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산불 피해 현장 현장 답사기
기후위기는 과연 미래 세대만의 문제일까요? 이미 산불과 홍수, 폭염 등으로 나타나는 현재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최근 강릉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피해 지역을 직접 방문했습니다.
식목일은 영어로 Arbor day라고 불립니다. Arbor란 나무를 뜻하는 말로 라틴어에서 유래가 되었는데요. 영어에서 Arbor는 나무 그늘의 쉼터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나무로 빽빽이 조성된 숲은 답답한 도시 생활에 찌든 사람들에게는 휴식과 재충전의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탄소를 흡수하는 산림은 기후위기 시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식목일이 지난 뒤 일주일도 채 안 지난 4월 11일 강원도 강릉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수많은 산림이 불에 타고 인근의 마을과 사찰마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나무를 심고 아름다운 자연을 조성하기 위한 식목일쯤에 끔찍한 산불로 인해 오히려 산림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무겁게 합니다. 그린피스 직원들은 참혹한 피해 현장을 확인하고 향후 산불이나 홍수와 같은 기후재난 상황에서 국제환경단체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고자 현장을 찾았습니다.
서울 남영역 인근 사무실에서 약 3시간가량 전기차를 운전해 처음 방문한 곳은 화재 발화지점으로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 산림 지역이었습니다. 빽빽한 나무들로 채워진 산속을 들어서는 순간 매캐한 나무 재 냄새가 콧속을 쑤시면서 진동했습니다. 차량 하나가 간신히 통과할 만한 좁은 숲길을 따라 경찰 순찰차들의 모습만 종종 보였습니다. 드물게 보이는 민가에서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복구 작업을 하고 계시는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10분 정도 다시 차량으로 이동해 강릉 저동 일대의 펜션 촌을 방문했습니다. 경찰 출입 통제선으로 현장은 통제되었지만, 현장 경찰관의 허가를 받고 통제선 바깥에서 피해 펜션 촌을 촬영하였습니다. 융단폭격을 받아 폐허가 된 도시처럼 곳곳의 건물들은 무너져 내리거나 불에 타 심하게 훼손된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한여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 울타리를 보니 당시 얼마나 뜨거운 화마가 일대를 휩쓸고 갔는지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강릉 일대 펜션 만 30채 정도가 화재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펜션 인근에 있는 소나무 숲은 피해를 키웠습니다. 나무에서 나오는 송진은 불쏘시개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솔방울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서 큰불로 번지는 주범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기후위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기후변화로 대기와 토양, 산림은 더욱더 건조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강수일수는 줄고 여름 평균 강수량은 늘었습니다. 즉 한반도의 건기(11월~4월)는 더욱 건조한 날씨로 변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기존에 발생하는 산불이 건조한 날씨로 인해 그 위력을 더욱 더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번 산불로 유형문화재인 강릉 방해정의 일부가 소실이 됐고 인근에 있는 고찰인 인월사는 완전히 전소됐습니다. 방해정은 조신시대 후기의 정자로 1976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곳입니다. 인월사는 신라시대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한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월사에서 만난 한 비구니 스님은 농작물의 경우 보상이 가능하지만, 피해를 본 조경수는 보상 자체도 받지 못한다며 안타까운 상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환경단체 직원이라는 소개를 드리자 이렇게 전소된 건물들이 향후에 다시 지어질 때는 태양광과 풍력 등을 활용한 제로에너지 건물로 다시 들어서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조언도 주셨습니다.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은 강릉 아이스 아레나, 사천중학교, 초당초교 등 임시 거처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재민 센터에는 화재로 전 재산을 잃은 이재민을 위로하기 위해 구호품, 세탁차, 밥차, 심리회복 지원 등의 자원봉사 지원 등 수많은 도움의 손길이 모였습니다. 그린피스 직원들은 임시 거처가 있는 실내 체육관 ‘아이스 아레나’를 방문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계시지는 않았습니다. 방문 당시 이미 많은 이재민이 정부에서 마련한 임시 거처로 거처를 옮기셨기 때문입니다. 이동된 임시 거처 중 한 곳에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는 국제구호단체와 세월호 유가족들, 강릉 지역 환경 활동가 그룹이 화마로 심리적 고통을 받았을 이재민들, 특히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심리치료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펜션이나 민가 등에서 복구 작업 등에 더 많은 자원봉사자 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현장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화재로 축구장 면적의 144배에 달하는 산림 103헥타르가 불에 탄 것으로 파악됩니다. 또 재산 피해만 400억 이상에 이르며 사망 1명, 주택 40여 곳, 팬션 28곳 이상, 6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집이 전소된다고 하더라도 재난지원금은 3600만 원 정도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이번 사태에 따른 복구와 지원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또 기후위기가 심화하면서 산불과 홍수 같은 재난이 더 심해질 것인데 과연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우선 재난지원금을 더욱 확충하기 위한 기금 마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는 오염자 유발 원칙에 따라 기후위기에 책임을 지니고 있는 탄소 다배출 산업의 책임이 뒤따라야 합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기후 적응 문제에도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화재에 덜 취약한 수종으로 산림을 조성하고 태풍 등 위협에 노출된 해안가에는 더 이상 원전과 같은 위험한 시설물이 건립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존 시설 역시 재해 대비를 더욱더 철저히 해야겠지요.
앞으로 그린피스는 기후재난으로 피해를 보신 분들을 지원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기획하고자 합니다. 그린피스를 지지하는 시민과 함께 앞으로도 더 많이 고민하고 기후위기의 피해자와 연대하고 지지하는 활동입니다. 그린피스의 활동에 여러분의 꾸준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