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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May 29. 2022

향기로 남은 집

골목을 들어서면 벌써 천리향 뿜어내던 집     

하얀 목련꽃 지던 집.     

어스름 해 질 녘이면 가끔씩 대문 앞 공터에     

약장수 소리 귀 기울이던 그리운 집.     


손톱 끝처럼 하얀 달이     

대추나무 가지 위에 걸려있던 집.     

어느 날, 포도덩굴 걷어내고     

동백꽃 지던 그 자리에 집을 짓고 있을 때     

화안히 들여다보이던 안마당에는     

노란 치자열매로 물들인 꽃지짐을 부치고     

빈 하늘이 내려와 앉던 집.     


이제 그 집은 목련꽃 다 지고     

대문 앞 공터의 실개천에는     

미꾸라지 다 감춰버린 흙이 쌓이고     

눈들이 적막하게 떨어져     

어디론가 떠나버린 뒤 허전하게 남은 집.     


그러나 내 마음에 전설처럼     

그립게 그립게 살아있는 집.   

내 마음이 머물던 집.   

천리향 향내로 남아있는     

그 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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