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포에 집을 사다

- 홍대 앞에 희망을 정박하다

by 이지현

집 구입은 고유의 사건



어떻게 그곳에서 살게 되었을까. 이것은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의 전반적인 통찰과 관련된 질문일지 모른다.

마포에서 마지막 둘러볼 장소로 상수역을 정하고 동생과 딸을 미리 답사를 보냈었다. 상수역은 상상마당과 홍대 문화 등으로 인해 과연 거주할 곳이 있을까 하고 다 같이 생각했었는데, 뜻밖에도 두 사람이 다음날 내가 직접 가보는 편이 빠르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처음 가본 동네, 처음 본 집이지만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어쩌면 무모하기까지 한 결정일 수도 있지만, 사람이란 참 미묘한 감정을 지닌 존재여서 그런 결정을 단숨에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집을 사는 일은 그 가족만의 고유의 사건이고 개별적인 가치를 가지는 일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 가본 동네서 그 동네를 둘러보지도 않은 채 집 구매를 결정한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추억 같은 골목집



우선 나온 매물이 딱 2개여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나는 사도를 낀 곳으로 구석진 곳이어서 패스하고, 나머지가 구입한 집이었다. 그동안 청춘들의 전유물로만 안 동네였는데 막상 와보니 주거지로도 쾌적했다. 대로변 뒤로는 오랜 세월을 품은 주택들이 있었다.

다음은 퇴근시간이 거의 막차시간인 내가 바라던 대로 지하철역에서 5분 정도 거리였다. 햇볕도 짱짱한 남향집이었다. 낡은 벽돌 2층 집에 마치 피터팬이 지나다닐 것만 같은 작고 노란 철제 대문을 여니 조롱박이 발꿈치를 들고 막 2층까지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 대문은 너무 예뻐서 이후 시공사에 부탁을 해서 잘 간수하고 있다.

지금도 뒷마당의 담벼락에 기대 두고 이 집의 유일한 흔적으로 바라보는 중이다. 그 대문을 드나들던 사람들과 바람, 햇빛, 그리고 온갖 추억들을 기억하고 있을 대문을 없애고 싶지 않았다.

계단은 6-70년대의 타임머신을 탄 듯 삐꺽거리고 추억처럼 낡았다. 거실과 연결된 앞마당이 한 뼘 있고, 어두운 집과는 대비되어 햇살로 밝았다. 늘어선 화분들은 이런저런 화초들이며 농사 거리로 분주했고, 식물이 잘 사는 집이면 어디든 좋았다. 이 화분들은 집주인이 나더러 키우라고 두고 갔는데 시공 도중에 다 사라지고 없었다. 이사 후는 새로 키운 화분들이 겨울을 지나고도 모두 살아있어 남향집의 훈기를 만끽하는 중이다.


두 달여간 다녀본 마포의 다른 매물로 나온 집들보다 도로가 넓었다. 4미터 도로를 끼고 있어서 시원해 보였다. 이후 시공 시는 현장 분들은 다소 애로사항이 있었던 것으로 알지만, 오래된 주택이 늘어선 동네가 가진 어쩔 수 없는 대부분의 실상일 것이다.


딸이 하는 서교동 가게 계약이 끝날 시일이 촉박해서 계약을 결정했다. 그때만 해도 리모델링을 바로 하면 가게 오픈이 될 줄 알았다. 가격대도 대출을 좀 받으면 어느 정도 될 수 있을 듯했다. 대출 문제는 추후 말해보겠지만 참 중요한 사안이었는데도 너무 무지했었다.


대수선 증축 리모델링 설계로 바뀌면서 가게와 거주문제가 바로 해결되었던 것도 아니었다. 결국 아파트만 분양받거나 구입해 보아서, 단독주택구입에 대해 여러모로 무지했던 소치였다.


오전에 도착한 상수에서 실제로 계약은 오후 5시 반에 이루어졌다. 계약 당사자가 한강에 운동을 하러 갔다는 핑계로 거의 종일을 오지 않았다. 아마 집을 팔려고 하니 착잡하지 않았을까. 막상 매매하자고 나서자 40년 가까이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어떻게 망설이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집을 매도하는 이유도 노인 부부가 간편하게 살 곳을 찾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그 마음을 생각해서 오후 늦게까지 기다렸고 저녁 무렵은 비까지 내렸다.



강이 있는 마을



아마 집을 구입하겠다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매도자가 한강에 매일 운동하러 다닌다는 말을 듣는 순간, 집에서 걸어서 10분이 한강이라면 당연히 계약을 하고 말겠다는 생각이 사실은 가장 컸다. 계약을 하겠다는 말을 할 때만 해도 한강이 가까이 있는지 몰랐다.


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경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면서 여중 여고를 다닐 동안 그 산꼭대기에서 멀리 출렁이는 물을 바라보던 추억이 있던 사람은 아마 이 물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주인을 기다릴 동안 동생과 근방의 부동산에 다른 매물이 혹시 있을까 해서 가보았지만, 매물도 없거니와 우리가 찾는 평당 가격을 듣더니, 부동산에서는 촌티 나고 없어 보이는 아줌마들을 보는 눈으로, 이 동네는 평당 최하가 4000-5000만 원이니 그 아래는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손사래를 치면서 바로 문밖으로 쫓아냈다.

