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색 집에 대한 명상

- 집의 외부와 내부 색은 헤밍웨이를 그리며

by 이지현

행복한 감응의 색, 핑크



집을 지으려고 마음먹은 순간 왜 나는 색채부터 떠올렸을까. 딱히 어떤 색을 하려고 결심했던 것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핑크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 막연한 색채는 집에 적용할 색으로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려운 색이었다.


사회학자 조 파올레티에 의하면 19세기 초만 해도 분홍색은 ‘열정과 용기’를 상징하는 남자아이들의 색으로 선호되었고, ‘더 섬세하고 얌전’하며 ‘믿음과 평온’의 상징인 파랑은 여자아이들을 나타내는 색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20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분홍은 여성을 나타낸다는 관습이 자리 잡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강건하고 명시적으로 보여야 하는 건축에 어떻게 핑크 옷을 입히겠다고 설득할지 고민했다. 사실 건물을 보면서 우리는 창호와 문, 벽의 질감 등으로 그 집의 분위기를 생각해보지만, 무엇보다도 색채는 그 집을 말하는 언어로 보기 쉽다.


핑크색은 사람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부드럽고 다정다감하다. 분홍 일색인 형무소가 재범률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연구결과를 보더라도 핑크는 주택의 색으로 제격이다. 경제적 안정을 ‘핑크 무드’, ‘핑크리본’은 희망, 반 전쟁을 지향하는 ‘코드 핑크’는 행복과 평화를 상징한다. 이처럼 핑크에 대해서 내가 아는 생각을 적절하게 설득할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그러나 왜 내가 살 집을 지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고 먼저 생각해야 했을까. 개성보다는 공동체에, 개인보다는 휩쓸림의 문화에 너무 적응이 되어서 혼자 동떨어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인가. 촛불 문화에 이제 익숙해진 사람들은 혼자 조용히 자신이 응원하는 어떤 대상을 주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함께 해야 안심이 되고, 소외되지 않는다는 안정감으로 위로받는다. 만일에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때는 즉시로, 거의 경원시된다.

그런 바탕 위에서 하물며 집을 핑크로 한다는 것은 어떤 쓸데없는 주목을 끌지도 몰랐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핑크 집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지 찾아야 했는데 도무지 그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을 구매하기 위해 몇 군데 마을을 다니고, 건축을 위해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도 내내 핑크를 설득할 묘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에도 핑크 집은 없었고 핑크를 주장할만한 참고사항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 모텔이나 게스트하우스, 혹은 화장품 쇼핑몰이라면 모를까, 거주하는 주택으로서는 핑크는 점잖은 색이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핑크 집으로 채색해달라고 우긴 들 그런 색을 용납할 건축가를 만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건축도 하나의 예술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건축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색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이 대부분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있어 예술가적인 주장이 강하다고, 읽은 책들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은가.


건축의 색채는 먼저 그 집의 언어며 정체성이다. 집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일지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색채가 나온다고 믿는다. 또한 건축의 물성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건축의 색은 일단 정하면 되물리지도 못하는 것이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내가 정한 핑크는 매우 굳건하면서도 온갖 의문으로 범벅이 된 무지개떡 같은 것이었다.

건축이 색을 입으면 이미 그 집은 말을 하고 있다.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오가는 사람들은 길 위의 주택들을 보면서 아무래도 무언가를 심중에서 느끼고 감응하고 정서적으로 어떤 동질감이나 혹은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주택이 혼자 외딴 산속에 임의로 지어지는 것이 아닌 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붙박이로 영영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건축은 단순히 개인의 거주 차원을 넘어선다. 건축하는 순간부터 하나의 문화를 형성한다. 골목길의 문화, 그 동네의 문화, 그 거리의 문화, 그리고 거주로서의 문화가 된다.



헤밍웨이가 꿈꾼 색


헤밍웨이.jpg 헤밍웨이가 집필했던 쿠바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


구매한 집은 동네의 막다른 골목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몇십 년씩 오래 거주한 사람들이 있었다. 집들은 빌라들과 거주 주택들이 함께 뒤섞여 마치 비 온 후 돋아나는 풀들처럼 어떤 면에서는 싱싱했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질서가 없었다. 도시계획이 생기기 전에 지어진 집들이어서 그냥 정겨운 골목길의 풍경을 드러내면서 공존하고 있었다. 이런 골목길에서 핑크에 대한 내 외경심은 어쩌면 무너질지도 몰랐고, 지탄받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추후 핑크색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 집이 이상하지 않을까, 핑크 집이 들어섬으로써 동네의 이미지를 망치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말했다. 혼자 튀면 어쩌지라고 걱정했다니.


그러나 막상 지은 후에는 만나는 주민들마다 동네가 너무 환해졌다고 모두 진심으로 좋아했다. 심지어 골목은 쓰레기로 넘쳐나서 대책도 없을 정도였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서로 조심하면서 쓰레기 없는 골목, 꽃화분이 놓인 골목, 오래된 계단들을 다시 예쁘게 포장하는 동네로 변해가는 중이다. 동네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어떤 분은 내 손을 잡고, 이런 골목길에 돈을 써서 집을 저렇게 지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송구스럽게 했다. 그걸 보면서 마을은 함께 가꾸어가는 곳이었고, 집을 핑크로 한 것이 정말 잘했다고 계속 생각하는 중이다.


핑크 색채의 설득에 대해서 고민하는 동안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는 바로 이거다, 하는 핑크를 찾았다. 당시 삼성카드에서 매월 보내주던 잡지가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헤밍웨이가 집필을 했다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이 소개되어 있었다.


핑크빛 외관과 헤밍웨이가 콘셉트라니. 딱 바로 내가 찾던 것이었다.

헤밍웨이가 노벨문학상을 탄 『노인과 바다』에는 의지의 인물, 결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산티아고 노인이 등장한다. 아이들과 독서를 하면서 한 번도 빠짐없이 읽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쿠바의 바다, 그리고 헤밍웨이는 쿠바의 핑크빛 호텔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집필했다.

마침내 집의 외부는 핑크로, 내부는 쿠바의 그 깊고 아득할 바다색으로 결정했다.


나는 핑크색과 헤밍웨이를 앞으로 두고두고 주저 없이 우려먹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비록 헤밍웨이가 머문 곳은 호텔이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핑크색의 공간에서 멋진 작품을 썼다는 사실만 환상처럼 어울리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핑크색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주저 없이 헤밍웨이의 핑크색 호텔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잡지에서 사진을 2장 찢어서 집짓기 파일에 첨부했다.


르 꼬르뷔제는 “색채라는 것은 서술적인 것이 아니라 활기차고 상징적인 것이다. 이것이 목적이지 수단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 핑크색의 공간은 이처럼 활기차고 상징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데에 그야말로 흐뭇했다. 헤밍웨이의 사색을 도왔고, 꿈을 꾸게 했다. 그것은 내가 추구하던 바로 그 목적에 맞았다.

머지않아 건축가를 만난 그날, 나는 파일채로 가져가서 핑크색 헤밍웨이 호텔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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