이 쓰여 있는 것을 알게 되었어. 피튜니아는 주저앉아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끝내는 한숨을 내쉬었단다. “이제 알았다. 지혜는 날개 밑에 지니고 다닐 수는 없는 거야. 지혜는 머리와 마음속에 넣어야 해. 지혜로워지려면 읽는 법을 배워야 해.”
   피튜니아는 뛸 듯이 기뻤어. 언젠가는 정말로 지혜로워지려고 당장 읽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했지. 피튜니아가 정말로 지혜로워지면 친구들을 도와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야.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중에서



우리 교육은 피튜니아를 양산하는 교육이야. 적어도 피튜니아는 스스로 깨닫기라도 하잖아. 하지만 우리 교육은 부모도 선생도 학생도 서로가 서로를 학대하면서 아무도 잘못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아. 뜯어고치지 않으면 이제 답이 없어. 





생각은 이미지


눈을 감고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봐! '학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봐! 무엇이 떠오르니? 어제 먹었던 맛있는 피자에 대해서 생각해봐. 무엇이 떠오르니? 생각은 '이미지'야. 생각을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요즘은 드물어. 왜냐하면 요즘처럼 시각적 자극이 많은 시대에 생각은 이미지로 떠올라! 이미지를 한자로 하면 상()이야. 이미지는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야.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좋아했던 첫사랑의 모습이 이미지로 떠올라.


공부하려고 책을 펴는 순간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잡념들이 떠오르니! 우리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수많은 이미지들은 나열되어 있고, 뭉쳐있고, 망각되어 있고, 이것과 저것이 결합되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솟아올라. 때로는 특정한 생각-이미지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막연한 즐거움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 생각의 이미지들이야.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미지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단다. '사랑'을 떠올릴 때, 어떤 사람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떠올리지만 어떤 사람은 남자친구/여자친구를 떠올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애달픈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려.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맞장구를 치고,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어도,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미지와 친구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미지는 같지 않단다. 나의 경험을 통해서 상대의 이미지를 적절히 유추할 뿐이야. 그래서 누군가의 생각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자만하는 순간, 우리는 오해에 빠지게 되는 거야. 아래 그림을 보고 누구는 모자를 떠올리지만 누구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떠올린단다.



생각은 내 경험과 체험의 깊이가 '지금'과 만나서 나에게 나타나는 영화야.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수많은 '짤'과 같은 거야. 이것은 즉각적인 반응이야. 이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해! 하지만 내 경험과 체험이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할수록 우리는 다양한 생각-이미지를 떠올릴 가능성이 높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얼굴에 난 뾰두라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식탁 위의 머리카락,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나만의 헤어스타일, 남에게는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이런 것들을 우리는 생각하거든. 인생 걱정, 나라 걱정, 돈 걱정, 공부 걱정, 진로 걱정 이런 수많은 생각들이 우리의 머릿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생각들이야. 그래서 생각은 이미지야. 생각은 사고의 재료이지 '생각' 자체는 사고가 아니야.


배고파서 먹고 싶은 피자를 12시간 동안 생각했다고 사고력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 멍 때리면서 이런저런 잡생각을 했다고 사고력이 있는 것은 아니거든.





사고는 개념


지금까지 이야기한 '철학하기'를 정리해보자!


  ① '철학하기'를 잘하려면 생각을 해야 돼!

  ② 생각은 의심하는 것이야.

  ③ 무작정 많은 생각이 아니라, 도움이 되는 의심을 해야 해!

  ④ 의심을 통해 우리는 현실을 초월할 수 있어!

  ⑤ 이러한 생각을 잘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용기야.

  ⑥ 생각은 오로지 ‘내’가 하는 거야.


