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만드는 자유로운 세계
개가 사람을 물면, 개 주인의 책임이야. 왜냐하면 개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거든. 그러니 개의 책임이 아니라 개를 관리하지 못한 주인의 책임이야. 어린아이가 나쁜 짓을 하면 아이가 아니라 부모에게 책임을 물어. 왜냐하면 아이는 미성숙하다고 보기 때문이야. 형법에서는 만 14세 미만의 아이에게 책임을 묻지 않아. 왜냐하면 아직까지 어리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질 능력이 없다고 보거든.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정신질환이 있거나, 치매에 걸리거나 하면 책임능력이 면제돼. 또한 정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술을 먹거나,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할 특별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도 책임이 면제되거든. 그래서 술을 먹고 폭행을 하거나 나쁜 짓을 저지르면 감형이 되는 이유는 자신의 의지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본능에 따른 행동이기 때문이야.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이 없거나 제한된다고 보는 거야.
인간은 자유가 있기 때문에 책임을 지는 거야. 하지만 우리는 평상시에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하거든. 자유롭다고 하지만 권리보다는 책임만 강조되잖아. 우리의 일상은 각종 규칙, 규범에 얽매여 갑갑하잖아. 부조리를 느끼는 거지. 쓰레기는 함부로 버리면 안 되고, 공부는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지켜야 하고, 양말을 함부로 벗어두면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오래간만에 쉴 때 게임이나 친구를 마나서 수다를 떨려고 하면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잖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촘촘한 규칙과 규범에 얽매여 잠시라도 자유로울 틈이 없잖아. 그러니 자유가 아니라 구속이 우리를 어렵게 한단 말이야. 그래서 평상시에 느끼는 자유는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해.
그런데, 그냥 내 맘대로 하게 좀 냅둬!라고 말할 대, '내 맘'은 뭘까? 주로 동물적 본능이야. 늘어지게 12시간 잠을 자고, 먹고 싶은 만큼 잔뜩 먹고, 하루 종일 게임, 스마트폰 하는 것! 친구와 수다 떨고, 멍 때리는 것. 우리가 말하는 대부분의 자유는 본능의 자유야. 본능이 억압받지 않고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거든. 그것은 '소극적 자유'야. 왜냐하면 나의 생물학적 본능, 자연이 시킨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자유인 것 같지만 실상 그것은 본능에 발현에 불과하거든.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가 아닌 거야.
소극적 자유는 구속이나 억압으로부터 풀려나는 것, 내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면 적극적 자유는 내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행하는 거야. 예를 들어볼게. 만화가가 되겠다는 학생이 있어. 이 학생은 시간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최종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를 수 있게 된 거야. 적극적 자유의 실현이야.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이 있어. 이 학생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획표를 아주 촘촘하게 짜고 계획에 따라 착실하게 공부를 해서 원하는 의대에 합격하게 되었어. 이 학생을 계획표의 노예라고 할 수 있을까? 이 학생에게 계획표는 자신의 꿈을 실현해줄 도구가 되는 거야. 적극적 자유는 되고자 하는 것을 하는 거야. 나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적극적 자유야.
학교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있어.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억지로, 학교 수업시간에 앉아 있고 과제도 해야 한다면 학교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야. 내가 원하지 않은 수업을 하게 된 것이니까 말이야. 반면 어떤 학생은 공부를 통해서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것이 분명해 이 학생에게 학교 수업은 자신의 자유를 실현해줄 도구가 되는 거야. 같은 반에서 수업 듣는 학생이라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어떤 학생에게는 학교 수업이 구속과 억압으로 작용하지만, 어떤 학생에게는 자유의 실현이 될 수 있는 거야. 좀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볼게. 공부를 하고 싶은 데 스스로는 게으름에 빠져 잘하지 못해. 그래서 꼼꼼하게 생활과 시간을 관리해주는 기숙학원에 들어가서 학원이 시키는 데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학생은 학원의 꼼꼼한 생활관리에 구속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는 방법이 되는 거야. 반면 부모가 억지로 학생을 공부시키려고 기숙학원에 넣었다면 이 학생에게 학원은 감옥이 되는 거야.