미당 서정주는 <자화상>이란 시에서 삶의 8할은 바람이었다고 하지만, 내가 부동산을 샀던 경우는 늘 8할이 남들의 눈에는 딱 망하기 좋은 느낌으로 사는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필요에 의해서 늘 샀고 살았다. 세 아이가 고등학교를 마치자 강남에 더 있을 필요성이 없어져서 집을 정리하고 아이들의 대학교 근처로 옮기기 시작했다. 두 아이가 2호선을 타면 되어서 이사는 망설임 없이 오히려 간편했다.


이사를 다니는 동안 서울은 빌트인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많이 생겼고, 그런 데서 살다 보니 실내 자재, 부엌 제품들 및 가구들을 사용해보면서 살았고 공간 구성을 바라보는 눈도 생겼다. 이는 나중에 집을 지을 때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강남의 아파트는 사실 네모난 공간만 만들어놔도 매매가 되는 곳이어서 시멘트 벽 외는 없었다. 그리고 단열도 엉망이어서 춥고 층간소음도 심했다. 그런데를 벗어나서 새로 지어진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거의 빌트인 제품으로 살다 보니, 설계 시에 자재를 선택하거나 설계도면 미팅을 할 때 고민하거나 우물쭈물할 것도 없이 우리는 그냥 앉은 자리서 다 결정했다.


주상복합 아파트나 그런대로 고급자재를 사용한 아파트들도 불필요한 것이 많았고, 불편한 것이 더 많았다. 살면서 사용해보지 않은 제품 등도 많았었다. 아파트 상품화에 치중하다 보니 비실용적인 자재들이 더 많았다. 공간의 효율성과 동선 등을 보는 안목도 생겼다. 결국 살아가면서 어느 것 하나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 없는 셈이다.

또한 근 200여 평이 훨씬 넘는 마당이 있는 주말주택도 가져본 적이 있어서 마당에 대한 로망도 없었다. 잔디마당이나 물을 끌어들이거나 정원은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만 멋졌다. 결국 주말에 한 번씩 가다가 결국에는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집이 되었고, 집이란 정말 효율적이고 실질적이며 가장 단순한 집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후 이사를 하고 딸이 뜬금없이 다음에 집을 짓는다면 이보다 더 작은 집을 짓겠다고 한 것은 주택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딱 필요하고 사용할 것들만 설계에 넣어서 현재까지 살아가는데 매우 쾌적하다.



단순한 삶의 필요성



집 계약 시에 당인리 발전소가 바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계약을 했다. 추후에 알게 되면서 집을 계약한 일이 정말 단숨에 이루어진 일이란 것을 아직도 실감한다. 물론 이런 것이 재고 따지는 성격과는 멀어서기도 하지만 만일에 다 알았다면 오히려 계약을 할 수 있었을까. 계산을 해서 사면 그건 부동산의 개념이겠지만 우리는 집을 샀다.

더 나은 매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면 지금 상수에 와서 살 수 있었을까. 아마 아직도 집을 사지 못해 전전하고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설계 미팅 시에 한 번은 팀장이, 나와 딸을 차에 태우고 상수역에서 합정역까지 쭉 당인리 발전소 앞 도로를 구경시켜주었다. 그때까지도 발전소가 있는 줄 모르던 우리가 아마 한심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난 뒤는 오히려 결정은 더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결국 우리에게 집은 그냥 필요에 의해서 샀다는 것이 맞다. 그 필요성만 따지면서 마포를 돌아다녔고, 짧은 2달여 기간을 지내고 집을 샀다. 직관적으로 내가 집을 사기는 했지만 그건 비용과 주거와 상가가 다 같이 합을 이루어야 하는 관계에서 합리화된 것이었다. 각자에게 의미가 있고 절실한 순간에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하게 된다.


김춘수는 시 <꽃>에서 이름을 부르고 바라보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했지만, 집은 이름도 없이 의미부여를 먼저 한 셈이다. 집을 사야 한 계획은 아주 단순하고 어떻게 보면 무식 용감하기도 하지만 그런 저돌성이나 즉흥성이 콜라보가 되지 않으면 사실 집을 구입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너무 계산을 못하기 때문에 나는 늘 부동산을 쉽게 사곤 했다는 것을 지금도 깨닫는다.


당인동에서 40년을 터줏대감처럼 지냈다는 부동산 사장님이 하는 곳에서 도장을 쾅 찍으면서 집을 사는 것은 일단 마무리되었다. (살짝 깎아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 이후 갈 때마다 브랜드 빵집의 빵을 사 갔다)


그런데 계약 후에 곧 알게 되었지만 도장만 찍었다고 계약서를 잘 쓴 것은 아니었다.


keyword
이전 04화집 짓기를 계획한 후 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