우리가 위의 것들을 할 수 있다면 이제 제대로 된 '철학하기'를 할 수 있는 자세가 갖추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철학하기'를 잘하려면 주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의심을 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만들 수 있는 거야. 이 모든 것을 합쳐서 앞으로 '사고'라고 부를게! 그래서 생각과 사고는 조금 다른 뜻이야. 물론 혼동해서 쓸 때도 있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6가지의 전제에 따라 생각하는 것을 사고라고 부를 거야. 사고는 내 생각이 맞고 틀린 지 따져보는 과정이야.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참고할 수도 있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 모든 선택의 과정에서 차근차근 주체적으로 꼼꼼하게 따져보는 과정이 사고야. 그리고 이러한 사고 능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단다.


틀린 문제를 보고 왜 틀렸는지 점검할 때, 반복되는 실수를 줄일 때, 농구공을 어떻게 하면 잘 넣을지 고민할 때, 여자친구/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을 때, 이 모든 과정에서 사고가 이루어져. 머리에 있는 생각-이미지들을 가지고 와서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어떤 생각을 폐기하고 어떤 생각을 추가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생각과 어떤 생각을 연결할 것인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미지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이 사고야. 물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이미지가 추가되기도 하고, 기존의 생각을 분석, 분해하거나 종합하기도 해! 그러면서 나의 생각이 보다 분명 해지는 거야.


선생님, 부모님, 친구 등은 이 과정에서 나에게 큰 도움을 준단다. 하지만 이들에게 의존해서, 스스로 생각을 조직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주체적인 인간이 될 수 없어. 과거에는 엄마, 아빠가 일하러 가고 바쁘니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이 많았어. 스스로 시간을 보내면서 천천히 자기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게 된 거야. 하지만 지금은 2~3살만 되어도 뒤처진다고 학원을 보내고 사교육을 시키거든. 그러니 아이들 스스로 자기만의 사고를 연습할 시간이 없는 거야.


사고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것은 개념이야. 개념은 결론이야. 이것은 자기만의 개념이야. 처음 가본 식당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음식을 먹고 값을 치르고 나오면서 '가성비 짱'이라고 말할 때. 우리의 사고는 '가성비 짱'이라는 개념을 산출하는 거야. 영화를 보고 나서 '시시해'라는 말도 개념을 만들어 낸 거야. 책을 읽고 '감동'을 느낄 때. 일상의 수많은 경험과 체험의 토대 위에서, 지금 이 순간의 자극에 대한 생각-이미지들을 모아서 그것에 대해 나만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개념이야.


그래서 사고는 개념을 산출해!

 



https://youtu.be/RiQTdP7M1Ug


https://youtu.be/ccricYPB7Zk


위의 동영상의 보면 한국의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하지 않아.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거지. 아이들도 이것에 길들여지다 보니 무엇이 잘못됐는지 몰라. 간혹 부모들 중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를 통제하려는 경우가 많단다. 그러니 아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이 아이들이 크면, 엄마가 시켜서, 학교가 시켜서, 사회가 시켜서 대학도 가고, 대기업에 취직도 했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는 거야.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은 미성년인 거야. 아직 계몽이 되지 않은 '미성년'에 불과하다고! 자신의 생각-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분석하고, 조직하고, 구성하고, 종합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하면 주체적인 인간이 될 수 없어.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 준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 할 거야. 자유로운 노예가 되는 거지.






사유는 방향성    


   왕이 하루는 대신에게 코끼리를 끌어내 오게 했다.
   "코끼리를 끌어내어 장님들에게 각각 만져보게 하라."
   장님들은 각각 코끼리를 만져 보았다. 어떤 사람은 코끼리의 다리를 만졌고 어떤 사람은 코끼리 상아를 만져 보았다. 귀를 만지고 끄덕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코를 만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코끼리를 한 번씩 만져본 다음에 왕은 그들을 불러 모으고 물었다.
   "너희들은 코끼리를 만져보았는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코끼리는 무엇과 같다고 생각하는가?"
   "코끼리는 무와 같습니다."
   상아를 만져본 장님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코끼리는 돌과 같습니다."
   이번에는 머리를 만져본 장님이 말했다.
   "코끼리는 통나무 같습니다."
   다리를 만져본 장님은 또 그렇게 말했다.
   "코끼리는 절굿공같습니다."
   코를 만져본 장님의 말이었다.
   등을 만져본 장님은 또 널빤지 같다고 말했다.


