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좀 쉬자.
숙소 가까이에 도서관이 있어서 오며 가며 들를 수 있으니 감사하다. 지난번처럼 아이 둘을 풀어놓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같은 학년 친구를 만나서 즐겁게 노는데 둘째는 계속 내 주위만 맴돈다.
책꽂이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꺼내와서 읽어달라고 한다. 언니가 자기랑 안 놀아주고 친구랑만 노니까 기분이 좋지 않았나 보다.
엄마도 잠깐이라도 할 일이 있고 쉼이 필요한데 아이의 칭얼거림에 나만의 시간이 침범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둘째는 어린이집을 안 보내서인지 낯선 상황과 낯선 사람들에 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첫째 때도 겪었던 엄마 껌딱지 시기인 것 같기도 하다.
마냥 엄마 품에 있을 것 같았던 첫째가 벌써 초등학교에 다닌다. 어느새 쑥 자라 엄마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첫째가 친구와 노는 것을 먼발치에서 슬며시 지켜본다. 쪼꼬미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몸이 피곤하고 힘들다고, 손이 많이 가는 둘째 본다고 첫째를 챙기지 못했던 것이 미안하다.
내가 둘째 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첫째가 작아진 옷을 입고 아기처럼 퇴행 행동 하던 모습,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뒷모습이 생각난다. 뜻대로 잘 안된다고 칭얼대고 울고 보채는 아이에게 화를 내던 나의 모습.. 지난날이 생각난다.
사랑만 줘야 했던 시기에 그러지 못했던 나를 돌아본다.
엄마 껌딱지 시절, 첫째는 엄마인 나에게만 애착을 가지고 내가 잠시라도 사라지면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 힘든 와중에 남편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신이 나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아이만큼 나를 사랑하지는 못할 거야. 아이는 나에게 절대적인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주잖아."
첫째는 동생에게 엄마의 자리를 내주고서 섭섭했던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감추고 지내지는 않았을까? 둘째의 빈자리만큼 첫째에게도 더 신경을 써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오랜 시간 기다려왔다.
상담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엄마가 자기를 다시 봐주고 자신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주기를.. 첫째 아이의 마음이 느껴지니 미안함과 회한, 눈물이 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더 늦어지기 전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지나 놓고 보니 엄마 껌딱지 시기는 얼마 안 간다. 이제는 둘째가 손가락 하트를 그리며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제일 좋아요." 하는 말을 한다.
아이의 말에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껌딱지 둘째 때문에 좀 힘들고 피곤해도 이 시기는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시기인 것 같다.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지나 놓고 보니 아이의 시간만큼 나도 성장했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