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에 보관된 건축물 현황도
어쨌거나 집은 매매계약서를 썼다.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무엇을 해야 요즘 말로 잘했다고 할지 잠시 암담했다. 그동안 읽은 책들을 보면 집을 매입하기 전에 사람들은 많은 준비들을 했던데 나는 이제부터 쓰나미처럼 해야 할 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집을 구입할 때부터 쓴 일기장에만 모든 것을 기록하고 단권화시키기로 결심했다. 수험공부를 하는 셈이다. 단권화. 압축. 그러지 않으면 정신이 아마 동서남북을 헤맬 것 같았다.
집을 매입하기로 계약한 후에 곧 지자체 구청에 가서 매매한 집이 어디까지 수리가 가능한지 알아보러 딸과 동생을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건축물 현황도가 구청에 존재하리라는 것은 까마득히 몰랐다. 구입한 집은 70년대에 지어진 집이라서 주인도 도면 같은 것은 당연히 없다고 했었다. 부동산에 말했을 때 다들 그런 게 어떻게 있겠냐고 웃었다.
그런데 구청에는 증축에 대해서 문의하자 바로 도면을 확인시켜주었고, 이 도면이 결국은 이후 설계와 아주 많은 상관관계가 있게 된다. 오래되면 다들 잊거나 그냥 습관적으로 살아가게 마련인 모양이다. 아마 짐작으로는 집이 처음 건축된 후에 다시 2층을 증축했다고 하는데, 이때 도면이 그려진 듯했다.
건축물 현황도는 도면을 그린 건축사무소도 표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매도자는 2층을 증축한 설계사무소를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이미 사라져 버렸다고 분명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당연히 도면은 없는 것으로 알았다.
집을 구입할 때는 사실 눈에 보이는 부분만으로 구입하기 때문에 그 집 전체를 다 알 수 없다. 아파트라면 평면도가 있어서 한눈에 볼 수 있고, 그 구조가 너무도 뻔하지만, 단독주택은 구입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그 내면을 잘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건축물 현황도를 보면 구매한 집이 그대로인지, 처음과 달리 어디 증축되거나 멸실된 곳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건축물 현황도에는 건물 배치도와 평면도가 있었다. 그런데 구입한 집과 아주 많이 달랐다. 매매한 집에서는 본 적이 없는 지하층이 평면도에는 떡하니 있었다.
이 지하 창고 부분이 추후 집을 대수선 증축할 때 그 평수만큼 3층으로 올릴 수 있었던 여유분이 되었다.
도면이 집과 다르다니
설계를 하면서 지하실을 둘 것인가 잠시 고민하면서 설계사무소에 창고로 사용하고 싶어서 지하실을 살려달라고 했지만 공간이 너무 협소하고, 집 짓기를 경험한 분들이 거의 지하실을 비추천하길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칫 곰팡이와 습기의 온상이 되거나 빗물이 스며들면 안 될 것 같아서 지하실을 없애고 설계가 진행되었다.
건축물 현황도를 설계사무소에서도 열람해보겠지만 집을 구입하고 매도자가 기억을 못 하더라도 즉시 지자체에 가서 열람해보는 것도 리모델링 시에는 도움이 많이 된다. 물론 이 도면은 집주인이 알고 있는 것이라면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매매 시에 떼어주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90년대 이전 집은 모두들 도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70년대 초에 지어진 집인데도 남아있었고, 그것은 중간에 집을 증축한 경우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현황도가 없었더라면 실측으로 리모델링을 할 수 있었겠지만, 엄연히 도면이 나타난 바람에 오히려 꼼짝없이 도면대로 해야 했다. 그래서 어느 편이 나은지 지금도 가늠할 수는 없다.
건축물 현황도는 집의 도면이 상세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아무나 발급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매계약서에 나온 공동 등기자가 구청에 가는 바람에 바로 확인 가능했다.
또 세움터에서도 발급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는 소유주 본인이 발급이 쉽지, 다소 까다롭게 느껴지므로 구비서류들을 가지고 가서 동사무소나 지자체 구청에서 발급받는 것이 오히려 빠를 수 있다.
도면과 리모델링 설계의 거리
신축일 때는 그냥 집을 싹 허물어버리니까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리모델링은 이 도면을 바탕으로 그 외벽선이 넘지 말아야 했다.
이후에 설계를 건축사무소서 열심히, 그리고 멋지게 했지만 지자체 담당자는 구청에 보관된 도면과 바로 대조해보고 '이거 리모델링이 아니잖아요'라고 하면서 일언지하에 처음 설계는 반려되었다. 리모델링은 도면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게 리모델링의 개념이었는데, 결국 우리는 대수선 증축으로 가면서 다시 완전히 설계 변경을 했다. 그 바람에 시공사 선정까지 한 달이 더 지연되기도 했다.
리모델링의 개념은 매우 완고하고 엄격했다. 설계를 한 번도 하기가 쉽지 않은 데 다시 설계를 해서 모두 다 힘들었고 지자체는 어떤 경우에도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으므로 지자체에 보관된 건축물 현황도가 매우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설계는 이후 3회나 변경을 하게 되었고, 그분들이 너무 애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