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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Writes Feb 05. 2020

화요일, 호주 할머니들과 바느질

호주 시골에서 3년

  호주 시골 마을들은 각각 마을 이름을 딴 쇼를 매년 개최한다. 시드니쇼, 캔버라쇼, 베가쇼... 우리 마을도 매년 3월 말경에 쇼가 열린다. 마침 이 곳에서 아이린 할머니를 만났다. 오랜 시간과 정성과 비용을 들여 만든 퀼트 옆에서 신이 나서 내게 설명하시는 할머니에게

 '나도 집에 미싱이 하나 있어요, 너무 이쁜 미싱이 횡재에 가까운 가격으로 파는데, 안사면 바보 같아서 사버렸죠. 근데 왜 나는 계속 실이 엉키고 바늘이 부러질까요... 벌써 일 년의 워런티도 끝나버렸는데... 도대체 그 미싱이 문제인지 내가 문제인지 모르겠네요...'라고 했더니 다음 화요일에 자기를 따라가자고 하셨다. 
 '너를 도와줄 사람들이 있지'.
 
  벌써 그렇게 일 년이 넘는 화요일을 할머니들과 보냈다. 실은 모아 감아 오른쪽 뒤로 보내 잡고 천의 끝을 손끝으로 살짝 잡고 박으라던 가, 천을 고정하는 시침바늘은 뾰족한 부분이 기계 쪽으로 향하면 바느질을 하면서 뽑아내기가 수월하다던가... 노하우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사소한 노하우를 전수받자 신기하게도 보빈 하나의 실을 다 쓸 때까지 실이 엉키지도, 바늘이 부러지지도 않았다.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내며 형태를 갖춰가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 한주에 하나씩 반바지, 천 가방, 쿠션을 완성했다. 네 번째 주에는 옷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더니,

 '한번 봐... 요즘 스타일은 아니더라도  패션은 돌고 돈다고' 하시면서 집에 고이 모아둔 패턴들을 잔뜩 가지고 오셨다.

 '네가 안 쓰면  불쏘시개로 쓰려고 가지고 왔어. 한 사십 년 됐나? 이젠 정리할 때도 됐지'

 당시 사용한 종이가 그랬는지 세월에 바랬는지 누런 바탕에 화려한 스타일의 패턴들. 나는 살아 보지도 못한 시대와 공간의 패션이라 너무 신기하고 이뻐서 다 가지고 오고 싶었지만 욕심부리는 것 같이 보일까 싶어 심플한 스타일에 만들기 쉬워 보이는 몇 가지만 챙겨 왔다.

 '버리지 말고 여기 놔두면 어때요? 이제 돈 주고도 못 사는데...' 
 '우린 그거 졸업한 지 오래됐어, 이젠 안 해. 만들어도 들어가지도 않아' 

30~40십년은 족히 된 패턴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하나둘씩 작은 마을 홀에 모인다. 차 한잔씩 하면서 서로의 일주일을 물어보는 것으로 일과는 시작된다. 뜨거운 물에 홍차를 우려낸 후 데우지 않은 우유를 주르륵 부어 만든 밀크티에 쿠키를 콕 찍어 먹는 나를 보시며,

 '이제 한국 돌아 가면, 호주에서 못된 것 배워왔다고 하겠네!' 하시며 까르륵 웃으신다. 


 테이블 세 개를 이어 붙인 커다란 테이블 위에 퀼트 조각들을 이리저리 옮겨 가며 최상의 조합을 찾는다. 알록달록 천 조각들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들이 모여서 의논하는 모습이 이뻐 보여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어본다. '찍는 게 뭐가 문제겠어. 늙은이들 사진 찍는다고 놀래서 사진기 안 부서지려나 모르겠네.' 하시며 또 다 같이 까르륵 웃으신다. 
  각자 자신의 퀼트와 패턴으로 돌아가 작업을 하면서도 입은 쉬지 않고, 웃음은 끊이지 않는다. 벌써 25~30여 년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모여 바느질을 함께 해 오신 할머니들이다. 지난주에 있었던 결혼식 이야기. 최근에 받은 수술 이야기. 손자들 이야기를 하며 자신들이 학생이었던 60여 년 전으로 순식간에 넘어간다. 부모님들이 대부분 농부였던 할머니 학교 학생들이 어느 하루 전원 지각을 했단다.

 '나는 그날 소 젖을 짠다고 늦었는데 글쎄 선생님이 아이들이 자신을 놀리려고 미리 작당을 해서 단체로 지각을 했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오전 내내 운동장에 서 있어야 했지' 그건 정말 우연이었는데... 자신들을 믿어 주지 않고 성을 내던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어제 당한 일인 양 억울함에 목소리가 높아진다.  십 년 전에 있었던 큰 불 이야기, 호주로 오기 전 뉴질랜드에서 살던 이야기, 지금은 노환과 건강 악화로 더 이상 화요일 퀼트에 올 수 없는 친구 할머니 이야기. 어제 뉴스에서 본 정치 이야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할머니들의 수다를 따라가며 드르륵 천을 박아 가다 보면 네 시간이 훌쩍 흘러 있다. 자세히 보면 삐뚤 빼다 엉망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럴듯한 형태를 갖춘 완성품을 보는 만족감이 생각보다 크다. 

 
  할머니들이 정원에서 따온 토마토, 사과, 호박 등을 한 곳에 모아 두고 필요한 만큼 챙겨가며 화요일 퀼트 모임을 마감한다. 평균 연령 75세 즈음의 할머니들은 각자 자신의 차를 운전해 돌아간다.  그 연세에도 모든 것을 스스로 독립적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신다. 
 
 처음에 2개월 정도는 아이린 할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녔다. 차츰 시골길에서 운전이 익숙해 지자 일주일은 할머니 차를, 일주일은 내 차를 타고 함께 다녔다. 편도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가는 차 안에서, 할머니는 그리스인과 결혼한 딸 이야기, 그리스인들이 모이면 얼마나 시끄러운지, 50년이 넘게 한 회사에서 버스를 운전한 할아버지 이야기, 우체국에서 시골 구석구석 작은 마을들에 편지를 배달하던 이야기, 그러다가 몇 년 전 갑자기 이틀 동안 기억을 잃으셨고 병원에서 깨어나신 이야기, 그래서 우체국 일을 그만 두신 이야기 등 70년 넘게 모아놓은 이야기보따리들을 내게 풀어놓으신다. 그렇게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금세 집 앞이다. 햇볕이 따뜻한 창가 소파에서 눈을 잠시 붙이고 누워 있으면, 곧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 올 시간이다. 

'엄마, 오늘은 뭐 만들어 왔어?'   

  

시골 할머니들과 바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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