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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차 한라도서관

뜻밖에 만난 반가운 책, 보리바다.

by 메이의정원

예전에는 제주도에 오면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곳이 미술관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제주살이를 하며 도서관이 계속 눈에 인다.

기적의 도서관, 꿈바당 어린이 도서관, 한라 도서관, 제주 도서관, 탐라 도서관, 별이 내리는 숲 어린이 도서관..


더 많은 곳이 있겠지만 제주시 곳곳을 운전하며 다니며 발견한 곳들이다. 수십 번 제주도를 오가면서도 이렇게나 많은 도서관들이 왜 안보였는지 의아할 뿐이다.


한라 도서관.. 지나가는 길에 몇 번 보았던 곳인데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마음이라 이번에는 들어가기로 하고 빈 공간에 주차를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서가 곳곳에 자리를 잡고 눕거나 앉아서 책을 보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들, 아이들이 읽을 책을 한 보따리 싸서 빌려가는 부모들, 도서관이 사랑방인 것처럼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아이들이 서가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하는 숨바꼭질.. 두 녀석이 깔깔거리며 숨바꼭질을 하는데 그게 왜 재미있는지 다 커버린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둘째가 흥분해서 도서관을 뛰어다니길래 뛰면 위험하다고, 도서관은 뛰는 곳 아니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책 표지만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이라고 생각했는지 열심히 책을 뽑아오며 읽어달라고 한다. 뽑기를 하다 보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멋진 것이 나올 때도 있지만 실망할 때도 있다. 아이들은 책표지만 보고 책을 뽑아왔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으면 실망한 표정으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덮으며 "안 봐, 재미없어"한다.


둘째가 엄마를 독차지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계속 읽어달라고 하니 첫째의 표정이 뾰로통해진다. 규칙을 정했다. 차례대로 한 권씩 읽기로 했다.

아이 둘이 동시에 '보리바다' 두 권을 뽑아온다.

둘째가 애정하는 책이었는데 그 책을 좋아하면서도 계속 찢었다. 두 번이나 새로 샀지만 두 번째 구입했던 보리바다 책도 갈갈이 다 찢어놔서 더는 구입하지 않았다.

두 아이는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보물을 발견한 듯 설레고 흥분된 표정로 '보리바다'를 들고 온다.


보리바다.. 초록빛 가득한 보리가 넘실거리고 분이는 숨바꼭질을 하던 학창 시절을 회상한다. 고래를 타고 과거의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분이.. 아마도 자신의 딸을 언젠가 본 듯한 아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분이는 치매에 걸린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마저 지워지고 사라진 상태..

숨바꼭질을 하던 학창 시절 푸릇푸릇했던 분이는 이제 흰머리에 주름이 가득한,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가 할머니가 되었다는 나의 덧붙이는 말에

둘째는 "엄마는 할머니야?"라고 말을 하며 흰머리를 뽑아주겠다고 한다. 흰머리카락을 찾겠다며 머릿속을 이 잡듯이 뒤집는다. 머리 찾았다고 멀쩡한 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데 제법 아프다.


첫째는 조금 더 고차원적으로 엄마가 왜 할머니가 되었냐고 질문한다. 엄마도 나이가 들었다고.. 너희들이 말을 안 들으면 흰머리가 난다고 했다. 엄마가 나이 들어 언젠가는 너희들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그때 되면 너희가 엄마를 업고 다녀야 된다고 했다.

치매 노인 돌보기.. 나도 감당하지 못할 행동을 아이들에게 말한 것 같다.

그런데 나의 두 녀석은 엄마가 할머니 되면 업고 다닐 거라고 충성 경쟁을 하듯이 대답을 한다. 엄마 흰머리도 다 뽑아줄 거란다. ㅎㅎ 아이들의 말에 그저 웃음이 난다.


사이좋게 두 녀석 한 권씩 보리바다 두권, 엄마, 엄마는 좋다. 엄마의 노래.. 어쩌다 엄마와 관련된 책 몇 권을 빌려서 도서관을 나왔다. 란 하늘과 흰구름이 무더운 날씨에 잠깐이지만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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