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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닥 Sep 06. 2021

그 동네 집값이 더 많이 올랐다

‘어디서 살 것인가' 안도고양이님께서 주제를 올리셨다.

4명이서 소박하게 꾸려가는 '에세이 쓰기 동아리 <우산>'은 매주 번갈아가며 주제를 내는데, 이번 주 안도고양이님께서 내신 주제는 최근 읽으셨다는 책 [어디서 살 것인가](유현준 지음)의 제목이었다. 어디서 살 것인가…. 공교롭게도 이 주제는 4년간 나를 지킬 앤 하이드로 만든 그 주제이기도 했다. 어디서 살 것인가, 어디서 살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혼하고 총 3번 이사를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네 번째다.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다 4년 전 이 집을 구입했다. 전셋집을 구할 때의 첫째 요건은 직장과 얼마나 가까운 가였다. 아니다. 첫째 요건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과 맞아떨어지냐였다. 둘째가 직장과 가까운 가였다. 전세 살며 정말 어이없는 이웃을 만나고 층간소음을 경험해도 솔직히 대수롭지 않았다. 이사를 가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집을 구입하고자 생각했을 때 고민이 되었다. ‘어디서 살 것인가’ 더 이상 이사할 필요 없는 완전한 내 집이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곳, 최대한 편리하고 안락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산책로가 있어야 하고 재래시장이 가까웠으면 좋겠고 대형마트와 지하철이 도보 이동으로 가능 한 곳, 그리고 도서관이 근처였으면 좋겠다. 이런 조건을 놓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내가 선택한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다.


아파트 정문 바로 앞에 국가지정 하천이 있다. 슬렁슬렁 산책하다가 하천을 바라보며 운동기구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날씨 좋은 날 자전거로 30분만 달리면 한강도 보인다. 후문 2분 거리에는 360미터 길이의 재래시장이 있다. 반찬가게, 슈퍼마켓, 채소가게, 과일가게, 생선가게, 빵집, 통닭집… 없는 게 없다. 퇴근길 시장을 관통하며 과일이랑 반찬거리를 가격 비교하며 사 온다. 걸어서 12분 거리에 지하철이 있고 대형마트가 붙어있다. 역 근처에 극장과 구립 스포츠센터, 수영장도 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대형 도서관도 있다. 도서관 바로 뒤가 등산로 입구라 주말에 책 빌리고 산 정상까지 1시간 코스로 걸으며 사계절을 만끽한다. 4년 동안 살면서 발견한 유일한 단점은 하천이 붙어 있어 여름에 모기가 많다는 것이었지만 모기장을 치고 자면 해결될 단점이었다. 어찌 되었든 단점이 하나밖에 없는 이 집에 살면서도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 것은 4년 전 남편이 사고자 했던 아파트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3억 가까이 오른 것이었다. 4년 전엔 같은 가격이었다.


내가 이 집을 사자고 고집부리지 않고 남편이 원한 집을 샀으면 앉은자리에서 3억을 벌었을 것이다. 물론 팔아야 돈이지만, 깔고 앉은 돈도 돈은 돈이잖은가. 도대체 나는 남편이 선택한 아파트를 왜 반대한 걸까? 언덕 위면 어떻고, 재래시장이 없으면 어떠냐. 버스 타고 지하철까지 오면 또 어떠냔 말이다. 3억이나 올랐잖은가! 서울에 위치한 아파트는 다 올랐다. 나는 경기도에 있는 집을 선택했다. 재래시장의 편리함도, 시원한 밤바람의 하천 산책길도, 산 정상을 찍고 텀블러에 몰래 숨겨간 막걸리를 둘이서 나눠 마시고 집까지 걸어왔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던 4년간의 기억도 3억에 미치지 못해 나는 늘 남편에게 미안했다. 정작 남편은 이 집에 살면서 퇴근길에 매일 시장을 통과하다 보니 제철 과일과 제철 채소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며 좋아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디서 살 것인가.

4년 동안 나를 괴롭히던 이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집값이 너무 올랐다는 뉴스는 이미 내 관심 밖이 되었다. 내 집은 왜 남들 집만큼 오르지 않는가만 보였다. 사고자 했던 집들 중에 지금 이 집이 제일 안 올랐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불행했다. 3번의 이사를 하고 월세와 전세를 전전할 때의 마음 같은 건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다. 집값이 오를 동네가 아닌 최대한 살기 편한 동네를 알아보던 4년 전의 나의 마음도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다. 누릴 것 다 누리는 지금 삶의 행복 같은 건 없고 누리지 못한 불로소득만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어디서 살 것인가. 나는 어디서 살고 싶었던 것인가. 알고 보니 팔아야 돈이 되는 ‘부동산’ 위에 살고 싶었던 것일까? 3억이 오른 아파트를 샀으면 만족했을까? 10억이 오른 강남은 죽었다 깨도 살 수 없는 형편이었던 것을 불행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4년 전의 나는 안락한 삶을 찾던 순수한 지킬이었다. 하지만 지금 욕망의 민낯을 드러내는 하이드로 수시로 변신하고 있다. 한번 튀어나온 하이드는 쉽사리 사라지려 하지 않아 아무래도 평화롭던 예전의 지킬 박사로 돌아가긴 틀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뮤지컬을 보면 죽어야 끝나던데... 나의 끝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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