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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Writes Feb 05. 2020

호주 철물점 혼자 보기 3. 겨울

호주 시골에서 3년 

  7월, 한국은 여름이 한창일 때 남반구의 호주는 겨울이다.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지내기 위한 집을 지은 탓인지 호주는 집안이 바깥보다 더 춥다. 해발 고도가 높은 이 시골 마을은 호주에서 눈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아침에 깨어나면 코끝이 시리고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온다. 도시가스가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대부분 화목난로에 의지한다. 나무에 불 때기 역시 이곳에 와서 처음. 지금은 꽤나 익숙하다. 자른 지 후 시간이 지난 바짝 마른나무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화로가 따뜻하면 쉽다. 나무를 가늘게 자른 킨들 링이라 불리는 불쏘시개를 공기가 통하게 엇갈려 가며 쌓아 준 후 큰 통나무 한두 개를 그 위에 올린다. 파이어 스타터를 한 조각 잘라 킨들 링 아래에 놓고 불을 붙인다. 공기 조절 밸브를 최대한 열어 둔다. 큰 조각의 나무에 불이 붙을 때까지. 붉게 이글거리는 불꽃을 보며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겨우내 아침엔 서리가 내리는 날이 대부분이다. 차 없는, 안개가 자욱한 도로 위로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천천히 차를 몬다. 

 
  가게에 도착하면 가스히터에 불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가스 밸브를 열고  탁 소리가 날 때까지 점화 스위치를 누르고 10초간 기다린다. 파란 불꽃이 흔들림 없이 자리한다. 금세 온기가 퍼진다. 토요일이라 딸아이가 함께 따라나섰다. 일당은 5달러. 어제 도착한 물건들에 가격표를 붙이는 일이 그녀가 맡은 업무다. 물건과 가격표의 바코드를 확인하며 입술을 삐쭉 나오고 눈썹까지 팔자를 그리며 집중하는 모습이 꽤나 진지하다. 딸아이의 장래 희망은 편의점 알바다. 몇 달 전 처음으로 내가 가게를 혼자 볼 때만 해도 아이는 밝은 표정으로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바코드를 찍고 잔돈을 거슬러 주며 신나 했다. 두 달 전 열한 번째 생일을 맞은 아이는 요즈음 이른 사춘기인지 손님들에게 밝은 인사말 대신 수줍은 미소만 건넨다. 
 '너 이래서 아르바이트하겠냐, 호주에서 일하려면 기본은 스몰 톡이야!'. 호주 시골 사람들은 시시콜콜한 농담을 좋아한다.  
 
  토요일은 9시부터 12시까지 세 시간만 영업을 한다. 짧은 영업시간 동안, 가스통을 내어주고, 페인트를 조색하고, 열쇠를 깎는 손님이 모두 당첨! 이 세 가지는 시간이 많이 걸고 실수가 많아 조심스럽다. 그 와중에 손님들 문의에 답하고 계산을 하고, 틈틈이 딸아이가 가격표를 붙여 놓은 물건들을 가게 구석구석 진열대에 자리 잡아 놓는다. 호주에서 살면서 영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나 싶어도, 이상하게 영어가 안 되는 날이 있다. 어제 막 한국에서 도착한 사람처럼 버벅 거린다.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일 년 동안 꽤 많은 단어와 표현들을 익혔다. 말을 알아듣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만 말하는 데는 오히려 더 시간이 걸리고 머뭇거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단어들 가운데 몇 개를 잡아내어 가장 상황에 적절해 보이는 것을 저글링 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평 남짓한 구멍가게에서 새우깡을 찾아 손님에게 내주는 것과 삼 층짜리 이마트의 그 많은 물건들 사이에서 새우깡을 찾아 손님에게 내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면 비약일까? 오늘은 유난히 버퍼링이 긴 날이다. 카펫 클리너를 빌려 가는 손님에게 두 개의 호스를 연결하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이상하게 버벅거리고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냥 기계 뒤에 그림 봐하며 그림이 있는 청소기 궁둥이를 툭툭 치며 내보낸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손님들도 자기들이 찾는 게 뭔지 모르는 날이다. 불빛이 나오는 스크루 드라이버를 달라고 해서 갸우뚱거리며 한참을 찾고 있었는데, 송곳같이 생긴 서킷 테스터를 보더니 저거란다. 호주 아저씨가 나사가 뭔지 헷갈리는 날인가 보다. 
 '우리 다 정신이 잠깐 나갔나 봐' 
 '그래 이 날씨에 뇌가 안 얼은 것도 이상하잖아'
 
