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듯 집 짓기를 계획하다

- 의미있는 것들에 대해

by 이지현


집의 존재 의미



먼저 집의 무의미함과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들에 대해서 상상해보았다. 우리가 어떤 것들이 부족한 가를 먼저 떠올리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간절히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웃음소리, 소곤대는 말소리,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 금세라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음식이 익어가는 냄새가 창틀을 넘어서 건너오는, 어쩌다 창가에 쳐진 커튼이 걷히면서 사람의 그림자가 드러나는, 그리고 집 앞마당에 한 그루의 나무.

이런 것들이 마치 그물 사이로 빠져나간 것처럼 사라지고 없는 집이라면 우리가 구태여 집 짓기에 도전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위에서 열거한 예들은 매우 일부분일 터이다. 그렇지만 부족한 것들로 인해 집이 메마르고 건조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집의 정의를 나름대로 구축하게 된다.


적어도 집이라면, 적어도 거주하는 공간이라면, 적어도 편안과 행복을 줄 장소라면, 이처럼 적어도, 라는 최소의 낭만적인 형태라도 가지고 집 짓기에 도전해야 한다. 물론 집을 짓는 건축주들은 대부분 꿈에 부풀어 있다. 곧 그 꿈이 매우 비낭만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이렇게 집 짓기의 시작은 바로 스스로 집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집은 인간에게 있어 존재의 근거가 되는 안정감을 선사하는 곳이라고 할 때 집의 근원적인 존재 의미 하나가 결정된다. 집은 우리를 세계와 분리시키는 동시에 우리를 안아주는 세계다.

아직 해가 남아있는 여름 저녁이나, 벌써 캄캄해져 버린 겨울 저녁이나 우리는 동시에 ‘집으로 가야지’, 혹은 '이제 집에 갑시다.’라고 외친다.

말하자면 그렇게 외칠 수 있을 때 이미 행복하거나, 빨리 돌아가고 싶어서 조급해지거나, 안정감의 구축 위에 우리 존재를 세울 수 있다. 그럴 때 집을 지을 사람은 그 모든 것을 담을 공간의 구성을 꿈꾸고 계획한다.




쉴 수 있는 장소



한편 집은 세계와 단절되어 자아가 머무르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골목으로 나가게 되는 세계는 우리의 존재가 그저 많은 어떤 것 속에서 다루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골목을 지나서 문 안으로 들어설 때 우리는 유일하게 ‘나’가 된다.


문득 30년대 건축가이자 모더니스트인 이상의 시 <가정>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 않나.'


가정의 닫힌 문 앞에서 문을 열어보려고 애쓰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본다. 그 문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때 자아는 두려움과 상실을 맛본다.


세계에 함부로 쫓기고 돌아온 우리가 오늘도 잠시 쉴 수 있다면 그것은 집이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안정이고 휴식이고 재충전이다. 다음날 세계에 내던져질 일에 대해서 다시 전략을 세우거나 잠시 빗장을 잠가버리거나 할 유일한 곳이다.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에서는 넘치는 것 때문이 아니라, 부족한 것으로 인해 생존이 결정된다. 집짓기의 원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족한 것을 먼저 채우려고 생각한다면 멋진 집짓기가 될 것이다.


이제 집을 짓는 일은 부족한 것을 떠올려 볼 때 그것을 채울 공간으로 꿈꾸고 계획하면 되는 것이다. 불현듯 바람이 불어오듯이 집을 짓기 시작하면, 결코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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