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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다리 안마를 하면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쉼'의 연습

by 정린

원 제목은 "다리 안마를 하면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그릭요거트를 먹고, 멀티태스킹의 장단점을 찾아보는 건 어떤 것 같아?"인데, 길어서 잘랐음을 글에 앞서 전합니다.



다리 안마기를 틀어놓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그릭요거트를 먹고, 멀티태스킹의 장단점을 검색한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하루는 수많은 자극과 반응으로 채워진다.

매일 다르게 펼쳐지는 상황, 처리방법을 찾으려는 생각들, 몸이 느끼는 감각, 그 결과가 조합된 크고 작은 선택들로 하루가 채워진다.


어릴 적엔 ‘시간관리’라는 말의 무게를 잘 몰랐다. 그저 공부시간 안배 정도.

결국엔 벼락치기가 가장 효율적인 시간관리라는 자기 위안 속에 시험을 치르며 살긴 했다.

대학생이 되자 하루에 많아야 세 과목.

시험 전날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 차라리 편했다.

젊었고, 체력도 좋았다. 조별과제 때문에 이틀 밤을 꼬박 새기도 했으니.


하지만, 늘 바람처럼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책상에 팔을 포개고 엎드려, 도서관 열람실에서 7시간을 통째로 자기도 했다.

나이 든 지금은 그만큼 깊은 잠을 1년에 몇 번이나 잘까.ㅠㅠ


직장생활이 시작되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업무 내용, 프로세스, 협업 부서, 사람마다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식…

하나둘 자료가 쌓여 책상 위는 금세 산처럼 변했다.

그래도 그때 나는 말하곤 했다.

“책상은 나의 우주야. 나만 아는 질서가 있어.”

돌이켜보면 점성술사 같은 말이었다.

사실은 ‘나는 일머리가 없어 처리하지 못한 자료를 쌓아두는 저장강박증'이라는 시각적 고백이었을 뿐.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나는 어느새 꽤나 J가 됐다.

후배들에게는 타이밍과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내가 시간관리를 일찍 깨우치고 연습했더라면, 그 많은 야근을 줄이고 더 많은 칼퇴를 했을 것이란 경험에서 나온 회한과 반성이다.

나만의 자유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적동기가 일은 J방식으로 하게 만들었다.


이젠 일의 프로세스를 쪼개고, 틈틈이 다른 일들을 끼워 넣는 게 습관이 되었다.


장거리 출장에서 돌아와 부은 다리를 안마기에 넣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그릭요거트를 떠먹는 나를 발견했다. 동시에 지피티에게 물었다.

"멀티태스킹의 장단점이 뭐야, 다리 안마기를 사용하면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그릭요거트를 먹고, 멀티태스킹의 장단점을 찾아보는 건 어떤 것 같아?"


지피티는 친절하게 답했다.


“검색이나 글쓰기 같은 집중 활동은 드라이기 종료 후 할 것.

안마기+요거트 조합은 휴식용 멀티태스킹으로 굿!

드라이기+요거트는 조심! 흘릴 수 있다.”


세심했다.


그리고 이렇게도 덧붙였다.

“물리적 활동은 병행되지만, 인지적 활동은 분산된다. 이 조합은 멀티태스킹의 한계를 보여준다.”


곱씹어보니, 정말 그렇다.

안마기도, 요거트도 결국 ‘쉼’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이 되어 있었다.

호기심을 못 이겨 GPT를 켜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인지적 피로 대신 진짜 쉼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후배가 모니터에 붙여놓았던 말.

오늘은 그 말을 나도 새겨야겠다.

쉴 때는 호기심도 쉬자. 그저 하나씩. 천천히.




#멀티태스킹 #시간관리 #쉼의기술 #직장인의하루 #하나하나차근차근 #브런치북 #취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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