  요즘 손님들과 하는 얘기의 대부분은 날씨 얘기다. 한동안 춥고 비가 내렸다. 이곳에는 off-grid라고 전기, 수도 없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에게 비는 중요하다. 집집마다 레인 탱크를 가지고 있다. 서로의 탱크에 물이 얼마나 받아졌는지 대결하듯 확인한다. 가득 찬 레인 탱크를 자랑하며 환호성을 내며 기뻐한다. 자신들 소유의 토지에 강이나 호수가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가물어도 펌프로 물을 퍼다가 정수해서 샤워나 화장실 등에 쓸 수 있다. 한국에서는 산성비라 하여 피해 다녔고, 캔버라에서는 레인 탱크 물은 정원에만 사용했다. 이곳에서 비가 오면 오히려 빨래를 걷지 않고 널어 둔다. 수돗물도 믿을만하지 않은데 깨끗이 헹궈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다 해도 통에 받힌 빗물에 저리 기뻐할 수 있다니! 농촌에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비가 오지 않으면 작황도 좋지 않고 소가 뜯어먹을 풀도 없어 소떼를 몰고 이동을 해야만 한다. 며칠 전에는 피터와 바네사네 소 다섯 마리가 뜯어먹을 풀을 찾아 펜스를 뚫고 탈출을 했다. 이틀 동안 돌아오지 않는 소떼를 찾아 일찍 퇴근하고 비가 부슬부슬 오는 풀밭을 네 시간 동안 걸어야 했던 바네사. 곧 팔아버릴 예정이란다. 그 옆에서 듣고 있던 워렌은 우리는 애완 사슴 찾아서 15km 나 걸어야 했던 적도 있다며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야생 사슴을 집에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순하고 이쁜지 키웠던 동물 중에서 최고였다며. 
 
  비가 자꾸 오니 티브이 안테나가 고장 나고, 전화가 먹통이 된 집이 많다. 번개가 칠 때  전화기가 전원에 꽂혀 있으면 고장이 난단다. 티브이 안테나를 사가는 손님은 자기 집에서 어떤 방향으로 안테나를 향하면  NSW의 신호가 또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VIC의 신호가 잡힌다며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설명해 준다. (NSW, VIC는 호주의 뉴사우스 웨일스와 빅토리아주의 줄임말이다.)
  날이 추워지면서 따뜻한 집으로 자꾸 쳐들어 오는 쥐들이 골치 거리다. 도시의 커다란 Rat과 다르게 여기서 보이는 쥐는 몸통이 엄지손가락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mouse 다. 조금 덜 징그럽지만 아주 작은 구멍을 통해서도 집으로 들어온다. 집뿐만이 아니다 엔진을 막 끈 자동차의 따뜻한 배기통으로 기어 들어가 전선을 갉아먹어 버린다. 미처 알지 못하고 운전하다 도로 한가운데서 멈춰 버린 사람들이 한둘은 아니다. 백발의 머리에 고운 파스텔 색의 카디건을 입을 할머니가 쥐덫을 찾는다. 나무로 된 것 플라스틱으로 된 것, 끈끈이로 된 것. 케이지처럼 생긴 것 이렇게 쥐덫이 많다니. 보여주면서도 놀랍다. 
 '어떤 게 편하시겠어요?'
 '글쎄... 난 한 번도 쥐를 잡아본 적이 없어서'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전 두 달 전에 찬바람이 돌 때 네 마리를 한꺼번에 잡았어요. '
 '영감이 다 잡았었거든. 나는 징그러워서 보지도 못해... 영감 죽고 몇 년 동안 안 나오더니 어제 집에 쥐가 나왔어'
 '저도 쥐를 집에서 본건 작년에 여기 이사 와서 처음이었어요. 처음에 쥐를 봤을 땐 너무 무서워 잠도 못 자고, 종이 한 장이 떨어져도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했는데... 세 달 동안 한 열 마리 잡았더니.. 익숙해지더라고요.  물론 쥐가 내 집에 있다는 게 소름 끼치게 싫은 건 변하지 않지만.'
 '그래, 나도 한번 잡아 봐야지, 우리 아가씨가 추천해 주는 걸로 한번 해볼까'
 '여기요, 땅콩버터 바르는 것 잊지 마시고요. 그리고 집안에 아주 작은 구멍이라도 쇠 수세미로 다 막고 테이프 발라 두세요.'
 일 년 새 꽤나 쥐잡이 프로가 되었다. 작은 가게에서 호주 시골의 가보지 않은 곳,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은 하루 종일 해가 구름 뒤에서 나와 주지 않는다. 마감을 하고 나오니 12시 30분. 시간이 가늠되지 않는 도로를 천천히 달려 집으로 돌아와 나무 화롯가에 자리 잡는다. 고구마를 호일에 싸서 장작 위에 조심히 올려 둔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와 군고구마 익어가는 냄새가 거실을 채운다. 어제 읽다 만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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