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16. 국사곡~철와곡
훈풍이 분다. 미세먼지 뿌옇지만 봄날 같다. 새들의 날갯짓도 가볍고 분주하다. 날개를 활짝 편 오색딱따구리가 먼 데서 날아와 가까운 은행나무에 내려앉는다. 늘 나무 쪼는 모습만 보다가, 새롭다. 서출지에선 흰뺨검둥오리 네 마리가 마른 연잎 줄기 사이로 부드럽게 물살을 가르다가 갑자기 날아오른다. 배롱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연못을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린다. 물을 보고 있는데 하늘을 나는 새가 보인다. 마치 새가 물속을 나는 것 같다. 생생하여 꿈을 꾸는 것 같다.
차르르르 부챗살 펼치는 소리를 내며 내려앉는 여섯 마리 오리들. 더는 경계할 마음이 없는지 내 쪽으로 스르르 다가온다. 노란 부리 끝이 햇살처럼 수면에 부서진다. 마른 풀이 섬을 이룬 곳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일어난다. 백할미새 두 마리가 연줄기 끝에 내려앉았다가 살포시 수면에 내려앉더니 목을 축이고는 다시 사뿐히 연줄기 위에 오른다. 이토록 사뿐한 몸짓이라니, 수면에 내리는 가뿐함이라니! 감동에 젖어 떠나는 두 마리 새를 눈으로 쫓는데 처음부터 있던 왜가리가 여전한 자세로 가만히 서 있는 게 보인다. 내처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저 부동은 사냥이 목적이 아니라 쉼인가 한다. 따뜻한 겨울 속 봄날을 즐기고 있는 게지.
이제는 떠나야지 했는데 나도 왜가리처럼 부동이 된다. 은행나무 위에 있는 새들 때문이다. 높아 무슨 새 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또로로롱 울음소리가 방울새다. 가지를 옮겨 다니는 새들의 날갯짓 아래로 연두와 노랑 빛가루가 쏟아진다.
키작은 나무엔 참새들이 가득한데 웬일로 날아오르지 않는다(새들, 드디어 나를 경계하지 않는가!). 참새는 음나무와 탱자나무 빽빽한 가시에 찔리지도 않고 그 속을 잘도 드나든다. 참새 딱새 할 것 없이 겨울이라 몸은 동그란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었는데 말이다. 아우, 몽실몽실하여 아기 볼 꼬집듯 꼬집어 주고 싶다.
국사골로 접어든다. 나목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낸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날씬하고 매끄러운 수피가 마치 하늘로 오르는 용틀임 같다.
숲에서도 새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오늘은 유달리 딱따구리가 많다. 한 곳에서 이렇게 많은 딱따구리를 보기는 처음이다. 오색딱따구리 쇠딱따구리 청딱따구리 종류도 다양하다. 이곳은 봄에 꾀꼬리 날던 곳이었다. 한 나무에 오딱이 세 마리나 앉아 있다. 이런 풍경도 나는 처음이다. 저희끼리 싸움이 났는지 한동안 소란스럽더니 금방 또 화해한 모양이다. 빡빡 울음소리는 잦아들고 탁탁 나무 쪼는 소리 고요하다. 딱따구리 있는 곳에서는 나무껍질이 나풀나풀 떨어진다. 그런데 오늘 쇠딱따구리는 개옻나무 열매에 더 자주 매달려 있다. 딱따구리가 나무 열매를 먹는 것도 처음 보았다. 신기하여 사진에 담았더니 멀어 그냥 까만 뭉치처럼 나왔다. 미안하구나, 쇠딱아.
여느 때처럼 곤줄박이 딱새 박새들도 함께 걸었다. 그들 주려고 견과를 가져왔는데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바위 위에 조금 올려두었다. 찾아와 먹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그건 인내와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 다음으로. 가까이에 박새가 있길래 손에 땅콩을 올려 두고 유혹하지만 역시나 본 척도 하지 않는다. 언젠가 만만한 곤줄박이나 한 마리 꼬셔 볼 테다.
소나무를 많이도 베어낸 뒤라 휑한 숲이 낯설기까지 하다. 멀리 보이는 숲은 안개에 미세먼지가 묻었는지 흰 벽지에 때 낀 것 같은 안개가 퍼져있다. 날이 따뜻하여 어치 울음소리 들리는 부석 바위 그늘에 앉아 글도 끄적이고 시집도 들추다가 팔각정 터를 지나 철와곡으로 내려간다.
계곡의 얼음은 질척하게 녹고 있고, 이 길의 새들도 봄날 같은 따스함을 즐기고 있다. 이곳에도 등에 검은 줄 흰 줄 선명한 쇠딱이 많다. 그런데, 그런데, 내 가까이로 날아온 새가 처음 보는 새다. 와, 와, 유리딱새 암컷이다. 우와, 등은 차분한 갈색 꼬리깃은 푸른색인 것이 유리딱새 암컷이 틀림없다. 귀한 유리딱새를 만나다니, 계 탔다! 흥분은 했어도 한껏 조심했는데 새는 금세 휘리릭 저 아래로 날아간다.
하여도 며칠 또 행복하겠구나, 아니지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행복할 것이다. 공간과 시간, 모든 순간의 딱 맞춤이 필요한 이러한 인연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신기할 뿐이다. 작고 가냘픈 새가 먼 길을 날아왔다. 또 먼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 사이 잠깐 나와 마주쳤고 덕분에 나는 뽀글뽀글 기쁨 충만한 인간이 되었다. 이 숲이 철새인 유리딱새에게도 오늘처럼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나만큼이나 행복하기를, 그래서 또 찾아오기를. 나머지 길에선 걸음마다 소망을 담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