그래서 소극적 자유는 빈 그릇을 무언가로 채우는 거야. 음식, 잠 등으로 내 욕구를 채우는 거지. 반면에 적극적 자유는 그릇의 크기를 크게 하는 거야. 더 많이 채울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거지. 처음에는 본능의 크기만큼이던 그릇이 점점 더 커져서, 자신의 꿈, 가족의 꿈, 사회, 국가, 인류의 꿈까지 확대될 거야. 적극적 자유는 그 그릇의 크기를 점점 크게 만드는 거야.
동물은 의식이 있지만 그 의식은 '대상'에 종속되어 있어. 동물의 의식은 '대상'이 있을 때만 작동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동물은 자유롭게 다니더라도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야.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식을 통해서 자기를 돌아보고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정할 수 있거든. 본능이라는 자연세계의 규칙에 따라 동물은 살 수밖에 없지만, 인간은 자연의 규칙, 즉 본능을 넘어서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지. 거기에서 바로 인간의 자유가 튀어나오는 거야!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도 자연의 질서를 넘어서는 존재는 없거든. 하지만 인간만이 자연의 규칙, 규범을 넘어서는 자기만의 질서, 규칙을 만들어 낼 수 있어. 자기의식으로부터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거야.
이러한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은 반드시 부조리와 부딪치게 되어 있어. 신, 자연, 사회, 역사, 문화가 만들어 놓은 기존의 질서에 종속될 수밖에 없거든. 본능을 넘어서려는 순간 기존의 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거든. 그럼에도 인간은 그것을 넘어서고 싶어 하거든. 신, 자연, 사회, 역사에게 도전하는 거지. 그것이 바로 자율이야. 자기만의 규칙, 규범을 만들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부조리에 저항하는 인간의 방식은 자기만의 새로운 규율과 규칙을 만드는 거야.
우리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잖아.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서 보듯이 인간의 오감은 세상 모두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분적인 인식에 불과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세계에 대한 자기만의 윤리와 규칙, 규범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거든. 거기에서 인간의 본능을 넘어서는 진정한 자유의 세계가 펼쳐지는 거야. 누구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 신, 자연, 문화, 역사가 만들어 낸 질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질서, 나의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에서 진정한 자유가 있는 거야.
인간이 위대한 것은 자신이 스스로 내세운 질서에 스스로 복종한다는 거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운동해야지! 다이어트를 해서 10kg를 빼야지! 인터넷을 안 해야지!'라고 스스로 규칙을 세우고, 이 규칙을 스스로 지켜나갈 때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거야.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외부의 규칙, 강제, 문화에 의해서 통제받지만 인간만이 유일하게 스스로 규칙을 세우고, 그 규칙에 따라 살아가거든. 그래서 인간은 자율적 존재가 되는 것이고, 자율적 존재로서 인간이 진정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거야.
자율이라는 세계는 인간이 만들어 낸 자유로운 세계가 되는 거야.
규칙과 규범을 타인이 만들어 나에게 일방적으로 강제하면 구속, 억압, 강제가 되지만 내가 옳다고 믿는 규칙, 규범을 내가 만들고 스스로 실천하면서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거야. 세계의 거대함, 신이 만들어 놓은 웅장한 세계에 한 발도 내딛지 못할 것 같은 인간이 내디딘 자유로운 세계의 모습의 본질은 바로 개인의 자율적 선택과 실천에 있는 거지.
남들이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한용운, <복종>
한용운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는 '자유'를 좋아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자유'는 자신의 욕구, 욕망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거든. 한용운은 오로지 당신에게 '복종'하길 원해! 당신은 내가 복종하고 싶은 대상이거든. 여기서 '복종'이 바로 '자율'이야. 내가 복종하고 싶은 것에 복종하는 것! 당신은 국가, 민족, 부처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가 믿는 윤리, 도덕, 규칙, 신념이야. 따라서 다른 사람을 복종하는 것은 자신은 신념을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만은 복종할 수 없는 거지. 이 시는 복종을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 자유에 대한 본질 지적하고 있어. '종교, 제도, 규칙, 규범, 역사, 문화' 등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결국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는 거지. 내가 올바르다고 믿는 것에 복종할 테니, 까불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바로 인간이 위대해지는 순간이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새롭고 무한한 감탄과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 칸트
칸트의 묘비에 적힌 구절이야. 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야. 무한한 세계에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지, 경외의 대상이야. 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는 감탄과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별이 있어.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적극적으로 믿고 실천하는 도덕 법칙이야. 우리 마음속에는 세계를 밝힐 각자의 별이 있는 거야.
이제, 너의 세계를 만들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