장님은 자신의 경험, 체험, 감각을 통해서 생각-이미지를 만들고, 사고를 통해 '무, 돌, 통나무, 절굿공, 널빤지'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거야. 하지만 이들이 코끼리를 각각 다르게 '경험-체험-감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만진 것이 궁극적으로 동일하지 않아. 하지만 장님들이 이야기한 코끼리의 모습은 틀린 것일까? 그렇지 않아. 장님들은 자기가 직접 경험한 코끼리를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야. 따라서 장님을 '바보'라고 놀려서는 안 돼!


우리는 각자의 경험, 체험에서 생각-이미지를 만들어내잖아. 그런 점에서 생각-이미지는 절대 같을 수 없는 거야. 생각-이미지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밖에 없어. 내 머릿속에 떠오른 컵과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른 컵이 완벽하게 동일하지 않거든. 그럼에도 우리는 컵이라고 말하면 알아먹고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어. 바로 컵이라는 속성의 유사성을 우리는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야. , 컵의 개념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한 거야. 이처럼 우리는 사고를 통해서 차이를 해소하고 동일성을 발견해. 반대로 우리는 사고를 통해서 동일성 속에서 차이를 발견하기도 하거든.



또한 인간은 사고하는 방식이 모두 비슷하단다. 우리는 모두 오감을 사용해서 세상을 이해 해. 그렇기 때문에 정도는 다를지언정 우리의 생각-이미지는 모두 오감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그러니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야. 장님은 눈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을 이용해서 코끼리를 개념화할 수 있단다. 이들은 시각적으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대화하고 소통을 통해서 그들이 경험한 개념들을 공유하면서 코끼리를 구성해낼 수 있을 거야. 그들의 사유 속에 코끼리가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어. 하지만 장님들은 그들만의 진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단다. 그래서 사유는 코끼리를 만들어 내는 방향성이야. 사유는 부분을 통해서 전체를 구성하는 가설, 전략, 목표, 방향성이야. 


사유는 생각-이미지, 사고-개념을 종합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전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야. 장님에게 코끼리는 전체로 다가오지 않아. 하지만 이들이 서로 소통의 과정을 거치면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을지 사유하고 코끼리를 구상해낸다면 그것은 사유라고 할 수 있어.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생각해보자! 장님들만 모여 있는 세계를 가정해보자고! 장님들이 처음 보는 낯선 동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봐. 그들의 경험은 모두 다 틀린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한계가 있잖아. 즉, 코끼리에 대한 부분적인 지식, 정보만을 가지고 있거든. 어떤 장님은 코만, 어떤 장님은 상아만 만져보았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 소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코끼리 전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점차 '방향'을 잡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다리에 대해서 말하고 어떤 사람은 꼬리에 대해서 말하면서 부분들을 모아서 전체 코끼리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을 그릴 수도 있을 거야.



우리들도 마찬가지야.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어 우리는 커가면서 조금씩 세상을 알아 가거든. 처음에는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일 뿐이야. 게임을 예로 들어볼게.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전략을 짜야하고 마우스, 키보드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잖아. 즉, 코끼리의 상아와 꼬리만 알고 있는 상태인 거야. 그러나 조금씩 경험하다 보면 게임의 전반적인 내용과 스토리를 알게 되잖아. 이제 익숙해지면 게임을 즐기게 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게임을 알게 되는 거야. 게임의 전체 그림이 우리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지.


과학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과학이 세상의 진리를 모두 밝혀줄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과학 또한 세상에 대한 부분적 진리, 부분적 인식에 불과하거든. 장님이 자기만의 코끼리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전체 코끼리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우리의 과학 또한 세상에 대한 부분적인 지식을 토대로 우주와 미시세계를 그려나가는 거야.


이 세상은 너무나 넓잖아. 코끼리를 세계라고 생각하고, 장님을 인간이라고 생각해보자!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 인간은 장님과 같은 거야.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은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느껴질 거야. 하지만 우리의 경험은 세계 전체를 절대 구성하지 못해! 따라서 장님을 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욕하는 것과 같은 거야!


