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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풍석포제련소 Apr 01. 2021

과거에도 있었다? 세종대왕 허준이 막을 수 있었던 이유

조선을 습격한 역병, K-방역으로 대응하다



222년 전, 조선판 코로나가 퍼지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집 밖을 나설 때 마스크는 필수가 됐고, 어디를 가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합니다. 예전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에게 '어디가 아프냐'라고 물어봤지만, 요즘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게 좋지 않은 시선이 집중되죠.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22년 전, 조선판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을 '역병, 역질, 온역'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는데요. 한 달 만에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장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바로 '천연두'였어요.  

의학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전염병은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합니다. 마스크 대란과 식재료 사재기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의 증거인데요. 의술도 부족하고 마스크도 없었던 조선시대, 우리 조상님들은 전염병에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호랑이만큼 두려웠던 전염병 

조선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선시대 초상화  약 14%에는 아주 특이한 점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바로 초상화에 그려진 인물들의 얼굴에 천연두 흉터 자국이 있다는 거예요.

조선시대에 만연했던 천연두는 전염성과 사망률이 매우 높은 전염병으로, 한때 전 세계 인구 사망 원인의 10%를 차지했던 무시무시한 역병이었습니다. 

호환마마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옛날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두 가지 단어가 만나 탄생한 단어인데요. 호환은 호랑이를, 마마는 천연두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민가에 내려와 사람들을 잡아먹던 호랑이만큼 천연두가 아주 두려운 존재였다는 거죠. 

조선시대에 역병이 돌자 명절인데도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안동 하회 마을의 류의목은 <하와일록(1798)>에서 "천연두로 인해 추석에 제사를 드리지 않게 되었다"라는 기록을 남아 있어요. 

치료제가 없었기 때문에 모임을 금지하고 외지인이 마을을 출입하는 걸 막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었어요. 유교적 성향이 강했던 안동에서조차도 비상시에는 차례를 포기할 만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중요하게 생각한 거죠. 

전쟁이 발생하면서 전염병이 더 심해지기도 했어요. 특히 임진왜란 때 피해가 컸다고 전해지는데요. 조선 수군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퍼졌는데 수군 병력 전체 중에 무려 40%가 전염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왜군과의 교전으로 150명이 사망했을 거라 추정되는데, 그 4배에 달하는 숫자죠. 

수군이 주로 생활하는 배 안은 좁고, 습하고 밀폐되어 있었어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수 없고, 감염되기 좋은 공간이었죠. 그래서 배 안에 이질과 말라리아가 빠르게 번졌고, 대응할 새도 없이 많은 병사들이 죽고 말았던 거예요.

<난중일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43번 등장합니다. 왜군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이순신 장군에게도 전염병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아끼던 부하와 막내아들까지 전염병으로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죠. 본인 역시 12일 동안이나 전염병으로 생사를 오갔어요.


역병으로부터 조선을 구했던

세종대왕과 허준


자, 그렇다면 조상들은 손 놓고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고통받기만 했을까요? 천만의 말씀! 누구보다 전염병 잘 대처해 백성을 구한 분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전염병 대응 정책은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정책과도 비슷한 점이 많아요. 저소득층에겐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고 감염자에겐 조세 감면과 노역 면제를 준 것은 물론, 전염병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에겐 지원금을 보내줬습니다. 현재의 재난지원금과 유사한 개념이죠. 

뿐만 아니라, 전국에 직접 쓴 매뉴얼을 배포했어요. 매일 이른 아침에 세수를 하고, 참기름을 코 안에 바르고 누울 때도 발라라는 내용이었죠. 살짝 미신 같아 보이긴 하지만 참기름이 코에 붙은 세균을 닦아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나름 일리가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궁에 있는 의원들을 독촉해 의학서를 편찬합니다. 손쉽게 침과 뜸을 놓는 방법과 구하기 쉬운 재료를 사용해 약 만드는 법까지 알차게 실려 있었죠. 

조선시대, 의학서하면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허준인데요. 광해군은 허준을 불러 전염병만을 위한 별도의 응급처방 의서를 만들라고 지시했어요. 그 결과, 온역(티푸스성 전염병)을 예방하고 대응하는 의료지침서인 <신찬벽온방>을 편찬하게 됩니다. 지금의 ‘방역지침’같은 개념이죠. 

<신찬벽온방>에는 전염병에 걸린 환자의 옷을 빤 뒤 찌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당시의 소독방법이었습니다. 허준은 당시 백성들이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 관습을 지적하며 '청결한 습관을 갖고 깨끗하게 씻으라'라고 권유했어요. 그리고 주변 환경을 늘 깨끗하게 하고 환기를 자주 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지금이랑 달라진 것이 없죠?

허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동의보감을 완성하기 두 해 전, 두창(천연두) 치료 서인 <언해두창집요>까지 발간합니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작성한 것이 특징이죠.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이 돌았을 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고 공동체의 연대와 보살핌으로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우리 역시 일상이 코로나로 인해서 답답하고 괴롭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지키고 방역수칙을 잘 준수한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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