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기를 계획한 후 한 일

- 희망만 생각하기

by 이지현


희망의 메시지들


갑자기 집을 사려고 마음먹으면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허둥지둥거렸다. 미리 계획하지 못했던 집 구입이지만, 앞으로 집을 짓게 될 때 알아야 할 것이 무엇 일지부터 알려면 그때는 책을 읽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적어도 집을 짓기까지 두 달의 기간이 있으니 간접경험이라도 열심히 해두면 쓸모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들을 읽으니 집을 짓는 분들은 엄청난 정성을 기울이고 노력들을 했었다. 건축가를 만날 때 이미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서 간 사람도 있고, 집 짓기를 위해서 해외에 다녀본 경험들도 있고, 전국을 다니면서 집 짓기를 둘러보는 사람 등, 집을 가지기 위해 정말 마음 뜨거워지는 경험들이 즐비해서 의기소침해지기까지 했다.


집을 지은 이야기들을 읽으면 집에 대한 경건함과 그 어떤 가치로도 맞교환할 수 없는 가족이 머물 집에 대한 간절한 희망의 메시지들을 발견한다. 집이라는 개념 속에는 이미 혼자가 아니다. 집은 단순히 건물을 일컫기도 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의 의미도 있다.


정보 통신 용어에서조차 우리가 집(zip)이라고 부르는 것은 많은 것이 압축되고 저장된 것들의 집합이다. 물론 다분히 우리말과 영어의 언어유희적인 요소지만, 그래도 유사한 발음을 가진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

책들을 읽으면서 집 짓기가 사실 더 불안했던 것은 사실이다. ‘아는 것이 병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을 생각하면 딱 바로 그때의 나였다. 그래도 집을 짓기 위해 오래 계획했던 사람들의 노하우가 축적된 것들을 한 번에 전수받을 방법은 결국 그분들의 경험밖에 없었다. 그 속에는 가족을 위한 진심과 정직함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위로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집을 지을 꿈조차 꿀 수 있겠는가.



가치지향적 책들이 던진 용기



건축 관련 책을 빌렸다고 다 읽지는 않았다. 몇 장을 읽다가 그냥 반납을 하기도 했고, 어떤 책은 아주 꼼꼼하게 그리고 반복해서 읽었다. 결국 몇 장 읽지도 않고 반납한 책들은 시공을 아주 자세하게 쓴 책이었다. 집을 직접 시공하는 일, 즉 철골을 구하러 뛰어다니거나, 집 지을 자재들을 구입할 일들은 나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전문가를 믿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아무리 그 전문가가 못한다고 한들 나보다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언제나 내 경험칙에서 생긴 이론이다.


국어와 문학 등을 가르친 경험이 적어도 40여 년이 다 되어 가는 나에게, 누군가 내가 아주 잘 아는 것들에 대해 안다고 나서면서 전혀 엉뚱한 주장을 한다면 내가 그를 신뢰할 것인가. 그처럼 전문적인 시공일은 내가 암기까지 하면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은 건축주가 잘 알아야 한다고 공부해야 한다느니 해서 읽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건축과 학생이 아닌 한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이후 설계도면에 규격들이 명시되고 그때 가서 찾아보고 함께 살펴보고 설계 미팅을 해도 충분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것은 봐도 당연히 몰랐다. 그냥 많이 믿었던 게 제일 잘한 일이었다. 그리고 설계만이 아니라 감리, 구청의 허가를 통과하기까지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런 책들을 붙잡고 제일 못하는 숫자들과 씨름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그냥 기본적인 것만 알고, 또 전문가들이 말하면 알아들을 정도의 수준만 지니자고 생각했고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서 또 그 부분은 찾아보고 책을 빌려서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너무 무책임한 집 짓기가 될 테니까.


내가 그때 꼼꼼하게 읽은 책들은 좀 엉뚱할 수도 있지만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이나,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집을 순례하다』와 전작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읽게 되는 『다시 집을 순례하다』와 같은 종류의 책이었다. 건축이 던지는 의미, 가치, 온도, 삶이 함유된 책들이었다. 그리고 이사를 다니는 동안도 끝까지 붙들고 다닌 메종 잡지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런 책들을 읽다 보면 내가 집을 지어야 할 이유가 더 명확해지고 자신감을 주었고 희망으로 부풀었다. 꼭 집을 짓고 말테다란 전의를 불태우는 게 나로서는 더 현명했고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집을 지으면 10년 늙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다. 바로 그건 전문적인 책 보다 희망을 주는 책들, 살고 싶은 집을 짓겠다는 가치지향적 책들 때문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원래 있던 책이었고. 아이들을 끌고 이사를 다니는 동안 대학 도서관에 기증한 책에 휩쓸려간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을 두지 못한 게 제일 애석했다. 결국은 이런 책들이 집을 짓는데 많은 가치를 제공했다. 읽은 책 중에서 이지성, 차유람 부부의 『부부의 집짓기』가 아직도 마음속에 울컥 남아있다. 집 짓기를 실패하지 않는 법을 썼다는 편이 더 맞는, 매우 솔직하고 정직하게 느껴지는 책이어서 군데군데 도움이 되었다.


결국 시공의 세밀함은 건축주의 관할은 아니었지만, 설계 과정에서 아주 많은 부분이 충분히 함께 협의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리고 추후 적게 되겠지만, 읽은 책들에서 몇 가지는 잘 배워서 집을 짓고 설계할 때 적용이 되었다. 또한 신방수 세무사가 쓴 세무 관련 책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건축은 고유의 사건



인간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이미지들이 확립될 때 집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 이미지들이 실은 각 개인마다 매우 다양하고 매우 개별적인 것이어서 누가 어떻게 집을 지었더라는 것은 시쳇말로 카더라 통신에 속하는 일이다.

집 짓기는 그 가족만의 고유의 사건이고 완전히 개별적인 것이라는 것을 집을 다 지은 후에 더욱더 깨달았다. 왜냐하면 집은 가족의 기록물이고 집적체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책을 읽든지 어떤 경험을 하든지 간에 그 터와 그 자리에 알맞은 유연성을 가질 때 행복하고 따뜻하며 살기 좋은 집을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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