예를 들어볼게, 이 세상을 5감이 아니라 10감으로 인식하는 외계인이 있다고 해보자. 이들이 볼 때 우리 인간은 장님보다 더 바보처럼 보일 거야. 이들이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를 거야. 반대로 오감보다 적은 감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동물도 있어. 적외선으로 인식하는 나비, 흑백으로 보는 개, 초음파로 인식하는 박쥐가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를 거야. 그러면 이들이 보는 세계는 틀린 거니?


그래서 더 많은 감각으로 세상을 본다고 해서 더 정확한 세상인 것도 아니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각의 많고 적음, 지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야. 인터넷이 등장하고, 스마트폰이 등장해서 수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똑똑해지니? 우리의 사고력이 향상되니? 사고력은 단언컨대 지식의 문제가 아니야. 사유를 전개하는 방향을 잡지 못할 때, 가설을 세우지 못할 때, 구도를 잡지 못할 때, 관심과 사랑이 없을 때, 사고는 파편화되고, 우리는 누군가가 그려준 구도대로, 방향대로 이해하고 살게 되는 거야. 자유로운 노예의 삶이지. 방향성 없는 잡다한 지식은 우리를 노예로 만든단다.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피에르 쇠라


점묘법으로 그림을 그린 쇠라. 우리 모두는 점을 찍어서 쇠라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점을 찍는 쇠라를 떠올려보아야 해! 쇠라가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 데나 점을 막 찍어서 위의 그림을 만들었을까? 그가 찍은 수많은 점들은 그의 삶과 경험에서 축적된 생각-이미지야. 그는 사고를 통해서 나무, 남자, 우산, 강아지, 모자 등의 개념을 산출해 그가 점을 하나씩 찍을 때마다, 그의 머리 속에는 그림의 구도가 조금씩 바뀔 수도 있어. 그렇지만 한 번도 그림의 구도를 사유하지 않은 적은 없었을 거야. 그는 그림의 방향을 잡으며 하나하나 점을 찍어가며 전체를 완성했을 거야.


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점찍는 법만 가르치고 있어. 어떻게 하면 점을 잘 찍을까! 어떻게 하면 빨간 점, 녹색 점, 파란 점을 잘 찍을까만 가르치고 있거든. 그러니 우리는 이것에 저항해야 해! 지금 이 점이 어디에 쓸모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익히는 지식이 어디에 쓸모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방향'을 잡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단다. 사유를 하는 사람이 없는 거야. 심지어 화려한 이력이 붙은 전문가들도 사유를 하려고 하지 않거든.


앞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서 '왕'은 코끼리 전체를 볼 수 있어.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왕과 같은 사람은 없단다. 물론 신이나 절대자, 전지전능한 어떤 존재를 상상할 수도 있겠지. 즉, 코끼리 전체를 볼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수도 있을 거야. 이 우주 전체를 조망하는 신이 있을 수도 있어.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야. 물론 아주 뛰어난 천재나 영웅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거야. 그들은 평범한 우리들보다 훨씬 뛰어나서 미래를 예측하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서 마치 '신'처럼 우주 전체를 보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어.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거든. 다만 좀 더 많은 경험, 체험을 토대로 자기만의 개념을 산출하고, 이를 바탕을 사유를 했을 뿐, 우리와 별다른 차이 없는 오감을 가진 인간에 불과 해! 천재, 영웅, 인간, 장님의 세계는 어차피 도토리 키 재기란다. 그래서 이들을 대소 관계로 나누면 아래와 같아.


왕, 신, 외계인 >>>>>>>>>>>>> 천재, 영웅 > 인간 > 장님


바로 이 도토리 키만큼의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유야. 사유를 생활화하고, 자신의 관심사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면 우리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사유는 방향성을 탐색하는 거야. 그것은 관심과 사랑, 열정을 먹고 살아. 우리는 철학하기를 통해서 사유할 수 있고, 사유를 통해서 현실을 초월할 수 있단다. 



그래서 '철학하기'는 사유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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