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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차 김녕해수욕장

아이가 다쳤다.

by 메이의정원

숙소에서 대략 20km에 김녕해수욕장과 붉은 오름이 있다. 그 정도의 거리는 아이 셋 데리고 갈만 하다 싶다.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 고민을 한다.


제주도에서 하루 한두 번은 모기에 물리는 데다 진드기까지 걱정이 되어 숲이나 곶자왈은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지난번 용연 계곡 잠깐 있었을 때도 모기 한 마리가 아이들과 나를 번갈아가며 물었다. 둘째 목덜미에서 피 빨아먹고 있는 것을 잡았는데 거머리 수준이어서 기겁했다. 여름에 자주 제주도를 왔었지만 이 정도로 모기가 많지는 않았는데 당황스러웠다.

둘째는 자신의 팔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기 패치를 보더니 펀치넬로에 나오는 점표라고까지 표현한다.


지난번 조개잡이를 못했던 아쉬움인지 첫째는 바닷가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나마 숙소에서 가깝고 조개잡이가 가능한 김녕해수욕장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5개월 된 조카가 아침부터 푸~푸~거리며 투레질을 시작한다. 조카가 투레질을 하면 꼭 비가 왔다.

지난번 곽지 해수욕장에서 비에 쫄딱 맞았던 사건도 있고 해서 걱정이 되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 설마 비가 오겠어? 했는데 첫째 영어 수업을 하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온다.

일정을 변경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는데 다행히 비는 금방 그쳤다.


김녕해수욕장 가는 길.. 말귀도 못 알아듣는 조카에게 "푸푸 거리면 비가 와. 푸푸 하면 안 돼"라며 장난 삼아 웃으며 주의를 주었다.


운전하고 가는 길.. 삼양 해수욕장과 표선, 성산 가는 방향 표지판이 보인다. 아쉬워도 좀 더 먼 거리는 남편이 오면 이동하기로 했다.

김녕해수욕장이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풍력발전소 터빈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수영하는 사람들, 뜰채를 들고 열심히 무언가를 잡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모래사장 한편에 텐트를 친다. 바람은 불지만 햇볕이 많이 뜨겁다. 해변까지 이동하는 동안 아이들 피부가 빨개진다. 텐트에 앉아 가지고 온 자두, 감자, 요구르트 등 간식을 먹는다. 간식을 다 먹은 아이들은 물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뜨거운 햇볕이 걱정이 되어 선크림과 썬팩트까지 얼굴이며 팔에 듬뿍 바르고 모자를 쓰고 조개 담을 통과 우산까지 챙겨 해변으로 향한다.


현무암 바위가 돌출되어 있다. 돌 틈새에 보말과 소라게, 게가 보인다. 현무암 웅덩이에는 새우와 작은 물고기들도 산다. 둘째는 조개껍질을 주워 선물이라며 나에게 준다.

같이 조개 줍기를 하던 친구가 첫째에게 게를 3마리나 잡아주었다. 둘째에게도 사이좋게 나눠준다. 둘째가 새우를 가리키며 뭐냐고 묻는다. 새우라고 했더니 잡아달라고 한다. 새우가 너무 날쌔다. 뜰채 없이 잡기는 불가능하다.

보말 줍기에 한참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은 물웅덩이에서 신발을 벗고 첨벙첨벙 물놀이를 한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와 커다란 장우산이 부러진다. 무슨 날인 것처럼 샌들 밑창이 뜯어졌다. 아이들에게 텐트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갑자기 둘째가 미끄러져서 현무암 돌에 넘어졌다. 아이 입술에서 피가 나기 시작한다. 갑자기 가슴에 찬바람이 든 듯 등골이 서늘하다. 우는 아이를 안고 텐트로 달려간다. 구강티슈로 지혈을 하는데 피가 멈추지 않는다. 아이가 무릎이 아프다고 한다. 무릎에서도 피가 난다. 옆 텐트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의무실에 가보라고 하셨다. 저 멀리 종합 상황실이 보인다. 우는 둘째를 안고 의무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많이 아파? 괜찮아 괜찮아. 병원 가서 치료받자. 괜찮아." 우는 아이는 나의 토닥임과 걱정스러운 말에 "응"하며 내 목덜미를 꽉 붙잡는다.


상황실에는 구조대원 여러분이 계셨다. 무릎은 소독약과 후시딘을 바르고 메디폼을 붙였다. 아이가 더 울기 시작한다. 입술에도 약을 발랐다. 응급처치가 끝나고 인적사항 등을 적고 아이를 다시 안고 텐트로 돌아왔다.

동생이 물과 아이스크림을 사 오겠다고 하고 나갔다.

다행히 둘째는 울음을 그쳤다.

텐트에 앉아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물을 마시고 나서 짐을 챙긴다.

편의점에서 1L 생수 두병을 사서 아이들 발에 붙은 모래를 씻긴다. 짐을 다 챙기고 해수욕장을 벗어나기 전 바라본 바다는 정말 예쁘고 평화롭다. 아이가 다치지만 않았어도..

해수욕장 근처 약국에서 소독약, 메디폼, 연고, 밴드, 면봉 등 상비약을 구입했다.


얼마나 아플까?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하루 종일 가슴이 시리다.

숙소에 도착한 아이들은 둘러앉아 잡아온 보말과 게를 한참 동안 관찰한다. 빨대로 만져보기도 하고 미역과 조개도 넣어 어항처럼 꾸민다. 보말과 게가 담긴 통에서 짙은 바다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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