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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미래가 보이지 않던 그 시절 내가 기댄 한 문장

눈부셔서 보이지 않던 미래를 지나며

by 정린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나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싶었다.
모두가 취업을 향해 달릴 때, 나는 새로운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빨리 취업해 집안을 도와야 했고, 또 누군가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등록금이 아깝다는 이유로 그 길을 택하곤 했다.
그 시절엔 그런 선택이, 대다수의,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길로 여겨졌다.

하지만, 남들이 걷는 길은 마치 잘 꾸며진 워터파크의 유수풀 같았다.
튜브 하나 끼고 몸을 맡기면,

물살에 실려 적당히 물도 먹고,

적당히 흘러가다 보면 어딘가 안전한 기슭에 닿게 되는.
인생의 하한선을 보장해 주는 듯한 안심 공식 같았다.

그런데 나는 왜, 그 길을 따르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그런 나를 당당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별 차이도 없을 텐데 괜히 부모 고생시킨다"며 한심하게 여겼을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자신감도 무모함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대학을 나와 흔들리듯 살아갈 미래가 너무 불안했기에, 뭔가 확실한 ‘아이템’을 갖추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본능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지부진한 실패의 탑을 쌓는 동안,

친구들은 돈을 모으고 여가를 즐기고,

인도 같은 먼 나라로 여행도 떠났다.
나는 점점 위축됐다.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이는 친구들을 볼수록

내 곁을 둘러싼 안개는 더 무겁고 짙어졌다.
휴대폰을 없애고,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그게 당장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 같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친구들도 저마다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친구들이 돈을 벌기에 자유로워졌고, 경제적 여유가 생겨 여행도 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그 여행을 위해 세 명 모두가 휴직하거나 사직을 택했다.


첫 직장, 첫 사회생활의 고단함이 희망보다 커졌기에, 그들도 떠났던 게 아닐까.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자 했던 선택 아니었을까.

나는 나대로, 불확실한 미래가 너무 불안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그 무렵, 인터넷인지 잡지인지도 모를 어딘가에서 이 문장을 마주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은
눈부시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앞날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너무 눈부신 미래이기 때문이니 절망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 말 하나가 희망 같았고, 나의 초라함을 덜어주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그 말을 믿은 영향이었을까.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 공부를 마치고,

원하는 회사에 취직도 했다.


공부를 마치던 전날은 선명한 꿈도 꾸었다.
엄마와 아이가 어두운 관처럼 긴 터널을 지나 전쟁터에서 도망치고, 장면이 전환되자 ‘나’라고 느껴지는 여자가 화면에 등장했다.
그녀는 황금빛 연회장에서 황금빛 옷을 입고 웃고 있었다.
‘아, 내가 꿈꾸던 눈부신 미래가 오는 것인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나는 눈부신가?
아니, 전혀 아니다.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중 가려쓰다


나는 어느새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기성세대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기득권으로 보이기도 한다.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원금 삼아 직장에 묻은 결과, 연봉도 오르고 직급도 올랐다.
하지만 서울 수도권의 집값은 몇 곱절이 되었고,
가정이든 회사든 사람들을 챙기고 책임져야만 내 삶이 유지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오래된 연차만큼 보이는 적, 보이지 않는 적도 늘어갔다.

미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공부만 하던 시절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답도 없고,

애써 외면하고 싶은 문제들까지 신경 써야 하는 지금.
이 글에 다 담지 못할 수많은 굴곡과 파도가 넘실거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가보는 수밖에.

언젠가는 정말 눈부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삶이 찬란해지기 위해

꼭 금메달을 따야 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들도 결국 부상에 시달리고,

은퇴 후 틀어진 몸을 안고 살아가지 않는가.
젊은 날의 추억을 포기하며 공들여 쏟아낸 시간은

결코 허무하지 않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이 조용한 공간에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어쩌면, 이 역시 그토록 바라던 ‘눈부신 미래’의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체념일지 모를 마음을,

그 시절처럼 희망이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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